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지난 5월 서울 관악구 남현동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집에 화염병이 날아들었다.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었지만 경찰은 중대한 보안사건으로 판단, 대대적인 수사에 나섰다. 경찰은 집 주변과 시내버스의 CCTV 영상 등을 통해 회사원 임모(36) 씨를 검거했다. 그러나 법원은 “제출된 증거만으로는 임 씨를 범인으로 특정하기 어렵다”며 경찰이 신청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이에 경찰은 ‘오른쪽 무릎이 약간 바깥쪽으로 휘어져 걷는’ 임 씨의 걸음걸이에 착안했다. 마침 한국을 방문 중이던 영국의 법의학 전문가는 영상 분석을 거쳐 집 근처 CCTV에 찍힌 남성이 임 씨로 보인다는 소견서를 써줬다. 법원은 결국 임 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1955년에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가 분리·신설됐고, 63년에는 시·도경찰국 수사과에 ‘감식계’가 신설됐다. 지문 감정 외에도 족흔적 감식, 몽타주 수배, 거짓말탐지기 등 근대적 과학수사의 기틀이 마련된 것도 60년대였다.
그리고 1999년 지문계와 감식계를 통합한 ‘과학수사과’의 신설로 ‘과학수사’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했고, 이는 현재의 ‘과학수사센터’로 이어지며 과학수사 전반에 대한 업무를 관장하는 조직체계를 구축했다. 한국의 과학수사가 획기적인 발전을 이룬 것도 바로 이때부터다.
범죄관련자의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 가장 널리 쓰이는 기법은 지문과 유전자(DNA) 증거이다. 경찰은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지난 몇 년 사이 △섬유, 페인트 등 범죄현장의 매우 작은 증거를 찾는 ‘미세증거 분석’ △핏방울의 위치와 크기 등을 토대로 범행을 재구성하는 ‘혈흔형태 분석’ 등을 도입, 활용하고 있다.
최근에는 △지문보다 식별이 용이한 손바닥 지문을 활용하는 ‘장문 분석’ △범인 추적과 용의자 구별에 개를 이용하는 ‘체취증거 기법’ △CCTV 영상 등과 걸음걸이 특징을 비교·분석하는 ‘걸음걸이 분석’ △내수면에서 일어나는 범죄를 체계적으로 감식하는 ‘수중 과학수사 기법’ 등을 활용하거나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경찰은 아울러 350만대 이상의 CCTV와 최근 보급이 늘고 있는 차량 블랙박스 영상 등을 수사에 활용하기 위해 수사기관이 보유 중인 중요 범죄자의 얼굴과 비교해 바로 신원을 확인할 수 있게 하는 ‘자동 얼굴인식 시스템’을 오는 2017년까지 개발할 계획이다.
경찰 관계자는 “사법환경의 변화에 따라 증거 중심의 과학수사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며 “경찰은 날로 지능화돼 가는 범죄에 대응하기 위해 새로운 기법을 끊임없이 연구, 도입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경찰은 4일 제65주년 과학수사의 날을 맞아 제9회 대한민국 과학수사대상 시상식을 열고 신강일 충북지방경찰청 경사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마약분석과 등에 포상을 수여한다.
11년 3개월 동안 521건의 현장을 감식한 신 경사는 지난 6월 과테말라를 방문, 살인사건의 증거물에서 지문을 채취해 사건 해결에 기여하는 성과를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