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싣는 순서>
①부담 안되는 교통유발부담금…알고 보니 23년째 제자리
②캠페인 몇 번에, 5천만원 깎아주는 교통유발부담금
통행 신호가 들어왔지만 차량 한 대만 겨우 진입할 정도로 극심한 정체에 시달렸다.
백화점 이용객들로 차선 하나가 마비되면서, 어떻게든 파고들려는 차량들과 버스, 택시들이 뒤엉켜 수원역 앞은 한동안 주차장으로 변했다.
비슷한 시각 이 백화점으로 통하는 또 다른 도로도 상황은 마찬가지. 수백미터까지 뒤로 이어진 차량들 사이로 기다리다 지친 쇼핑객들이 도로 위를 걸어 백화점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쉽게 눈에 띄었다.
이처럼 교통 혼잡을 유발하는 시설물 소유자에게 사회·경제적 손실비용을 징수하기 위해 정부는 1990년부터 ‘교통유발부담금’ 제도를 도입·운영하고 있다.
부담금을 징수해 대중교통 확충과 교통수요관리 대책 등에 활용하겠다는 취지다.
부과대상은 각층 바닥면적의 합계가 1,000㎡ 이상인 시설물의 소유자이며, 부담금은 바닥면적에 단위부담금(1㎡당 350~700원), 시설물의 용도 등에 따른 교통유발계수를 곱해 산정한다.
이와는 별도로 지자체들은 자율적으로 교통수요관리에 참여하는 업체들에게 부담금의 일부를 감면해주는 ‘교통유발부담금 경감 조례’를 운영하고 있다.
통근버스 운영, 종사자 승용차 이용 제한 등 조례에서 정한 ‘교통량 감축 프로그램’에 동참하면 각 항목마다 정해진 비율에 따라 깎아주는 방식이다.
◈ “주차장 유료화하면 고객이 싫어해서…”, 감축 프로그램 참여 저조
그러나 매출감소 등의 이유로 A백화점을 비롯해 경기지역에서 가장 많은 부담금을 내고 있는 상위 50개 시설 중 교통량 감축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지 않은 시설은 29곳으로 절반이 넘는다.
또 전국 교통유발부담금 징수액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고 있는 서울의 경우 올 1월 현재 부담금 부과대상 시설 1만3,462곳 중 교통량 감축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는 시설은 2,704곳(20%)에 불과할 정도로 참여율이 저조하다.
교통유발부담금 도입 이후 23년 동안 한 번도 인상되지 않은데다, 매출액에 비해 교통유발부담금 자체가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미미해 기업들이 부담을 느끼지 않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황순연 한국교통연구원 연구원은 “기업들은 교통유발부담금 부담 자체가 크지 않기 때문에 교통량 감축 활동을 하는 것보다 그냥 한 번 내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며 “실제로 주차장 수입에 비해 부담금은 얼마 되지 않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해 1억9,000여만 원의 교통유발부담금을 낸 A백화점의 경우 그 해 매출액은 5,000여억 원에 달하며, 주차 수입은 부담금의 두 배가 넘는다.
기업 입장에선 주차장 유료화나 자동차 이용 제한 등으로 고객의 심기를 불편하게 해 매출이 떨어지는 것보다는 얼마 안되는 부담금을 내는 게 낫다는 것.
서울의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주차장을 유료화하면 고객들이 싫어할 것”이라며 “고객들에게 불편을 주지 않고 매출 감소를 최소화하는 선에서 감축 프로그램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전국적으로 ‘교통혼잡비용’(교통혼잡 때문에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은 2006년 24조6,000억 원에서 2010년 28조5,000억 원으로 매년 늘어 3조9,000억 원이 증가했다.
반면, 교통유발부담금은 같은 기간 1,300억 원에서 1,800억 원으로 500억 원 증가한 데 그쳤다.
2010년 기준 교통혼잡비용 대비 교통유발부담금 비율은 0.6%에 불과하다.
서울의 경우 3만㎡ 초과 대형시설물이 전체 발생 교통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6%에 달하는 점을 감안하면, 대형시설물들에 의해 발생하는 교통 혼잡에 대한 책임을 사회가 떠안고 있는 셈이다.
◈ 부담금 오르지만, 교통혼잡 비용 사회 전가는 여전
이에 따라 시민사회단체들 사이에서 교통유발부담금을 인상해 현실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교통유발부담금 인상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거세지자 정부 역시 인상을 추진하고 나섰다.
지난 9월 국토교통부는 1㎡당 350원이던 단위부담금을 2014년부터 2020년까지 연차적으로 올려 최대 1,000 원까지 인상하는 ‘도시교통정비촉진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하지만 이 안은 2014년부터 단위 면적당 1,000원으로 인상하려 했던 당초 안보다 후퇴한 것이었다.
또 그동안의 물가상승분만 반영했을 뿐, 교통혼잡비용을 고려하지 않아 시설 소유주들의 교통혼잡 비용에 대한 사회적 전가는 여전하다는 지적이다.
이지언 서울환경운동연합 기후에너지팀장은 “대형마트와 백화점 등은 하루 수천에서 수만 대의 승용차 고객을 끌어들여 막대한 매출을 올리면서도 그로 인해 빚어지는 교통 혼잡에 대해서는 가벼운 책임만 져왔다”며 “교통유발부담금을 인상하고 현실화해서 ‘원인자 부담 원칙’의 취지를 바로 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