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에 '일제 땅' 수두룩…자존심 버린 '기재부'

지적재조사 사업예산 96% 삭감...100년 된 지적도 20년 이상 사용해야 된다

자료사진(이미지비트 제공)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휘경동 49-396 도로 119㎡와 부산광역시 강서구 대저2동 3627-3 논 241㎡의 땅주인은 동양척식주식회사이다.

일본이 지난 1908년 대한제국의 토지와 자원을 빼앗기 위해 설치한 동양척식주식회사의 땅이 2013년 지금도 등기부와 토지대장에 버젓이 기록돼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토지관리 업무가 아직도 일본 잔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일본 잔재를 걷어내기 위해 국토교통부가 2012년부터 지적재조사 사업을 진행하고 있지만, 예산 당국이 2014년도 관련 예산 96%를 삭감했다는 점이다.

세수 확보에 비상이 걸린 기획재정부가 국가 자존심마저 팽개쳤다는 비판을 받는 대목이다.

◈ 100년 전 일본 지적도 사용하는 한국

우리나라의 지적(地籍) 역사는 일제 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제치하 임시토지조사국이 지난 1910년부터 1918년까지 실시한 토지조사와 1924년까지 이뤄진 임야조사를 통해 지적도와 토지대장이 만들어져 지금까지 100년 동안 사용하고 있다.

그동안 우리 정부는 5년에 한 번씩 수립하는 ‘국가공간정보정책 기본계획’을 통해 지적 업무 개선방안을 논의했으나 유야무야 넘어오다, 지난 2012년부터 지적재조사사업을 본격 시행하게 됐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 전체 면적의 15%인 550만 필지가 ‘지적 불부합’ 토지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지적 불부합’ 토지는 지적도에 나타난 경계와 실제 경계가 완전히 달라 현장에서 직접 측량을 통해서만 수정이 가능하다.

나머지 85%의 토지는 지적도 경계와 실제 경계가 큰 차이가 없어 좌표변환을 통해 수정이 가능할 것으로 국토부는 내다보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좌표변환도 지난 1910년 일제 강점기 당시 일본 동경좌표를 근간으로 설정돼, 세계측지계 기준으로 전환하는 과정이 남아 있다.

국토교통부는 이처럼 지적재조사 사업을 하기 위해선 오는 2030년까지 최소한 1조3천억 원의 예산이 소요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 내년에 840억 원 필요...정부 확정 예산은 달랑 30억원

지적재조사는 잘못된 토지경계를 재조정하고 이를 디지털 자료로 전환하는 사업으로, 현장 측량과 전산화 작업 등에 많은 예산이 소요된다.

국토교통부는 올해 지적재조사 사업에 215억 원을 투입한데 이어, 내년에는 840억 원을
편성했다.

하지만 기획재정부는 세수 부족등의 이유로 국토부가 요구한 예산의 96%인 810억 원을 삭감하고, 달랑 30억 원을 책정해 국회에 제출했다.


사실상 지적재조사 사업을 하지 말고, 일본 잔재도 청산하지 말라는 얘기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당초 기획재정부는 지적재조사 사업비의 일부를 지방자치단체가 부담해야 한다는 입장이었지만, 자신들의 이 같은 요구가 수용되지 않았다며 예산을 가위질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민주당 윤후덕 의원은 국정감사 자료를 통해 “지방재정이 어려운 상황에서
자치단체에 예산을 부담하도록 한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기재부 꼼수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익명을 요구한 국토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지적재조사가 연차 사업으로 오는 2030년까지 진행돼야 하지만, 내년도 예산이 사실상 전액 삭감되면서 차질이 불가피하다”며 “일본의 대표적인 잔재물인 지적도를 앞으로도 20년 이상 사용해야 한다는 사실에 자괴감이 든다”고 불만을 나타냈다.

◈ 박근혜 정부의 ‘공간정보’ 정책...사상누각 될 판

국토교통부가 지난 3월 박근혜 대통령에게 업무보고를 하면서 가장 먼저 보고한 사업이 바로 ‘공간정보’ 정책이다.

국민들이 언제 어디서나 인터넷과 모바일 기기만 있으면 다양한 공간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오는 2017년까지 4만6천여 명의 일자리가 창출될 것으로 내다봤다.

심지어, 정홍원 국무총리는 지난 7월 국가정책조정회의에서 “공간정보는 다양한 산업과
기술의 융복합을 통해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중요한 자원“이라며 ”창조경제를
이끄는데 중심이 될 수 있도록 관련 부처는 적극 노력해 달라“고 당부까지 했다.

하지만 정부의 이 같은 장밋빛 창조경제 전망은 모래위에 쌓은 성이 될 판이다.

공간정보를 위해선 가장 중요한 것이 지적도인데, 내년도 지적재조사 사업비가 96%나 삭감됐기 때문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이번에 지적재조사 사업비가 삭감되면서, 박근혜 정부의 핵심 국토정책 중 하나인 ‘공간정보’ 정책도 차질이 불가피하다”며 “20세기에 만들어진 지적도를 바탕으로 21세기 공간정보를 만들 수는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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