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년간 국민연금 제도발전위원회에서 비중있게 논의됐던 보험료 인상안은 정부 검토를 거치면서 동결로 최종 결론났다.
우선, 정부가 기초연금안 후퇴로 악화된 여론을 의식해 보험료 인상안을 서둘러 거둬들였다는 해석이 나온다.
실제로 제도발전위원회에서는 논의 초반부터 보험료를 인상해야한다는 주장이 다수를 차지했다.
국민연금 재정 추계 결과 2044년이면 기금 운영이 적자로 돌아서고, 2060년이면 모두 소진되는 것으로 결론이 났기 때문이다.
기금이 바닥나면 후세대의 부담이 가중될 수 있고, 급격한 보험료 인상이나 수급료 인하 사태를 불러올 수 있기 때문에 미리미리 대비를 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었다.
재정 안정화를 이룰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안은 보험료 인상이라는데 대다수 위원들은 의견을 같이했다.
이미 참여정부때 제도 개혁을 통해서 보험료 지급 시기를 65세까지 늦췄고, 수급액도 소득보장율 40%대로 낮췄기 때문에 쓸 수 있는 카드는 보험료 인상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올 하반기에 들어서면서 기류가 급속도로 바뀌었다.
인상론에 맞서 동결론이 팽팽하게 부각되면서 위원회 내에서 의견이 엇갈렸다.
기초연금안이 원안보다 대폭 후퇴된데다 국민연금 가입기간과 연계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가면서 위원회도 여론을 의식하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제도발전위원회는 지난 8월 21일 공청회에서 "연금 보험료를 인상해야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되, 인상 시기에는 이견이 있다"며 복수안을 냈다.
최소한 4년 뒤에는 보험료를 올려야 한다는 안과 2040년 중반 이후부터 검토해도 된다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는 것이다.
국민연금과 연계한 기초연금안이 지난 9월 공식 발표되면서부터는 여론은 더 급속도로 냉각됐다.
이에 정부는 보험료를 손대지 않겠다고 선언하면서 논의를 5년 뒤로 밀었다. 국민연금 개혁이 현 정권의 손을 떠난 것이다.
특히 정부는 최종안을 발표하면서 보험료 인상의 필요성이 있다는 대전제도 부정했다.
복지부 류근혁 국민연금정책과장은 8일 간담회에서 "보험료 인상이 필요하다는 전제가 깔려 있는 것이 아니다"면서 "보다 큰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지, 하나의 정책수단으로만 접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기초연금으로 악화된 여론을 의식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서도 정부는 일단 부정했다.
류 과장은 "기초연금이 도입되기 전부터도 우리 부처는 국민연금 인상안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면서 연관성을 부인했다.
이같은 정부 결정에 대한 전문가들의 평가는 다소 엇갈린다.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금연구센터장은 "기초연금 논란에 덧붙여서 국민연금 개혁안이 제대로 논의되지 못하고 흐지부지되는 것은 유감이다"면서 "5년 뒤에는 이해당사자가 더 많아져 보험료 인상에 대한 여건이 더 어려울 것이다"고 우려했다.
윤 센터장은 또, "정치권에서는 당장의 편의성을 생각하기 쉽지만 계속 미룬다면 개혁 시기를 놓칠 수도 있다"면서 "무작정 다음 정권에 미룰 것이 아니라 재정 안정화를 위한 대안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반면, 기초연금이 국민연금과 연계되면서 가입자 불만이 가중된 상황에서 보험료를 인상시키지 않은 것은 적절하다는 평도 나온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위원장은 "국민연금 개혁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워낙 제도 불신이 커 보험료 인상안이 제시되면 오히려 연금 불신을 부추길 수 있다"며 "아직 재정 안정화를 할 수 있는 시간은 남아 있기 때문에 연금 제도가 보다 성숙해진 뒤에 해도 늦지 않다"고 찬성했다.
어찌됐건 국민연금 개혁이 당장은 어렵지만 후세대를 위해 필요한 상황에서 기초연금 때문에 제대로 공론화되지 못했다는 비난은 피하기 어렵게 됐다.
익명의 연금 전문가는 "국민연금 보험료 인상안은 사실 정권 입장에서는 고양이 목에 방울달기나 다름 없는데 현 정부에서는 기초연금 논란이 오히려 좋은 핑계거리가 된 것 같다. 기초연금 문제가 불거지면서 다음 정권에 떠넘길 이유가 생긴 것 아니냐"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