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재앙 막기위한 ‘신(新)기후체제’...곡절 끝 첫발

바르샤바 기후협상 폐막... 평행선 협상 속 ‘신기후체제 재확인’

기후협상이 열리고 있는 폴란드 바르샤바 회의장 모습 (환경부 제공/노컷뉴스)

온실가스 배출량이 지금 추세대로 간다면, 21세기가 끝나기 전에 지구온도는 최대 5.4도까지 올라갈 것으로 예상된다. 과학자들이 기후변화로 인한 대재앙이 시작될 것으로 지적한 마지노선, 2도를 훌쩍 넘는 수준이다. 이미 전 세계는 필리핀을 휩쓴 역사상 가장 강력한 태풍 ‘하이옌’의 위력을 직접 목도했다.

과연 ‘지구온난화’라는 예견된 재앙을 벗어나기 위해, 인류는 온실가스 감축에 대한 전 지구적 합의에 도달할 수 있을까. 지난 2주 동안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진행된 기후 협상은 이 합의에 도달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얼마나 어려운지를 압축적으로 보여줬다.

◈ 진통 속 ‘신기후체제’ 로드맵 재확인

유럽연합을 포함한 195개 당사국이 참가한, ‘제 19차 UN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19)는 당초 폐막일인 22일을 훌쩍 넘긴, 23일 오후 9시(현지시각)에 극적인 합의를 도출했다. 합의 내용보다는 어떻게든 파국을 막고 신(新)기후체제가 이뤄져야 한다는 ‘전 지구적 합의’를 재확인했다는데 이번 회의의 의미가 있다.

이번 총회의 의장인 마르친 코롤레츠(Marcin Korolec) 전 폴란드 환경장관은 “바르샤바에서는 2015년 마무리되는 신기후체제 협상의 기반을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그렇다면 신기후체제란 무엇인가.

선진국들에게 온실가스 감축의무를 지운 교토의정서 연장기한이 2020년에 끝나면, 그 뒤 부터는 온실가스 감축 의무가 전세계 모든 국가들에게 부여된다. 이것이 바로 ‘신(新)기후체제’ 또는 ‘포스트 2020(post 2020)’이다. 전세계는 2015년 파리 총회에서 신기후체제의 밑그림을 완성하기로 지난해에 합의했다.


이번 바르샤바 총회는 2020년 이후 온실가스를 얼마만큼 어떻게 감축할 것인지를 논의하는 첫 회의였다.

◈ 상향식 감축 채택, 2015년까지 감축목표 내놔야

온실가스 감축 방식에 대해서는 상향식(bottom-up)과 하향식(top-down)이 서로 대립했다.

유럽연합은 2020년까지 지구온도 상승을 2도 이하로 억제하기 위한 감축 총량을 결정하고, 이를 각 국가에 강제 배분하는 하향식을 주장했다. 그러나 대다수 국가들은 각국이 스스로 감축량을 결정하고 이를 전체 회의에 가지고와 검증을 받는 상향식을 옹호했다.

중국 등 개도국 뿐 아니라 미국까지 상향식을 옹호하는 상황에서, 결국 감축 방식은 ‘상향식’으로 결정됐다. 이에따라 모든 국가들은 2015년 파리 총회가 열릴 때까지, 2020년 이후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제시해야 한다.

때문에 이번 회의에서는 각 국가들이 국내에서 감축량을 산정하기 위한 준비 작업을 하루빨리 시작해야 한다는 합의도 도출됐다. 내년 페루 리마 총회에서는 본격적인 신기후체제 협상이 시작되는데, 이를 위해 각 국가들이 자국의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설정하기 위한 준비 작업에 시급히 착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상향식 감축을 주장해 왔고, 이미 2020년까지 온실가스를 BAU(배출전망) 대비 30% 감축하겠다는 목표를 설정해 놓고 있다. 한국에는 당장 큰 부담이 없는 합의 수준으로 평가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윤성규 환경부 장관(왼쪽 두번째)이 기후협상 수석대표로 활동했다.(환경부 제공/노컷뉴스)

◈ ‘빈 껍데기’ 논란 GCF도 일부 성과

이와함께 다음달 우리나라에 사무국을 여는 녹색기후기금(GCF: Green Climate Fund)에 대해서도 일정부분 진전이 이뤄졌다. GCF는 개발도상국들이 온실가스를 감축하고, 기후변화에 대응하는데 필요한 재원을 대주기위해 조성되는 기금이다. 일단 2020년까지 1천억불 조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당초, 재원을 내겠다고 약정한 나라들이 거의 없어 GCF는 빈 껍데기(empty shell)로 출발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됐다. 그러나 이번 기후협상에서 이미 4천만불을 약속한 우리나라를 비롯해, 노르웨이, 영국, 독일, 스웨덴 등이 GCF의 재원 공여 의사를 표명하는 등 일부 진전이 있었다.

또 당사국들은 내년 리마 총회까지 GCF의 초기 재원 조성을 위한 준비작업을 완료하도록 촉구하는 지침을 결정했다. 기후재원 마련을 위한 고위급 작업반을 설치하자고 제안한 우리나라의 요청도 받아들여져, 2년에 한번씩 기후재정 장관급 회의를 열기로 합의했다.

◈ 타협의 산물... 바르샤바 메커니즘

슈퍼태풍 하이옌과 같이 기후변화로 발생한 예측불가능한 재해에 대해 재원과 기술을 지원해주는 이른바 ‘바르샤바 메커니즘’을 구축하기로 한 것도 성과로 손꼽힌다.

하이옌의 위력을 지켜본 개도국은 예측불가능한 재해로 발생한 ‘손실과 피해’에 대해 선진국이 재원을 추렴해 별도의 기구를 만들자고 강하게 주장했다. 그러나 추가 부담을 우려한 선진국들은 기존의 제도 안에서 해결하자는 입장으로 맞섰다.

협상 막바지까지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 팽팽한 줄다리기가 벌어졌으나, 별도의 집행위원회(executive committee)를 설치해 3년 동안 논의를 진행하는 일종의 ‘타협’을 봤다는 해석이다.

◈ 온실가스 배출 7위, 한국에 던져진 과제는..

올해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열린 기후협상은 2015년 합의로 가는 첫 단계로, 이른바 음식을 내놓기 전에 ‘상을 차리는 단계’ 정도로 인식됐다.

하지만 슈퍼태풍 하이옌의 소식으로 시작해, 필리핀 수석대표의 단식, 일본의 온실가스 감축목표 후퇴, 총회 의장인 폴란드 환경장관의 경질, 선진국과 개도국의 첨예한 논쟁 등 우여곡절이 많았던 회의로 기록됐다.

여러 잡음과 논란, 그리고 치열한 막판 논쟁이 있었지만, 전 세계는 이번 바르샤바 총회를 통해, 기후변화라는 대재앙을 피하기 위해서는 신기후체제를 피할 수 없다는 점을 재확인했다.

전세계 7위 온실가스 배출국으로, 경제규모보다 더 많은 양의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있는 우리나라는 앞으로 어떻게 신기후체제에 적응할 것인가. 이번 총회 이후 우리에게 던져진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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