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필리핀 하이옌 피해, 천재보단 인재"

부실시공·인구밀집·지구온난화 등이 피해 키워

초대형 태풍 '하이옌'으로 필리핀에서 1만 명 이상이 사망하는 등 엄청난 피해가 발생한 것은 천재라기보다는 인재(人災)의 측면이 더 크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사상 최악의 강력한 바람과 폭풍해일 등을 동반한 만큼 피해는 불가피했지만, 절대적인 빈곤에서 비롯된 부실한 건물과 과도한 인구밀집, 지구온난화 등으로 인해 피해규모가 엄청나게 커졌다는 점에서 인재라는 것이다.

미국 마이애미대학에서 허리케인을 연구하는 브라이언 맥놀디는 이번 재앙의 75∼80%는 자연보다는 인간의 책임이라고 지적했다.

물론 하이옌이 필리핀에 상륙할 때 미국 인공위성에서는 풍속이 시속 314㎞, 현지 기상청은 시속 237㎞나 됐던 것으로 파악되는 등 태풍 관측 사상 최고 풍속을 기록했다.

게다가 필리핀은 7천 개의 섬으로 이뤄져 있는데다 해수면이 따뜻해 지속적으로 태풍에 에너지를 공급해 줄 수 있어 육지에 상륙해도 좀처럼 태풍의 위력이 줄어들지 않는 등 아시아에서도 태풍에 가장 취약한 지역으로 꼽힌다.

기후정보 웹사이트 웨더 언더그라운드의 기상전문가 제프 매스터스는 또 비공식기록이기는 하지만 20세기와 21세기 발생한 강력한 태풍의 절반 정도가 필리핀을 강타했다고 전했다.

기상학자들은 그러나 절대빈곤과 함께 엄청나게 인구가 증가한데다 이들이 태풍에 취약한 해안가에 부실시공된 건물에서 집단거주한 점이 이번 재앙의 핵심 원인 가운데 하나라고 지적했다.


심지어 태풍 대피소 건물마저 부실해 하이옌을 견뎌내지 못했다고 이들은 덧붙였다.

세계은행의 2012년 보고서에 따르면 필리핀에서는 10명 중의 4명이 태풍 피해에 취약한 인구 10만 명 이상의 도시에 거주하고 있다.

하이옌의 집중 피해를 본 타클로반도 최근 40년간 인구가 7만6천명에서 22만1천명으로 늘었다.

하지만 이 도시의 가옥 3분의1이 외벽이 나무로 돼 있고, 7분의1은 초가지붕으로 돼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 같은 부실한 주거건물은 하이옌보다 약한 태풍에도 큰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리처드 올슨 플로리다 국제대학의 극심상황 연구소 소장은 "도시가 제대로 된 건물 건축기준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50년내 2∼4배로 급격하게 커지면 이처럼 도시 시한폭탄을 가지고 있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고 말했다.

과학자들은 인간이 만들어낸 지구온난화도 해수면이 상승하고 태풍의 위력을 강하게 하는데 기여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2008년 발표한 한 연구결과에서는 하이옌이 발생한 태평양 북서지역에서 가장 강력한 태풍 상위 1% 경우 지난 30년간 매년 평균 풍속이 시속 1마일(1.6㎞)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그 원인으로 지구 온난화가 지목됐다.

이 연구결과를 발표한 미국 국립기상자료센터(NCDC)의 제임스 코신 연구원은 "강력한 태풍이 더욱 강력해지고 있다"며 "하이옌은 우리가 연구한 내용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예"라고 말했다.

콜로라도 대학의 스티븐 네럼 교수는 필리핀의 해수면은 지난 20년간 0.5인치(약 1.27㎝) 높아졌으며 이는 전세계 평균의 3배에 달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해수면 상승은 폭풍해일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인간들이 이처럼 인재를 만들어내기도 하지만 내구성이 강한 빌딩을 건축하고 제대로 된 경고시스템, 정부의 빠른 대응 등으로 피해를 크게 줄일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케리 에마누엘 매사추세츠공대(MIT) 열대기상학과 교수는 방글라데시에서도 1970년대 사이클론으로 엄청난 인명피해가 났으나 국제사회가 튼튼한 대피소 등을 만들어줌으로써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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