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사능 공포가 수산물 지도를 바꿔놓고 있다. 일본 후쿠시마(福島) 원전과 가까운 동해와 남해산 수산물은 외면받는 반면 서해에서 잡히는 새우나 꽃게는 인기를 끌고 있다. 높은 몸값을 자랑하던 제주갈치가 아프리카 세네갈산(産)에 밀리는 일까지 벌어졌다.
경기도 일산 정발산에 사는 주부 임은경(32) 씨. 그는 가급적이면 수산물을 사지 않는다. 하루가 멀다 하고 일본 후쿠시마(福島) 원전에서 방사능 유출 소식이 들려오는 데다 원산지를 살짝 바꿔 시중에 유통되는 수산물이 많아서다. 임씨는 "아이가 어리기 때문에 먹거리에 조심할 수밖에 없다"며 "국내산 수산물이라고 해서 무조건 믿을 수 없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높은 몸값으로 다이아몬드갈치로 불리던 제주산 갈치값이 뚝 떨어졌다. 사진은 제주도 어민들이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직접 판촉활동에 나선 모습. (사진=더스쿠프 제공) 방사능 공포가 국내 주요 수산물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특히 일본 후쿠시마와 맞닿아 있는 동해에서 주로 나는 수산물의 값이 연일 하락하고 있다. 고등어(도매가)와 물오징어는 1년 전보다 각각 30.1%, 18% 떨어진 값에 팔리고 있다. 제철을 맞은 굴의 처지도 마찬가지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10월 10일 굴상품 1kg의 평균 도매가는 7600원으로, 1년 전에 비해 23.5%(9940원)나 하락했다. 굴 생산량이 줄어들었음에도 가격하락을 피하지 못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관계자는 "최근 고등어·오징어·명태 갈치 같은 (동해에서 많이 나는 어종의) 소비가 많이 줄어들었다"며 "어획량은 평년과 비슷한데 수요가 줄어 가격이 떨어졌다"고 분석했다. 그는 "올여름부터 방사능 이슈가 불거지면서 소비자 사이에서 수산물 기피 현상이 심해졌다"고 덧붙였다.
국내산만이 아니다. 원전과 가까운 지역의 러시아·중국산 수산물에 대한 소비자 불신은 되레 커졌다. 관세청이 발표한 '유통이력 관리 수산물 수입동향'에 따르면 러시아산 명태 수입량은 지난해 20만9000여t에서 올해 9월까지 12만여t으로 크게 감소했다. 중국 수산물 수입량은 2011년 10만5000여t에서 지난해 7만979t 올해 9월까지는 4만8000여t으로 뚜렷한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반대로 서해안에서 주로 잡히는 꽃게와 새우 몸값은 올랐다. 연평도 꽃게 어획량은 1500t 정도로 지난해보다 67%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데 가격은 오히려 지난해보다 조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새우값도 올랐다. 국산 양식 새우는 10월 6일 주산지인 전남 신안과 목포에서 1㎏에 1만3000~1만4000원에 거래됐다.
방사능 공포가 수산물 기피 현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수산시장을 방문하는 손님도 눈에 띄게 줄었다. (사진=더스쿠프 제공) 지난해 같은 기간 판매 가격(8000~9000원)보다 50~60% 오른 수준이다. 충무로 지역 한곳에서만 30년 동안 해물 칼국수 전문점을 운영하고 있는 한 상인은 "가격 부담 때문에 태국산 새우를 썼는데 그마저도 3~4달 전과 비교해 40% 가까이 올랐다"며 "국내산 새우는 말할 것도 없이 비싸다"고 말했다.
◈ 서해안 새우, 꽃게 인기 좋아
더욱 흥미로운 부분은 수입산 수산물의 판도 역시 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 중심엔 아프리카산 수산물이 있다. 10월 10일 관세청 발표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9091t이 수입된 세네갈산 냉동갈치는 올 9월 현재 1만3229t으로 크게 늘어났다.
지난해에는 중국산 냉동갈치의 수입량이 가장 많았지만 올해는 세네갈산이 1위를 차지했다.
특히 세네갈산 갈치는 비싼 몸값을 자랑하던 제주산 갈치까지 뛰어넘었다. 올 10월 초 한 대형마트에서 제주산 냉동갈치 가격은 100g당 3490원이었는데 같은날 세네갈산 냉동갈치는 100g 당 5980원에 팔렸다. 아프리카 국가인 튀니지 뱀장어 수입비중도 지난해 전체 5.5%에서 올 9월 현재 11.4%로 두배가량 늘어났다. 이마트 관계자는 "방사능 우려가 확산되면서 국내 수산물 소비가 위축됐다"며 "과거에 비해 수입산을 찾는 고객이 많이 늘었다"고 말했다. 그는 "소비자가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해외 수산물 확대에 힘쓰고 있다"며 "국내 수산물 소비 촉진을 위해 판촉활동은 물론 방사능 측정기를 구비해 놓는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 Issue in Issue 어민 잡는 방사능
정부대책 나왔지만 어민들은 '시큰둥'
방사능 공포로 인해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건 어민 등 어업 종사자들이다. 서울 충무로 지역에서 참칫집을 운영하는 상인 김정민(가명)씨는 "올 8월부터 참치와 관련해 인터넷에 방사능 괴담에 퍼지면서 매출이 절반 이상 줄어들었다"며 "가장 큰 문제는 소비자들이 해산물이라면 무조건 피하는 현실"이라고 하소연했다. 실제 올여름 온라인에 일본 후쿠시마 원전의 방사능 오염수로 태평양에서 잡히는 참치가 오염됐을 것이란 글이 잇따라 오르면서 참치 전문점 여럿이 문을 닫았다. 김씨는 "최근에만 주변 참치집 두곳이 문을 닫았다"며 "앞으로가 더 문제"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한 수산시장 상인은 "어디에서 잡혔냐고만 묻지 실제로 구매하는 고객은 별로 없다"며 "요즘은 국내산과 관계 없이 장사가 잘 되지 않는다"고 털어놨다.
문제가 커지자 정부는 다양한 정책을 내놓고 있다. 정부는 9·6 임시특별대책으로 일본 후쿠시마 주변 8개현에 수산물 수입을 전면 금지하고 그 외 지역의 수산물에 세슘 미량 검출 시 플루토늄 및 스트론튬 등 기타핵종에 대한 검사증명서를 추가로 요구하고 있다.
10월 7일 해양수산부는 일본산 고등어 등 수산물의 원산지 거짓표시 방지를 위해 매월 국립수산물품질관리원, 지방자치단체, 해양경찰청 등 관계기관 합동으로 특별단속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원산지 거짓표시로 적발되면 7년 이하 징역이나 1억원 이하 벌금을 부과하는 등 처벌 수위도 높였다.
정부가 각종 정책을 쏟아내고 있음에도 소비자들은 여전히 불안하다는 반응이다. 한 소비자는 "국내 해안에서 잡힌 수산물은 안전하다고 하는데 원산지를 속이면 그만 아니냐"며 "바다에서 돌고 돌면 결국 방사능에 노출된 수산물을 먹게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