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셉 바이든 미국 부통령이 3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를 시작으로 4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을 만났고, 6일 박근혜 대통령을 만나 이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지만, 동북아를 둘러싸고 각국의 이해가 첨예하게 맞붙는 상황이라 깔끔한 해결의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특히 정부는 기존의 방공식별구역(KADIZ)에 누락된 이어도 해역을 포함하는 새 구역 설정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미국과 일본의 반발이 예상보다 높은 상황이니 바이든 부통령이 한국을 방문할 때까지 기다려 보자"는 입장이다. 주권국가로서 당연히 취해야 할 조치임에도 마치 상전의 하회를 기다리는 하인 같은 태도다.
국회는 또 어떤가. 만사 제쳐두고 이 문제에 골몰해야 할 외교통일위원회와 국방위원회는 지난달 28일 이후 열리지 않고 있다. 국가 안보와 직결된 사안을 다루는 두 위원회가, 야당의 몽니로 상정은커녕 위원회조차 휴업상태인 것이다. "지금 국제 정세가 구(舊)한말과 비슷한 것 같다"는 한 여당 중진의 한탄이 절절하게 와 닿는다.
이번 위기에 대한 미지근한 대처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동북아 평화 협력 구상,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등 박근혜 정부의 3대 외교정책이 모두 진퇴양난에 빠진 것도 심히 우려되는 바다. 이른바 트릴레마(trilemma)에 봉착한 것이다.
북한의 도발→보상→재도발이라는 악순환을 끊겠다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경우, 미·중 간의 갈등 고조로 대북정책 공조에 균열이 생기고 북한을 지렛대로 한 중국의 콧대만 높아지게 됐다. 동북아 평화 협력 구상 역시 당분간 한·중·일 간의 논의 자체가 어렵게 됐다. 지난 10월 한·러 간에 합의를 본 유라시아이니셔티브 역시 북한의 최근 동향으로 볼 때 물 건너간 게 아니냐는 관측마저 나오고 있다. 그렇게 되면 그야말로 사면초가다.
국회는 지금 당장 외통위와 국방위를 열어 방공식별구역 확대를 결의하고, 정부는 바이든 대통령 방한에 앞서 이를 공식화해야 한다. 그것이 국가의 책무요, 대한민국을 주권국가로 스스로 천명하는 확실한 방법이다.
윤재석 CBS객원해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