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22일 총선 이후 2개월간의 지루한 대연정 협상 기간을 포함, 3개월 만에 정부 운영이 정상화된 것이다.
메르켈 3기 정부는 중도 우파인 기독교민주당(CDU), 자매정당인 기독교사회당(CSU), 그리고 중도 좌파인 사회민주당(SPD)의 좌우 대연정이라는 점에서 지난 2005-2009년 메르켈 1기 정부로의 회귀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번 3기 정부는 메르켈의 기민-기사당이 연방 하원 전체의석(311석)의 과반수에서 불과 5석 부족한 311석으로 압도적인 영향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사민당과 힘의 기울기가 비슷했던 집권 1기와 형태는 같지만, 진행 과정의 내용은 완전히 다를 것으로 예상된다.
메르켈 총리가 이번 연정 협상에서 시간당 8.5 유로의 최저임금제 도입, 연금제도 개선, 이민자 가정 출생자의 이중 국적 허용 등 사민당의 요구 사항을 대부분 수용한 것은 눈여겨볼 대목이다.
각료직 배분에서도 지그마르 가브리엘 사민당 당수가 부총리 겸 경제부 장관을 맡으면서 에너지 정책까지 총괄하는 이른바 `슈퍼 장관'이 되도록 허용했고, 이밖에 외무장관, 노동사회장관, 환경장관 등 핵심 장관직도 사민당에 넘겨줬다.
세금 인상과 신규 국가 채무를 차단한 것과 볼프강 쇼이블레 장관이 맡은 재무장관 자리를 지켜낸 것 외에 다른 부분에는 크게 연연하지 않은 듯 보였다.
이는 메르켈이 3기 정부에서는 독일 내부 정책을 대거 사민당에 맡기고 대외 정책, 특히 유럽 통합 정책에 힘을 쏟겠다는 의도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메르켈 총리는 연정 협상 초기부터 군소 정당과의 연정은 고려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대외 정책에 추동력을 부여하려면 안정적인 정부가 필요하다고 판단에 따른 것이다.
185쪽의 대연정 협약서의 제목이 `독일의 미래 조형'이다. 다소 애매한 표현이지만, 독일이 장기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큰 틀을 마련하겠다는 취지로 읽힌다.
메르켈 총리는 16일 가브리엘 사민당 당수, 호르스트 제호퍼 기사당 당수와 연정협약서에 서명하고 나서 "대연정은 큰 과제를 위한 연정"이라고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그는 지난달 27일 대연정 협상 타결 직후 했던 말처럼 "2017년 국민의 삶은 더욱 좋아질 것"이라고 자신했다.
가브리엘 사민당 당수는 "대연정은 큰 것을 추진해야 한다. 공정성과 개방성이 큰 정부"라고 말했다. 양당의 당수가 대연정의 `대(大)'를 특히 강조한 것은 `대의'를 위해서 작은 것들은 양보할 자세를 서로에게 주문한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일부 독일 언론은 기민당과 사민당이 너무 사이가 좋다면서 이번 대연정에서 모순이 없는 것이 발전이 없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메르켈은 그동안 유럽 통합 정책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그러나 그리스 사태 등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재정위기의 급한 불을 끄느라 큰 그림을 그리고 이를 추진하는데 어려움이 컸다.
메르켈 3기 정부 출범 시기는 그 어느 때보다 좋다.
유럽 경제는 여전히 어렵지만, 바닥을 찍었다. 독일 내부적으로는 실업률이 통일 후 최저 수준을 보이는 등 고용시장이 안정돼 있고 수출이 역대 최대를 기록하는 등 상승 분위기다. 독일과 유럽이 장기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강화하고 안정성을 높일 수 있는 유럽 통합 시스템을 갖추는데 역량을 집중하기에 좋은 여건이다.
독일 정부가 3개월간 손을 놓은 통에 유럽의 주요 정책 결정이 줄줄이 밀려 있다. 당장 19~20일 유럽연합(EU) 정상회의에 앞서 18일 EU 재무장관 회의에서 볼프강 쇼이블레 재무장관은 은행연합 구축의 전 단계인 부실 은행 `단일정리체제' 방안을 타결하려고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사민당은 남유럽 지원에 기민당보다 관대한 태도를 보여왔다. 이 때문에 메르켈 3기 정부는 통화 동맹의 최대 수혜국인 독일이 유럽의 성장에 좀 더 적극적으로 기여해야 한다는 유럽의 요구에 귀를 기울일 것이라는 기대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