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소노 시온 감독 "일본의 김기덕? 난 '엽기적인그녀' 광팬"

신작 '지옥이 뭐가 나빠' 들고 부산영화제 찾아…"메시지 찾기보다 웃고 즐기길"

사진=이명진 기자
제18회 부산국제영화제기간 2박3일 일정으로 한국을 찾은 '일본의 김기덕' 소노 시온(51) 감독은 자신이 내놓는 강렬한 작품들과 달리 무척 얌전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최근 부산 해운대에 있는 한 음식점에서 만난 그는 "원래 낯가림이 심하다"며 "맥주와 담배가 없으면 힘이 빠지는 성격"이라고 전했다.
 
'자살 클럽(2002)' '노리코의 식탁(2005)' '차가운 열대어(2010)' 등을 통해 인간의 숨겨진 욕망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온 소노 시온 감독.

지난해 동일본 대지진과 원전 사고를 다룬 '두더지' '희망의 나라'를 잇따라 선보이며 세대를 아우르는 폭넓은 공감을 이끌어낸 그가 이번 부산영화제에서는 신작 '지옥이 뭐가 나빠'를 선보이며 예측 불가능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코미디, 액션, 로맨스, 느와르, 사극까지 모든 장르가 공존하는 이 영화는 감독 지망생 히라타(하세가와 히로키)가 이끄는 독립 영화 집단 '퍽봄버즈(Fuck Bombers)'가 야쿠자들과 함께 영원히 남을 영화 한 편을 찍어내는 과정을 그린 흥미로운 작품이다.


-몹시 피곤해 보인다.
 
"부산에 도착하자마자 인터뷰를 하고 있다. 어서 해운대 바닷가로 가서 부산의 분위기를 맛보고 싶다."

-이번 작품에서는 모든 영화 장르가 공존하는 분위기다.
 
"특별히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만들었다. 관객들이 많이 즐거워하니 코미디로 해두자. 어떤 사람은 '이런 영화 찍어도 되는 거냐'는 농담을 던지더라. 앞으로 비디오 대여점에 가면 '소노 시온 장르'를 구분해야 하지 않을까. (웃음) 이 작품의 대본은 20년 전에 썼는데, 어디를 가져가도 거절당하던 무명시절이었다. 당시 이 영화를 찍었다면 진지하게 찍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의외의 캐스팅도 눈길을 끈다.
 
"'이 역할은 저 사람한테 맞다'는 식의 뻔한 캐스팅은 하지 않는다. 관객들이 하세가와 히로키처럼 잘 생기고 트랜디한 사람의 의외성을 보면서 '이건 뭐지?'라고 느끼는 것이 재밌다. 하세가와가 이 작품을 통해 트렌디한 배우에서 인디 배우의 길을 걷지 않을까 생각한다. (웃음)"

-관객들이 영화에서 다양한 메시지를 읽는데.
 
"말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애써 말로 풀어서 설명하지 않는 것이 이 영화의 매력을 더 드러내는 것이라 여긴다. 그림이나 시 등의 예술은 확실한 주제 하나만 있으면 '이런 시다' '이런 그림이다'라고 규정할 수 있지만, 장편 영화는 그렇지 않다. 주제 하나로 90분 이상을 이끌어가려면 막막하다. 대사 하나만 갖고 모든 것을 전달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 점에서 다양한 주제가 담길 수밖에 없다고 본다. 이번 영화는 무엇보다 영화에 대한 열정을 표현하고 싶었다. 일단은 어렵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 재밌게 봐 주기를 바란다."

소노 시온 감독의 신작 '지옥이 뭐가 나빠' 일본판 포스터.
-액션 스타 이소룡에 대한 오마주도 흥미롭다.
 
"이소룡이라 해 주니 반갑다. 극중 이소룡 복장을 보고는 할리우드 영화 '킬빌'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많아 섭섭했다. 킬빌이 이소룡을 따라한 것이지 않나. 20년 전 함께 영화를 만들던 친구가 이소룡 광팬이었다. 그는 실제 그 복장을 입고 촬영을 하기도 했는데, 그런 친구가 부끄럽기도 했다. (웃음) 극중 초등학생들에게 무시당하던 에피소드도 실제 있었던 일이다."

-기존 폭력과 성을 날카롭게 들여다보던 시선이 부드러워진 듯도 하다.
 
"어릴 때부터 '대부' 시리즈 같은 액션 영화를 즐겨 봤다. 총싸움, 자동차 액션을 흉내낸 자전거 액션 등도 많이 따라했다. 그렇다고 폭력적인 영화를 만들면서 쾌감을 얻는 것은 아니다. 최근에는 코미디언을 하고 있어서인지(그는 올 4월 일본에서 코미디언으로 정식 데뷔했다) 즐거운 영화를 만들고 싶은 경향이 생겼다. 나이가 들면서 체력도 많이 떨어져서 컷을 줄이고 편하게 찍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고 있다. (웃음)"

-영화 속 "돈 때문에 만드는 영화가 일본 영화를 망친다"는 대사가 인상적이다.
 
"속마음이 나도 모르게 나와 버렸다. 현장에서 배우, 스탭들과 '이 대사 꼭 넣어야 할까' 고민도 했지만, 주연을 맡은 하세가와 히로키가 응원해 줘서 용기를 냈다."

-한국의 김기덕 감독과 비교되는 것을 아는지.
 
"몰랐다. 처음 듣는 얘기다. '써니'(2011)의 강형철 감독이나 '엽기적인 그녀'(2001)의 곽재용 감독과 더 잘 어울리지 않나? (웃음) 개인적으로 엽기적인 그녀는 한국 영화 중에서 가장 재밌게 본 작품이다."

-영화라는 매체의 어떠한 점에 끌렸나.
 
"당연히 영화를 좋아했지만, 만드는 쪽은 생각도 못했고, 그럴 의도도 전혀 없었다. 극중 감독 지망생 히라타처럼 영화에 미쳐 있지는 않았다. 오히려 전화박스에서 야쿠자 딸을 만나 얼떨결에 영화 감독을 하게 되는 이번 영화 속 소심한 캐릭터와 비슷하다. 어떻게 하다보니 영화를 찍고 있더라."

-자신의 영화가 관객들에게 어떻게 다가가길 바라나.
 
"아무 것도 없이. 아무 것도 없게 하려고 노력한다. 차기작 대본을 쓰고 있는데, 아예 영화의 메시지라는 것을 없애려 하고 있다. 차기작에서 하세가와 히로키와 다시 한 번 호흡을 맞추는데, 스타가 되고 싶은 한심한 록커의 이야기를 다룬 코미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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