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사 문제와 한국 법원의 강제징용 배상판결이 한일관계의 뇌관으로 부상한 가운데, 이들 문서에는 기존에 밝혀지지 않은 일제 강점기 한민족의 항쟁과 수난사를 규명하는데 도움되는 내용들이 상당수 포함된 것으로 알려져 파장이 예상된다.
17일 복수의 정부 소식통에 따르면 지난 6월께 주일대사관 청사 신축에 따른 이사 과정에서 3·1운동 희생자, 조선인 징용·징병 피해자, 간토대지진 학살 희생자 등의 이름이 적힌 명부 수십권이 서고에서 발견됐다.
발견된 자료에는 1950년대 초반 한국에서 작성돼 일본으로 건너간 문서와 함께 재일본대한민국민단(재일민단)이 자체 조사를 거쳐 작성한 피해기록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관계자는 "기존에 알려지지 않은 의미있는 내용들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독립운동사와 강제동원 진상 규명 차원에서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소식통들은 작성된 문서들이 한국전쟁과 전후복구 시기인 1950년대 초반 한국 정부가 일본과의 협상 등에 사용하기 위해 작성 또는 취합해 주일대사관으로 넘긴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정부 관계자는 "한국전쟁으로 매우 어려웠던 시기에 이승만 정부가 대외협상에 필요한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자료를 만든 것 같다"며 "대일 협상을 위해 전국 면 단위별로 일제에 의한 피해 사례들을 조사해 당시 내무부가 취합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전했다.
다른 관계자는 "전쟁으로 어수선한 시기에 이승만 정부가 대일 협상을 위해 피해 상황을 조사, 명부를 만든 사실이 확인된 것도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주일대사관은 문서들에 대한 1차 분석을 거친 뒤 지난 7월 안전행정부로 이관했다. 이에 따라 안행부 산하 국가기록원은 기존에 정부가 보유한 명부 및 자료와 대조·분석 작업을 진행 중이며 조만간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라고 소식통들은 전했다.
1919년 3월1일 시작된 거국적인 항일 독립운동이었던 3·1운동의 희생자 규모의 경우 당시 일제 통계에 따르면 발발 이후 3개월간 시위 진압 과정에서 사망자 7천509명, 부상자 1만5천961명, 구금자 4만6천948명이 발생한 것으로 적혀 있지만 실제 피해는 더 큰 것으로 추정된다.
또 강제동원 피해자 수의 경우 일본 후생성 자료를 기초로 작성된 것으로 알려진 '조선경제 통계요람'에 의하면 일제가 1938년 4월 '국가 총동원법'을 공포한 이후 강제 동원한 조선인은 104만∼116만명(징용자 80만명, 군인 13만∼21만명, 군속 11만∼15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아울러 1923년 9월1일 발발한 간토 대지진(규모 7.9)을 계기로 일본 군대와 경찰, 자경단이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는 등 유언비어를 유포하며 재일 조선인을 학살한 사건의 경우 당시 임시정부는 사망자 수를 6천명 정도로 추정했다.
한 정부 관계자는 "방대한 분량의 명단이 어떤 목적으로 작성돼 주일대사관으로 건너갔는지, 어떻게 사용됐는지에 대해서도 규명 작업이 진행중"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