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를 잃은 우석(정재영)은 시간 이동 프로젝트에 집착하고, 기업의 투자를 계속 받기 위해 후배 연구원 영은(김옥빈)과 함께 시간 이동 테스트를 감행한다. 두 사람은 24시간 뒤인 내일 오전 11시로 이동하나 누군가의 공격 탓에 폐허가 된 기지를 보게 되고 유일한 단서인 CCTV를 복사해 다시 오늘로 돌아온다.
'광식이 동생 광태'(2005), '시라노; 연애조작단'(2010) 등에서 감각적인 연출력을 선보인 김현석 감독이 연출했다. 이 영화를 함께 본 신진아 이진욱 기자가 감상을 주고받았다.
이진욱 기자(이하 이) : 시간 여행은 언제나 호기심을 자극하는 소재다. 열한시는 먼 과거나 미래로의 긴 시간 여행이 아니다. 고작 24시간 앞의 미래까지만 갈 수 있다는 설정으로 극의 긴박감과 몰입도를 끌어올린다.
신진아 기자(이하 신) : SF적 소재를 끌어들인 열한시를 보면서 한국영화 수준이 높다는 것을 다시금 느꼈다. 새로운 시도인데 해저에 지은 연구소나 타임머신 세트 등이 조잡하지 않고 그럴싸했다. 드라마의 몰입을 돕기에 충분했다.
이 : 주요 세트뿐 아니라 시간이동 과정을 표현한 CG 등에도 무척 공들인 만듦새다. 극중 시간 여행을 가능케 하는 과학 이론도 시나리오 단계에서부터 철저한 전문가 검증을 거쳤다니, 극의 사실성을 극대화하려 한 흔적이 곳곳에 묻어난다.
신 : 주요 등장인물이라곤 7명의 연구원이 전부다. 자칫 지루할 수 있는 상황인데 기대보다 흥미롭게 이야기가 전개돼서 끝까지 집중했다.
이 : 아마도 눈치 빠른 관객들은 이 영화가 밀실공포극이라는 것을 예상했을 것이다. 대부분 어두운 조명 아래서 끊임없이 서로 물고 물리는 상황을 연출한다. 그래서 중간 중간 삽입된, 밝은 조명의 회상신은 캐릭터에 대한 이해는 물론 긴박한 상황의 숨통을 틔워 주는 역할도 한다.
신 : 김현석 감독이 로맨틱 코미디가 장기여서 그런지 인물들끼리 감정적으로 엮어 있다. 정재영 김옥빈 최다니엘이 학교 선후배 사이고, 김옥빈의 아버지가 정재영의 지도교수였다. 공적인 관계면서 사적인 사이인데, 세 사람의 얽히고설킨 감정적 디테일이 잘 살아 있다.
이: 극중 인물들은 24시간 뒤 자신들이 죽게 된다는 사실을 아는 극단적인 상황에 놓인다. 이를 통해 '만약 내일 일어날 일을 알게 된다면 현재의 나는 어떻게 행동할까?'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진다.
신 : 나라면 정재영의 선택에 반대! 정재영은 연구소가 11시에 폭파하면 10시59분까지 방법을 찾겠다고 한다. 포기를 모르는 의지의 인간으로 볼 수도 있으나, 그의 독단적인 태도는 주위 동료들을 위험에 빠뜨린다.
이 : 이는 곧 과거에 얽매인 현재의 내가 어떻게 행동하고 있는지를 아는 것과도 맞닿아 있는 듯하다. 결국 미래에 대한 답은 과거를 성찰하는 데 있는 것일까?
신 : 흔히 과거에 집착하면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마저 망친다고들 한다. 더불어 나를 죽이는 것은 결국 나라는 점이 흥미로웠다.
이 : 이미 연기력이 검증된 배우들을 전면에 내세운 만큼 캐릭터 몰입도는 안정적이다. 선 굵은 연기를 보여 주는 베테랑 남자 배우들 틈바구니에서 존재감을 잃지 않는 20대 여배우 김옥빈이 인상적이었다.
신 : 김현식 감독 영화에 자주 이름을 올린 '창조적 재담가' 박철민은 이번에도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심각한 상황에서조차 농담 섞인 대사를 던진다. 소녀시대 윤아와 미스에이 수지가 결혼했다고 절망하는 농담부터 후반부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줄 알았지'까지 박철민은 보기만 해도 즐거운 배우인 것 같다.
이 : 극작가이자 평론가인 조지 버나드 쇼(1856-1950)의 묘비명에서 절정에 이르렀다. 정재영도 간혹 실소가 나오는 농담을 던지는데, 장르를 불문하고 '유모어'에 욕심을 보이는 김현석 감독의 성향이 엿보였다.
신 : 악몽의 23시간 이후 세 인물의 과거를 보여주는 회상 신이 묘한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한때 눈부셨던 그들이 어떡하다 지금에 이르렀을까, 어디서 무엇이 잘못 됐을까, 그런 생각이 들면서 한때 패주고 싶던 정재영 캐릭터에게 연민의 마음도 들었다. 우리 모두 그렇게 후회스런 과거가 있고, 돌이킬 수 없는 것들에 매달리는 그런 면을 지니고 있지 않을까. (웃음)
이 : 타임머신의 이름이 '트로츠키'라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스탈린과의 권력투쟁에 밀려 전 세계를 떠돌던 혁명가 트로츠키(1879-1940)는 자신의 죽음을 직감한 듯 암살되기 얼마 전 유언 같은 글을 남겼다. 그중 일부를 소개하면 이렇다. '내가 다시 새로이 시작할 수만 있다면 이런저런 실수들을 피하려고 노력할 것은 물론이지만, 내 인생의 큰 줄기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 죽음을 앞두고 지난 삶을 긍정하고 겸허히 받아들이는 이 문장과 영화 열한시의 결말이 묘하게 겹친다.
15세 관람가, 99분, 28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