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에 따르면 영국 식민지였던 홍콩의 주권이 중국에 반환된 1997년을 전후해 공산당 통치를 두려워한 홍콩 주민들의 이민 행렬이 이어졌지만 이번에는 대륙에서 대거 몰려온 중국인의 등쌀에 밀려 미국, 호주, 캐나다 등의 서방 국가로의 이민이 다시 늘고 있다.
캐나다 이민 컨설턴트사인 '로스 인터내셔널 캐나다'의 메리 찬(陳)은 이 회사 홍콩 사무실이 이민 상담자들로 붐비고 있다고 말했다.
또 대만 영자지 차이나포스트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대만 이민을 신청한 홍콩인은 전년 동기에 비해 6배 증가했고, 지난 9월 신청자는 700명에 육박했다.
홍콩에서는 1997년 주권의 중국 회귀를 앞둔 시기와 1998년 아시아 금융위기에 이어 2003년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창궐 때 이민 붐이 일었지만 이번 물결에는 다른 사정이 있다. 정치ㆍ사회적 환경이 악화돼 이민으로 내몰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홍콩 주권 반환으로 정치에 대한 중국의 간섭이 심해져 정치적 자유와 보통선거권 등이 위협당하고 있는 가운데 대륙인들의 대거 유입으로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고 학교, 병원 등 공공시설이 대륙인에 '점거'돼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민 상당사인 찬은 "홍콩 주민들은 현 상황에 불만이다"면서 "주민 대다수는 어려워진 양질의 교육과 비싼 주택 가격때문에 걱정이 크다"고 했다.
올해 상반기 약 4천명의 홍콩인이 이민을 떠났다. 작년 동기대비 8% 증가한 수준이다.
홍콩의 의회 격인 입법회의 페르난도 청(張超雄) 의원은 "이민이 주민 간에 화제가 되고 있다"면서 "생할비가 비싸지고 있고 시내 중심가에는 소형 아파트 가격이 100만달러를 호가한다"고 설명했다.
청 의원은 그러나 무엇보다도 베이징 당국의 간섭과 배후 조정이 강화되면서 홍콩의 정치적 자치권이 침식당하고 있는 데 대한 주민들이 좌절감이 크다고 역설했다.
지난 10년간 홍콩에 정착한 대륙인이 50만명에 이른다. 7백만 홍콩 인구의 7.1%를 차지하는 규모다.
홍콩인들은 대륙인의 대량 이주를 '메뚜기떼'의 습격이라고 부른다. 그들이 홍콩의 자원을 탐욕스럽게 소비하고 학교와 병원 등 공공시설을 점령해 버린다는 이유에서다.
지난 9월 홍콩 학부모들은 개학 시즌을 앞두고 유치원 앞에 일찌감치 진을 쳤다. 대륙 출생의 아이들에게 입학권을 뺏기지 않으려는 안간힘이었다.
두 아이의 어머니인 한 회사 임원은 가족이 북미 이민 수속을 밟고 있다면서 집에서 쫓겨 나는 비참한 심정이라고 눈물을 글썽였다. 홍콩을 사랑하지만 홍콩에 톈안먼(天安門) 유혈 사태가 재현될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있다고 했다.
베이징 당국은 홍콩인이 적개심이 커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당국은 홍콩 전문가 그룹이 내년 여름 상업 중심지인 센트럴(中環)을 점령해 시위를 벌일 계획에 비상이 걸렸다.
센트럴의 상당수 유권자들은 중국이 홍콩 인구 구성 비율에 '물타기'를 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대륙인을 대거 홍콩에 유입시키는 '인해전술 전략'을 쓰고 있다는 의혹을 갖고 있다고 VOA는 전했다.
중국이 신장위구르자치구와 티베트자치구에서 실시하고 있는 소수민족 압박 정책을 홍콩에 적용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있다.
홍콩에 지난 50년 동안 8번째 이민 물결이 일고 있다. 새 물결이 미칠 파장과 베이징 당국의 대응이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