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정상회담 직전인 2007년 8월 18일, 노무현 대통령 주재로 열린 남북정상회담 대책회의 자리를 보자.
이 자리에서는 다른 정상회담 의제와 함께 서해 NLL 문제도 다뤄졌다.
조성렬 국정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실장이 제시한 ‘서해 해상경계선 획정을 위한 3단계 로드맵’이 논의된 것이다.
‘NLL 불가론→NLL묵시적 인정→NLL공식 인정’이라는 3단계 로드맵이 논의돼 참석자들 간 공감대가 이뤄졌다.
이는 조 실장이 최근 펴낸 저서인 『뉴 한반도 비전』 218페이지에도 소개돼 있다.
특히 당시 국방부 장관이던 김장수 현 국가안보실장 대신 회의에 참석한 김관진 당시 합참의장(현 국방부 장관)은 회의 결과에 대해 ①NLL은 별 문제가 될 것 같지 않다 ②회의 결과에 만족한다는 내용으로 국방부장관에게 보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회의에 참석했던 고유환 동국대 교수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김관진 장관도 당시 정상회담에서는 NLL을 거론하지 말자는 의견을 개진했다”며 “결과적으로 국방부의 안이 받아들여졌다”고 말했다.
이 같은 우리정부의 기조는 남북정상회담 직후에도 감지된다.
당시 꼿꼿한 자세로 김정일과 악수해 '꼿꼿장수'라는 별명을 얻었던 김장수 당시 국방부장관은 정상회담이 종료된 직후인 2007년 10월 5일 남북정상회담에서 군사분야의 성과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우리는 서해 북방한계선 NLL을 지킨 것”을 꼽았다.
이어 “그 다음에 공동어로수역 설정을 통한 평화정착 과정이 될 것”이라고 소개했다.
김 실장은 특히 “기존 NLL은 그대로 있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NLL이 약해진다는 것을 가정하고 공동어로 구역을 설정한다는 것은 틀린 것이며 해상경계선이 있을 때 공동어로 개념이 생기는 것이지, 해상경계선이 없는 상태에서의 공동어로 구역이라는 것은 의미가 없다”며 정상회담에서 NLL을 사수한 사실을 거듭 밝혔다.
김 실장은 최근에도 비슷한 취지로 발언한 바 있다.
그는 지난 4일 국회 운영위원회에 출석해 정상회담 당시 NLL 문제와 관련해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이견이 없었다고 거듭 확인했다.
김 실장은 이에 앞선 지난 6월 21일 국회 운영위원회의에서도 똑같은 언급을 한 바 있다.
김 실장은 특히 2007년 11월 남북 국방부장관 회담을 앞두고 NLL 문제에 대한 대통령의 지침을 받기를 원했던 자신에게 “(노무현 대통령께서) 그냥 껄껄껄 웃으시면서 ‘마음 놓고 하고 와라’ 그래서 소신껏 하고 왔다”고 증언한 바 있다.
이 같은 정황은 노무현 대통령이 정상회담에서 NLL포기 발언을 했다는 새누리당의 반복되는 공격과는 상당히 다른 것들이다.
그렇다면 실제 정상회담 대화록에 등장하는 노 대통령의 무수한 NLL 발언, 특히 마치 NLL을 인정하지 않는 듯한 발언은 어떻게 이해해야할까?
이에 대해 당시 통일부장관 보좌관으로 정상회담을 지켜본 민주당 홍익표 의원은 “문장 하나, 단어 하나를 볼 것이 아니라 컨텍스트(맥락)을 봐야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노 대통령은 상대방이 이야기하면 곧바로 내치지 않는 대신 ‘네 말이 틀리지 않다’는 식으로 우선 상대를 안심시킨 뒤 자신이 하고 싶은 주장을 이어가는 외교적 화법을 쓰며 토론을 한다”며 “2차 남북정상회담도 예외가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국정원이 공개한 대화록 40~41페이지를 보면 노 대통령은 “(NLL이) 국제법적인 근거도 없고 논리적 근거도 분명치 않은 것인데...”, “남측에서는 이걸(NLL이) 영토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라며 NLL을 무시하는 듯한 언급을 한 것으로 돼 있다.
이는 김정일이 '남측이 주장하는 NLL과 우리(북측)이 주장하는 군사경계선 사이에 공동어로구역을 조성하자'고 제안하자 노 대통령 자신이 이에 대해 의견을 표명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다.
NLL이 한국전쟁 휴전 직후인 1953년 마크 웨인 클라크 당시 주한 유엔군사령관이 우리 군과 민간인이 이 선을 넘어 북한 쪽으로 접근하지 못하도록 북한과의 합의 없이 설정한 해상경계선이라는 사실을 주시키면서 김정일을 다독이며 '여론의 반대가 높아 NLL을 건드릴 순 없다'는 요지로 반박하기 위해서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에따라 남북정상회담 당시 노대통령의 NLL관련 발언 성격이 어떤 것이냐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대화록 상의 문장 한 두 개만을 때어내 볼 것이 아니라 회담록 전반의 맥락 파악은 물론 회담 전후 사정에 대한 종합적인 고려도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