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대통령 시대를 맞아 최근 몇몇 은행에서 여성 임원의 '약진'이 나타났지만, '여풍()'이라는 표현을 쓰기에는 매우 부족하다는 평가가 많다.
8일 금융권에 따르면 2009~2013년 8개 주요 국책·시중은행의 본부장 이상 기용 성비(性比)는 27대 1로 집계됐다.
매년 27명의 남성이 임원으로 승진·연임하는 동안 여성 임원은 겨우 1명이 나온 셈이다.
국내 최초 여성 은행장인 권선주 기업은행장이 임명된 지난해 이 비율이 22대 1로 다소 개선되긴 했지만, 여전히 여성 임원 비중은 작은 수준이다.
은행들은 여성 임원이 적은 배경으로 기존의 인적 구조를 꼽았다. 20~30년 전 입행해야 임원에 오를 수 있는데, 여성 인력풀이 적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 시중은행 인사 담당 부장은 "임원 후보군에 남성이 여성보다 많은 인적 구조가 아직 해소되지 않았다"며 "앞으로는 여성 임원이 더 나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본부장 승진 대상인 부서장·지점장에 여성이 적은 더 근본적인 원인은 여성 인력의 '조기 퇴출'이라는 분석이 많다.
부서장이나 지점장에 오르기 전에 자의든 타의든 은행을 그만두는 여성이 많다는 뜻이다.
신한은행 첫 여성 임원인 신순철 부행장보는 "여성 임원 후보군이 많아지려면 출산·육아로 일찍 그만두는 여직원이 없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2009~2013년 퇴직자는 2만4천789명이다. 남성이 월등히 많은 은행 인적 구조와 달리, 퇴직자는 여성이 1만2천962명으로 오히려 남성(1만1천827명)의 1.1배다.
같은 기간 채용은 2만3천447명이다. 여성이 1만5천178명으로 남성(8천269명)의 1.8배다. 여성을 많이 뽑지만, 임원은 남성이 차지하고 여성이 주로 나간 것이다.
은행권 노조 관계자는 "재무나 여신 등 핵심 부서는 여전히 '금녀(禁女)의 벽'이 있다"며 "출산·육아가 여성의 경력 단절에 결정적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은행들은 최근 출산휴가를 포함한 육아휴직 2년 보장, 복직 전 재교육, 어린이집 등 여성의 출산·육아 지원책을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인사상 불이익 등을 우려해 중도에 복직하거나 육아 또는 추가 출산의 부담으로 아예 직장을 그만두는 여성 은행원이 여전히 적지 않다.
신 부행장보는 "은행을 그만두지 않으려고 두 자녀를 시어머니께 맡길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역시 두 자녀를 둔 권 행장은 "출산휴가로 3개월이 주어졌지만, 1개월만 쓰고 나와야 했다"며 "토요일까지 근무하고 이튿날인 일요일에 둘째를 낳았다"고 말했다.
'여성이 살아남기 어려운 문화'는 감독기관인 금융감독원이나 한국은행도 다르지 않다.
금감원·한은의 여성 임원은 5년간 연인원으로 모두 5명이다. 같은 기간 남성 임원은 125명(금감원 61명, 한은 64명)으로, 여성 임원보다 25배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