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영화 어때] '넛잡' 토종 자본과 기술력으로 빚어낸 만국 공통의 가치

450억 제작비 세계시장 겨냥한 애니…실감 캐릭터·공생 메시지 주목

세계 시장을 겨냥하고 국내 애니메이션 사상 유례없는 자본과 기술력을 동원해 만든 '넛잡: 땅콩 도둑들'(이하 넛잡)이 만족할 만한 크기의 열매를 얻을 수 있을까.
 
일단 첫 단추는 제대로 끼워진 모양새다. 현지시간으로 17일 미국 전역 3427개 상영관에서 개봉해 2055만 달러(약 218억 원)를 거둬들이며 개봉 첫 주말 현지 박스오피스 3위에 올랐으니 말이다.
 
넛잡의 제작비가 450억여 원인데 개봉 첫 주 만에 그 절반 가까이를 벌어들인데다, 북미 개봉 한국 영화 최고 흥행작인 '디워'(2007)의 총매출(1098만 달러)보다도 두 배가량 많은 것이어서, 그 기세가 북미 개봉 2주차는 물론 한국 극장가에서도 이어질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최근 언론시사를 통해 국내에 공개된 넛잡에서는 한국 색을 찾아볼 수 없었다. 우리 자본과 기술력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전 지식 없이 본다면 누군가 "영어권 나라의 작품"이라고 해도 무리없이 믿을 정도다.

배경이 뉴욕이니 풍경도, 캐릭터 이름도, 나오는 사람도 모두 이국적이다. 철저하게 영어권 시장의 입맛에 맞춘 현지화 전략을 취한 셈이다.
 
언론시사 뒤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넛잡의 제작사인 레드로버의 하회진 대표는 "제작 단계에서 연인원이 350명 이상 투입됐는데, 이 가운데 한국 인력이 많을 때는 120명 포함됐고, 자본은 한국에서, 초기 기획도 우리가 했다"며 "미국 측 배급사가 2300만 달러를 쓰면서까지 배급을 맡은 것은 아마도 한국 영화 사상 처음이고 3427개 개봉관이란 숫자는 시골에서도 의지만 있다면 넛잡을 볼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전했다.
 
이어 "지난해 11월 아메리칸 필름 마켓에 갔을 때 3회 정도 넛잡의 호응도 시사를 했는데, 어린이들로부터 상당히 높은 점수를 얻어 미국 현지 배급사가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게 됐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언론시사 당시 다수의 어린이 관객이 객석을 메우고 있었는데, 극에 집중했는지 산만한 움직임이나 불평의 소리는 새어나오지 않았다.

그만큼 다람쥐, 생쥐, 너구리, 불독 등 동물 캐릭터는 사실적인 표정과 몸짓을 갖추고 있었고, 이들이 행하는 엉뚱하고 기발한 행동은 어린이 관객들을 흡족하게 만드는 모습이었다.
 
이 작품이 컴퓨터 그래픽(CG)을 활용한 애니메이션인 만큼, CG로 표현하기 어렵다는 동물 털이나 물의 흐름을 어떻게 나타냈는지에도 눈길이 갔다. 일단 어색한 점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기술적 완성도는 높았다.

특히 물의 흐름을 나타낸 CG는 우리가 머릿속에 그리고 있는 이상적인 물의 움직임을 구현한 덕에 실제보다 더욱 실제 같은 느낌을 줬다.
 
기자간담회 당시 3D 입체 작업을 담당한 황세환 슈퍼바이저는 "드림웍스, 픽사, 디즈니 등 거대 스튜디오의 자본력을 따라갈 수는 없었지만, 기술력만큼은 관객들로부터 이들 스튜디오에 뒤지지 않는다는 말을 듣기 위해 무척 애썼다"며 "동물 털의 렌더링(뼈대에 이미지를 입히는 작업)이 오래 걸리지만 몇 배로 노력해서 물리적 시간을 줄였는데, 큰 스튜디오에 뒤지지 않겠다는 자존심, 고집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넛잡의 이야기는 지금 시대가 필요로 하는 미덕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권하기에도 손색이 없다.
 
이 작품의 각본과 연출을 맡은 피터 레페니오티스 감독은 기자간담회에서 "악이 선으로 바뀌는 변화의 과정을 담으려 했는데, 주인공 설리와 친구 버디 사이 따뜻하고 달콤한 우정, 서로 챙기면서 함께 살아가는 모습 등 현실에서 필요한 가치를 보여 주고 싶었다"고 했다.
 
감독의 말대로 넛잡은 공동체에서 떨어져 단독으로 살아가던 주인공이 일련의 사건을 겪으면서 주변 사람들의 소중함과 협력의 가치를 알아간다는 내용을 그리고 있다.

공포심을 조장해 공동체에 대한 지배력을 유지하는 권력자, 돈을 좇는 은행강도단 등이 얽히고설키면서 물질만능 시대의 지나친 소유욕을 비판하는 메시지도 뚜렷하게 담고 있다.
 
전체 관람가, 85분 상영, 29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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