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요인 쏙 빠진 정체불명 펀드名

펀드가 물리쳐야 할 유혹

펀드가 일반화된 지 수십년이 지났다. 펀드 대중화에 가장 큰 기여를 한 곳은 은행이다. 은행은 펀드 실적이 좋을 때마다 캠페인까지 내걸며 각종 펀드를 소비자에게 권해왔다. 하지만 보편적인 투자방법이 된 펀드를 속속들이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펀드명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제도는 정착하는 과정에서 혼란을 겪는다. 펀드 역시 그랬다. 펀드를 잘 모르는 소비자는 어떤 게 좋은지 나쁜지 판단하는 과정에서 이익을 보거나 손해를 봤다. 그럼 펀드가 일반화된 지금, 당시 혼란을 겪었던 소비자는 제대로 된 펀드를 고를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펀드에 투자하는 소비자는 여전히 혼란스럽기 짝이 없다.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들어도 이해하기 어려운 펀드 이름에 있다.


2013년 한해 동안 신규자금이 가장 많이 유입된, 다시 말해 가장 인기가 많았던 펀드를 살펴보자. 기본적으로 100억원 이상의 자금이 들어왔다. 신규자금이 가장 많이 유입된 신영밸류고배당펀드는 무려 6821억원이 증가했으니 대단한 규모다. 웬만한 상호저축은행의 전체 수신금액에 해당하는 규모다.

그런데 펀드 이름을 보면 갑갑해진다. 그동안 인기를 끌었던 대부분 펀드에는 '상장지수투자신탁'이라는 말이 들어가 있다. 상위 10개 중 7개가 이런 유형이다. 흔히 ETF( Exchange Traded Funds)라고 하는 펀드다. 최근 인기가 높아진 펀드시장에서 주식처럼 실시간 매매가 가능하다. 적은 돈으로도 분산투자가 가능한 주식이라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하지만 일반 소비자에게 이런 용어는 익숙하지 않다. 금융용어 자체에 외래어가 많아 소비자가 이해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옵션이나 스와프 등의 단어도 어려운데, 롱(매수)이나 쇼트(매도)는 어련할까. 생뚱맞은 상품명을 가진 펀드도 있다. 애초부터 어려운 펀드 이름도 있지만 금융회사의 마케팅 전략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름을 '어렵게 만든' 상품이 대표적이다. 새로움을 뜻하는 단어나 영문 표기, 특정한 뭔가를 연상시키는 이름 등으로 인해 소비자는 펀드를 오해하기 십상이다. 예컨대 절대수익 펀드가 그런 유형에 속한다. 운용사와 투자내용, 위험의 정도를 나타낼 수 있도록 펀드이름에 일련번호를 붙이면 쉬울 텐데 이해할 수 없다.

펀드 이름을 이해하기 어렵다 보니 소비자가 내용을 정확하게 알고 펀드를 선택하는 경우도 드물다.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10명 중 1명만이 자신이 가입한 펀드의 이름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었다. 펀드 명칭을 통해 그 내용과 위험 혹은 수수료까지 알고 있는 사람은 20% 수준에 불과했다. 오해를 살만한 이름, 어려운 용어, 소비자를 유혹하는 단어를 넣은 상품명이 더 이상 마케팅수단이 돼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최근 금융권이 겪는 위기는 시장의 혼란, 저성장에 따른 저금리 때문만은 아니다. 금융회사 스스로가 소비자에게 신뢰를 잃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펀드 이름을 통해 얄팍하게 소비자를 유혹했던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이다. 한때 시장을 주름잡던 디스커버리나 인디펜던스도 진짜로 '디스커버' 하거나 '인디펜던스' 하지 못했다는 걸 소비자는 기억하고 있다.

세상이 복잡해질수록 금융권이 혼란스러울수록 소비자는 간단하고 단순한 것을 원한다. 그렇다면 펀드 이름도 이젠 알아볼 수 있는 이름으로 바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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