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만원짜리 소머즈 귀' 만든 27세 착한 벤처인

[노컷이 만난 사람] '딜라이트 보청기'로 스타트업 이끄는 김정현 대표

딜라이트 김정현 대표가 13일 오전 서울 당산동 딜라이트 본사에서 CBS 노컷뉴스와 인터뷰 전 기념촬영을 갖고 있다. / 이명진 기자 mjlee@nocutnewc.co.kr
"돈이 없어 듣지 못하는 사람이 없는 세상을 만들고 싶었어요."
 
평균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제품들로 가득한 보청기 시장에 난청인들을 위한 정부 보조금 34만 원으로 살 수 있는 혁신적인 보청기를 내놓은 착한 기업이 있다. 사회적 기업 '딜라이트'가 그 주인공.
 
"사회를 바꾸겠다는 식의 거창한 목표 같은 건 없어요. 기업에게는 기업이 잘할 수 있는 일이 있을 뿐이에요. 앞으로도 시장을 이용해 착한 일을 계속 하면서 인생을 빼곡히 채워 나가고 싶어요"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일을 통해 사회에 기여하고 싶어 하루에도 많은 시간을 사색에 잠긴다는 그. 차근차근 한 계단씩, 그러나 야심차게 자신의 꿈을 실현해 나가고 있는 김정현 딜라이트 대표의 꿈과 인생이야기를 들어봤다.
 
1986년 생인 김 대표는 지난 2월 가톨릭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한 경영학도다.
 
지난 2007년 정부가 공익적 목적을 가지고 돈을 버는 '사회적 기업'에 대한 인증사업을 시작하면서 국내 1000여개가 넘는 사회적 기업이 생겨났지만, 성공 사례를 찾아보기는 드물다. 정부 지원금이 끊기면 문을 닫는 기업들이 부지기수기 때문. 이런 상황에서 스물여덟의 어린 대표가 이끄는 딜라이트의 괄목할 만한 성장과 눈부신 성과는 주목할 만하다.
 
김 대표가 지난 2010년 7월 설립한 딜라이트는 창업 이래로 해마다 3배 이상의 매출 신장세를 유지하며 지난해엔 42억 원, 올해에만 45억 원의 매출을 올리는 직원 수 47명, 직영 대리점만 14곳을 둔 어엿한 성공 벤처 창업 기업으로 성장했다.
 
지난 6월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 방문 때 경제사절단으로 참가했고, 10월엔 벤처기업협회가 선정한 '창업가 롤모델 베스트 20'에 뽑히기도 했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 했던가. 김 대표의 사업수완은 중학교 때부터 두각을 나타냈다. 친구들과 PC방에서 게임할 돈을 마련하기 위해 시작했던 인터넷 중고 매매사업은 김 대표를 찾는 수요가 늘면서 조금씩 규모를 키워나갔고 잘 될 땐 한 달에 최고 800만~900만 원까지 벌었다. 이렇게 한푼 두푼 착실하게 모아 창업 종잣돈을 마련했다
 
그렇게 남다른 사업감각의 김 대표는 대학 입학 후 우연히 좋은 일도 하고 돈도 버는 '사회적 기업'에 대해 접하고 관심 두기 시작했다.
 
이후 사회적 기업을 연구하는 대학 연합 동아리 '넥스터스'에서 또래 친구들과 함께 해외 사회적 기업의 케이스를 다양하게 연구했다. 그러던 중 인도의 '아라빈드 안과병원'의 보청기 사업 실패 사례를 접하게 됐고 그 요인을 철저하게 분석했다.
 
'실행'에 기반을 둔 조직답게 실패 요인들을 개선점으로 반영해 국내시장에 접목했다.
 
고품질의 제품을 저렴한 가격에 공급하기 위해 유럽에서 직접 부품을 수입해왔고 100% 맞춤제작이었던 보청기를 S, M, L, XL의 기성복처럼 청력이 악화된 원인과 귀 모양에 따라 몇 가지 모델로 보청기를 표준화해 제작, 생산단가를 낮췄다. 홈페이지와 직영점에서만 판매하는 방식으로 유통구조도 단순화해 가격 거품을 걷어냈다.
 
고가제품이 판을 치던 시장에 기술혁신으로 원가를 낮춘 상대적으로 좋은 품질의 보청기를 착한 가격에 공급하자 소비자들의 반응도 가히 폭발적이었다. 딜라이트를 찾는 소비자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던 것.
 
하지만 신생기업 딜라이트의 이러한 '돌풍'은 기존 업체들에 '눈엣가시'였다. 이는 견제와 반발로 이어졌다. 딜라이트의 사업에 반기를 든 경쟁업체가 제품제조와 연구개발 과정, 홍보 문구에 있어 허위과장 광고를 했다며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하기도 했다.
 
여러번 경찰과 검찰 조사를 받으면서 힘든 나날을 보냈다. 악전고투로 점철된 시간이었다.
 
"잘못한 게 없는데도 여러 번 불려 가 조사받고 하면서 정서적으로 많이 괴로웠죠"
 
이 일을 겪으면서 어린 리더로서 남모를 고충도 느꼈다.
 
"의지할 데가 없어 참 힘들었어요. 제 식구들에게 힘든 모습을 보이면 걱정하실 거고 그렇다고 직원들에게 고민을 털어놓자니 나 편하자고 그들을 두려움과 불안감에 떨게 할 수는 없었어요. 그나마 저처럼 사업을 운영 중인 분들과 이야기하고 고민을 나누면서 공감도 하고 의지도 많이 했어요. 참 많이 외로웠죠"
 
하지만 시련은 김 대표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줬다.
 
김 대표는 기존업체의 견제와 '싼 게 비지떡'이라며 품질에 의구심을 갖는 소비자들의 인식을 바꾸기 위해 딜라이트 자체 R&D 팀이 기술개발에 매진했고 이는 현재도 진행중이다. 이런 노력 덕분에 딜라이트를 찾는 소비자들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비교적 어린 나이, 또래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은 부와 명예를 가진 그이기에 '요즘 참 행복하겠다'는 말을 건넸다. 하지만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그런가요? 그런데 전 요즘 행복하지 않아요. 그렇다고 불만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요즘 늘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해요. 그래서 몇 달 좀 쉬어보려고요. 지난 6년 간 쉼 없이 앞만 보고 달려왔거든요. 이젠 뒤도 돌아보고 옆도 좀 보면서 여유를 가지고 진지하게 미래에 대한 고민을 해보고 싶어요"
 
모두가 안 될거라 고개를 저었지만 '딜라이트'를 기적처럼 성공으로 이끈 그의 다음 행보가 궁금해졌다.
 
"이루고 싶은 꿈이요? 아직 잘 모르겠어요.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일을 계속 하고 싶고 그런 영역의 일을 하겠다는 밑그림은 그려놨는데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세우질 못했어요. 구상해놓은 아이템도 여러 가지 있고 또 그런 일을 하면 스스로 재미도 느끼거든요. 근데 기왕이면 더 좋은 걸 하고 싶어서 계속 고민 중이에요. 제 첫 번째 프로젝트 딜라이트에 많은 사랑 보내주셔서 감사하고요. 앞으로의 제 행보도 관심 있게 지켜봐 주세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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