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한국방공구역 확대 '지지'…표현수위 조절

"한국, 책임있고 신중" 평가하며 對중국 견제 메시지

중국의 일방적 방공식별구역 설정을 둘러싼 동북아 갈등의 한복판에서 미국이 새롭게 방공식별구역 확대를 추진하려는 한국 정부의 손을 일단 들어줬다.

미국 국무부는 한국정부가 방공식별구역(KADIZ) 확대를 선포하자 현지시각으로 8일 새벽임에도 불구하고 젠 사키 국무부 대변인 명의의 논평을 내놨다. 국무부가 심야시간에 특정 사안에 대해 대변인 명의의 공식 입장을 표명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논평의 핵심은 "한국 정부의 노력을 평가한다(appreciate)"는 것이다. 이는 직접적인 표현은 아니지만 우리 정부의 KADIZ 확대를 지지 또는 인정한다는 입장을 표명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주미 대사관 관계자는 이날 발표 직후 "외교적으로 평가라는 표현에는 한국 정부와 입장을 같이한다는 뜻이 함축돼 있다고 생각된다"며 "심야시간에 발표한 형식도 그렇지만 내용도 매우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마리 하프 국무부 부대변인이 "우리(미국)가 의견을 같이한다(we're on the same page)는 점을 시사했다"고 밝힌 것과 같은 연장선에 놓여있다는게 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평가'라는 표현의 수위는 미국 측이 고심 끝에 조절한 흔적이 역력해 보인다. 미국이 직접적으로 동의 또는 지지한다는 입장을 표명할 경우 중국을 자극할 가능성이 크고 이는 또다른 갈등과 대립각을 키울 수 있다는 상황인식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한·미·일 동맹을 유지하면서 중국과도 협력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미국으로서는 동중국해 방공구역 설정을 둘러싼 동북아 역내의 긴장과 갈등구도를 어떤 식으로든 누그러뜨리는 게 급선무다.

또 주변국의 반응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직접적인 표현을 쓰기가 부담스러운 상황도 '평가'라는 우회적 표현이 나온 배경으로 보인다.


그러나 어찌 됐건 그간 신중 행보를 보이던 미국 정부가 한국의 KADIZ 확대에 공식적으로 긍정적 입장을 표명한 것은 동북아 정세에 적지않은 함의를 주고 있다는 분석이다.

미국의 이 같은 입장은 기본적으로 동맹국인 한국의 KADIZ 확대 논리와 명분이 설득력이 있는데다 미국이 기대하는 수준의 정책추진의 '방법론'과 KADIZ 운용의 '내용성'도 담보하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정부가 중국의 동중국해 방공구역 설정에 대해 일관되게 제기해온 문제점은 크게 세가지로 정리해볼 수 있다.

주변국과의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됐고, 동중국해라는 영토분쟁 지역을 포함하고 있으며, 유사시 비상군사조치를 취하겠다고 주변국을 협박한 점 등이다.

이는 방공구역 설정을 국제관례에 따라 매우 유연하고 방어적으로 운영하는 미국의 기준에서는 용납하기 어려운 대목이라는 게 워싱턴의 외교소식통들의 설명이다.

그러나 우리 정부의 KADIZ 확대는 중국과는 확연한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 미국은 물론 중국과 일본 등 주변국과 충분한 사전협의를 진행하고 있고, 새로 포함되는 이어도 수역 등은 분쟁지역이 아닌데다, 군사적 수단을 동원하겠다는 뜻을 일체 표명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젠 사키 국무부 대변인도 ▲주변국과의 협의를 통한 책임 있고 신중한 정책 추진 ▲비행자유 존중과 국제법 준수 ▲민간항공기들의 혼란과 위협 회피라는 측면에서 한국 정부의 노력을 평가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이번 KADIZ 확대는 동중국해 방공구역을 일방적으로 설정하고 주변국에 군사적 위협을 경고한 중국 정부를 겨냥한 고강도 메시지의 성격을 띠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미국 정부의 이 같은 입장표명으로 한국 정부의 KADIZ 확대 문제는 큰 틀의 고비를 넘긴 듯하지만 중국과 일본 등 주변국과의 협의는 '현재 진행형'이다.

특히 이어도 수역은 중국의 배타적 경제수역(EEZ)과 중첩되는 지역이어서 중국이 어떤 식으로 나올지 미지수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일본 측도 동북아 안보 불안지수를 높일 새로운 변수가 될 가능성을 경계하는 분위기다.

이에 따라 한국 정부로서는 동북아 갈등구도를 악화시키지 않으면서 주변국의 반대 없이 KADIZ 확대를 '연착륙'시켜야 하는 난제를 떠안고 있는 셈이다.

미국이 현 국면에서는 한국 정부의 입장을 지지하고 있지만 주변국과의 협의 등 상황전개에 따라 가변적인 태도를 취할 수 있다는 경계론도 제기되고 있다. '평가'라는 표현 속에는 외교적 함정이 있을 수 있다는 게 워싱턴 외교가의 시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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