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총력로비 뚫고 `동해병기법' 일단 상원문턱 넘어

미국전역 병기확산 '촉매제'…일본, 대미외교 타격

미국 버지니아주 의회에 상정된 동해병기 법안이 일본의 총력 저지를 뚫고 마침내 상원을 통과됐다.

미국 자치단체로는 처음으로 공립학교 교과서에 '동해'(East Sea)와 '일본해'(Sea of Japan) 병기를 의무화하는 '계기'를 이룬 것이다.

특히 일본이 막판에 사사에 겐이치로 주미 일본대사까지 직접 나서 법안 저지에 나선 가운데 일궈낸 입법적 성과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더욱 값져보인다.

무엇보다도 동해병기 법안이 버지니아주 상원에서 처음으로 통과됐다는 점에서 상징성이 커보인다. 물론 미국의 지방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다. 하지만 버지니아주는 우리나라로 치면 '경기도'에 해당하는 수도권이다. 정치적으로는 물론 사회문화적으로도 전국의 바로미터의 성격을 띠고 있어 그 파급력이 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버지니아주는 2016년 6개주와 함께 공용 교과서를 채택할 예정이어서 '일거다득'의 결과를 얻을 수도 있다.

이에 따라 법안이 상원은 물론 하원까지 통과될 경우 동해와 일본해를 병기한 교과서가 미국 다른 지역에 확산되는 '촉매제'가 될 전망이다.

한인 사회의 위상을 제고하는 의미도 크다는 시각도 있다. 비록 지자체이기는 하지만 미국 정치권에서 한인이슈를 정식법안으로 만들어 상원까지 통과시킨 것은 전례가 없다는 것이다. '미주 한인의 목소리'(VoKA)의 피터 김 회장은 "미주 한인 역사 111년 동안 한국 이슈가 법안으로 만들어져 의회를 통과한 것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시의성도 무시할 수 없다. 최근들어 과거사를 두고 치열해지는 한·일 외교전과 연관이 있다는 것이다.

'위안부 결의안' 관련내용이 포함된 법안이 미국 의회에서 통과됨으로써 관심이 고조된 '과거사 외교전'에서 한국의 움직임이 한층 탄력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특히 최근 미국내에서 과거사를 부정하는 일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것은 눈여겨볼 대목이다.

이를 의식한 듯 일본의 막판 로비는 '전방위적'이었다. 일본 정부 인사들이 직접 주지사와 상·하원 의원들을 상대로 총력 설득에 나섰다는게 소식통들의 설명이다.

사사에 대사가 버지니아 주도인 리치몬드로 직접 내려와 테리 매콜리프 주지사를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매콜리프 주지사는 지난해 선거운동 과정에서 동해병기를 지지하겠다고 선언한데다 법안에 최종 서명을 할 인물이라는 점에서 집중적 로비대상이 됐다는 관측이다.

일본 측 로비는 상당부분 먹힌 것으로 보인다. 매콜리프 주지사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도널드 매키친 민주당 원내대표가 막판에 '기습적으로' 동해병기를 무력화하는 수정안을 제출하고 법안 토론때 반대 의견을 개진한 것은 일본 로비의 영향이라는게 한인단체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피터 김 회장은 "매콜리프가 '상원에서 법안 통과를 막아라'라고 지시를 내림에 따라 매키친 의원이 움직인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대세'를 거스르기는 역부족이었다는게 대체적 평가다. 매키친 의원의 수정안은 거의 만장일치로 부결됐고 토론과정에서도 매키친 의원의 주장에 동조하는 의원이 한명도 없었다.

오히려 동해병기를 위한 '초당적 법안'을 발의한 리처드 블랙(공화) 의원은 "한국이 과거에 겪은 아픔을 깊이 헤아려야 한다"고 말해, 과거사 이슈와 연계하는 태도를 취했다.

동해 병기법안 처리는 위안부 등 과거사 이슈와는 사안의 성격이 다르기는 하지만 '일본해'가 1929년 일제 강점기에 국제수로기구에서 채택됐다는 점에서 이를 연관시켜서 봐야 한다는 견해에 근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최종 표결로 드러난 버지니아 상원의 '표심'은 완전히 한국 편이었다. 재석의원 38명 가운데 31명이 찬성표를 던진 것이다. 매키친 의원을 포함해 일본쪽 로비를 받은 민주당 의원 4명만이 반대표를 행사했고, 3명이 기권했다.

그러나 아직은 끝난 것이 아니다.

버지니아 하원에서의 절차가 남았기 때문이다. 하원의 의석수는 100석으로 상원(40석)보다 클 뿐만 아니라 민주당이 이끄는 상원과 달리 공화당(67석)이 민주당(33석)을 수적으로 압도하는 구조다.

특히 하원의원 100명 가운데 동해병기를 약속한 의원은 20명 정도에 불과하고 나머지 80명은 '부동표'에 해당하는게 소식통들의 전언이다.

이에 따라 한·일 양측 가운데 어느 쪽이 더 많은 '우군'을 확보해내느냐에 따라 입법의 향방이 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주목할 변수는 앞으로 전개될 일본의 대미 로비의 향배다. 일본은 이번에 정부까지 나선 가운데 법안 저지에 실패하면서 외교력에 상당한 치명타를 입게 됐다. 이에 따라 하원 심의와 표결과정에서는 상원때보다 훨씬 강도높은 로비에 나설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또 하원을 어렵게 통과하더라도 일본 측 로비를 받은 매콜리프 주지사가 서명을 거부하는 '비토권'을 행사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렇게 되면 한국 측도 상황에 따라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한 민간 차원에 머물지 않고 정부까지 개입해야 하는 국면을 맞을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 주미대사관 고위관계자는 "외교적인 활동을 할 때는 목표의식이 분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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