사건은 도즈디 방송의 인기 토론 프로그램 '딜레탄티'가 지난달 26일 러시아에 엄청난 피해를 입힌 독일 나치군의 '레닌그라드 봉쇄' 70주년을 맞아 당시 상황을 짚어보는 토론을 진행하면서 설문 조사를 한 것이 발단이 됐다.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 봉쇄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 침공에 나섰던 나치군이 1941년 9월 8일부터 1944년 1월 27일까지 무려 872일 동안 레닌그라드를 전면 포위하고 공습과 포격 등을 통해 도시 점령을 시도했던 작전을 일컫는다.
소련군과 도시 주민들의 끈질긴 저항으로 끝내 점령은 막아냈지만 봉쇄 기간 중 군인 47만여명이 희생된 것은 물론 민간인 약 65만명이 굶주림과 혹한, 포격 등으로 숨지는 최악의 피해가 발생했다. 레닌그라드 봉쇄 투쟁은 러시아인들의 애국심을 상징하는 역사적 사건으로 남아있다.
도즈디는 토론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시청자들을 상대로 '수십 만 명 주민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레닌그라드를 내줬어야 하나'라는 질문으로 설문 조사를 실시했다. 방송사 웹사이트에도 같은 질문을 올렸다. 그러자 채 20분이 안 돼 시청자들의 항의가 빗발치기 시작했다. 도시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수많은 희생자에 대한 모독이며 러시아의 애국심에 상처를 내는 무지한 설문 조사란 비난이 쏟아졌다.
이에 결국 방송사가 설문 조사를 중단하고 급히 사과 방송을 내보냈지만 비난 여론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았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대통령 공보비서(공보수석)까지 나서 방송사가 "법률 이상의 것을 위반했다"고 질타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의회는 검찰에 설문 조사 사건 수사를 의뢰하고 방송사 폐쇄 등 합당한 조치를 취하라는 내용의 결의문을 채택했다.
뒤이어 도즈디 방송을 전송하던 케이블·위성 전송망 사업자들이 잇따라 방송사와의 계약 파기를 선언했다. '아카도', 'NTV 플러스', '로스텔레콤', '비라인 TV' 등 주요 사업자들에 이어 3일 '트리콜로르 TV'가 마지막으로 계약 파기를 발표했다.
도즈디 방송 소유주 알렉산드르 비노쿠로프는 4일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트리콜로르의 방송 전송 중단은 사실상 채널 폐쇄를 의미한다고 밝혔다. 방송을 전송하는 채널이 90% 이상 차단되면서 방송사 운영이 사실상 불가능해졌다는 하소연이었다.
도즈디는 자체 웹사이트에 올린 글에서 "의도적인 방송사 폐쇄 시도가 계속되고 있다"며 "방송사의 시청자에 대한 접근 차단은 자유 언론 원칙의 심각한 훼손"이라고 항의했다.
도즈디는 지난 2011년 말 총선 당시 정부·여당의 부정 선거 의혹을 공개적으로 다루는 등 비판적 방송을 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