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 만한 곳으로 이사를 하려 했지만 화장실과 주방이 붙어 있는 원룸의 최소 보증금 500만원, 월세는 50만~60만원은 줘야 된다. 공과금ㆍ관리금을 합치면 비용은 더 늘어난다. 좁은 방도 그렇지만 김씨는 이곳에서 '외로움'과 '불안함'을 느낀다. 한번은 새벽에 나갔다가 근처 편의점에서 괴한을 만나 다칠 뻔한 적도 있다. 몇발짝만 떼면 화려한 강남거리지만 원룸텔은 우울하기만 하다. 김씨는 이곳을 떠날 날만 꿈꾼다.
◈ 두달치 방값이 보증금
집 뒤편으로는 인왕산이 버티고 있고, 집에서 5분 거리엔 기름떡볶이로 유명한 통인시장이 있다. 옛 정취가 가득한 이곳 셰어하우스에는 슬로 라이프를 만끽하는 남자 넷이 살고 있다. 건축사무소에서 일하는 이부터 프리랜서, 백수까지 각각 직업도 캐릭터도 다르다. 이 네 남자는 옹기종기 모여 밥을 함께 해먹고 새벽까지 14.15㎡(약 4.2평)의 넓은 거실에서 담소를 나누기도 한다.
대부분 고시텔ㆍ원룸텔의 방 크기는 평균 3.3㎡~3.91㎡(약 1~3평)에 불과하다. 이렇게 작은 곳에 10~20명의 사람들이 화장실ㆍ주방을 함께 사용한다. 휴식을 취할 마땅한 공간이 있는 것도 아니다. 정부가 말하는 주거취약계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주거취약계층은 주거가 일정하지 않은 노숙인이나 비닐하우스 판자촌, 쪽방에 거주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쪽방 거주자는 9㎡(약 2.7평) 내외의 단칸방에서 무보증 월세로 거주하며 부엌ㆍ화장실을 공동으로 사용하는 이들을 말한다. 고시텔ㆍ원룸텔이나 쪽방이나 사정은 비슷하다는 것이다.
◈ 합리적 비용으로 삶의 질 만끽 가능
요즘 셰어하우스가 뜨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주거문제와 맥이 닿아 있어서다. 셰어하우스는 기존 주택을 활용해 여러 세대의 1인가구가 함께 거주하는 주거형태를 말한다. 방은 따로 사용하지만 거실ㆍ주방ㆍ욕실은 공동으로 사용한다. 고시텔ㆍ원룸텔보다는 비싸지만 원룸보다는 저렴하다. 셰어하우스는 1~2인 가구가 많은 일본ㆍ캐나다 등의 도심에는 보편화된 주거형태다. 주거비용이 높은 미국과 유럽에서도 인기를 끌고 있다. 국내 셰어하우스는 이제 막 걸음마 단계에 접어들었다.
신청을 받고 있는 9호점 경쟁률은 4대1에 달한다. 10호점은 아직 공사 중이다.
두 업체 모두 1년여 만에 지점을 10개 가까이로 늘리며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 이 때문인지 최근엔 부동산건축전문업체도 셰어하우스 시장에 뛰어들었다. 지난해 11월 셰어하우스 '함께꿈꾸는마을'을 연 유성산업개발은 올 1월 말 송파구 문정동에 2호점 오픈을 앞두고 있다.
'함께꿈꾸는마을(유성산업개발)'의 사용료 역시 저렴하다. 서울 왕십리에 있는 1호점의 경우 3인실(27.3m²ㆍ약 8.27평) 35만원, 2인실(14.43m²ㆍ약 4.37평) 43만원, 1인실(9.9m²ㆍ약 3평)은 56만원이다. 곧 오픈할 예정인 문정동 2호점은 3인실(34.44m²ㆍ약 10.43평)의 월 사용료가 36만원에 불과하다. 넓은 거실과 주방은 절로 따라붙는 옵션이다. 꿈꾸는 마을의 보증금도 우주와 마찬가지로 두달치 방값이다.
◈ 모르는 사람과 갈등 빚을 수도
장점은 더 있다. 커뮤니티를 자연스럽게 만들 수 있다. 셰어하우스 우주는 '창업가들을 위한 집(1호점)' '슬로 라이프를 꿈꾸는 사람들의 집(4호점)'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집(9호점)' '커피와 디저트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집(10호점)' 등 1호점부터 10호점까지의 콘셉트가 모두 다르다. 당연히 각 지점에 취미나 라이프스타일이 비슷한 사람끼리 모일 확률이 크다.
셰어하우스 우주 4호점 '슬로 라이프를 좋아하는 집'에 거주하는 취업준비생 이광호(29)씨는 "원룸에 살 때는 외로웠는데 이제는 누군가가 나를 기다려주는 듯한 느낌이 들어 좋다"며 "셰어하우스 생활 7개월차인데 내년에도 재계약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조창희 유성산업개발 대표는 "소득이 괜찮더라도 혼자서 99㎡(약 30평)짜리 아파트에 월세를 내며 살기는 버거울 뿐만 아니라 외로울 것"이라며 "셰어하우스는 월세가 저렴한데다 단절된 커뮤니케이션의 경계를 허물고 공동체를 형성하는 새로운 주거문화 형태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물론 장점만 있는 건 아니다. 모르는 사람과 한 공간을 써야 하기 때문에 갈등을 빚을 수 있다. 김정헌 피제이티옥 대표는 "남과 함께 살면서 갈등이 생기지 않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며 "발생가능한 갈등을 조정하고 봉합해 나가는 것도 하나의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처음부터 공동체 생활에 적합한 입주자들을 선정하지만 만일의 경우 회사매니저가 개입해 입주자간 갈등을 조정하기도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