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이 천주교 지도자들을 초청해 오찬간담회를 갖기로 한 날짜는 오는 18일이었다. 지난 7월에 기독교와 불교계 지도자들을 초청해 오찬간담회를 가졌던 연장선상에서 기획된 행사였다.
그러나 청와대는 최근 천주교 주교회의 쪽에 박 대통령 일정으로 인한 오찬간담회 연기를 알려왔다. 천주교 주교회의의 한 실무자는 "청와대가 대통령 일정을 이유로 오찬간담회가 어렵다는 연락을 해 왔다"며 "참석 대상이신 주교님들에게 행사연기를 알려 드려야 해 좀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천주교가 '국정원 개혁', 쌍용자동차 문제 해결', '밀양송전탑 건설' 등 주요 연안에서 목소리를 내고 있는 데 대한 청와대의 불편함이 오찬 연기로 이어진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천주교에서는 16개 교구 가운데 군종교구를 뺀 15개 교구에서 국정원 개혁을 요구하는 사제들의 시국선언이 이뤄졌고, 쌍용차 사태의 조속한 해결과 해고노동자들을 위한 대한문 앞 미사도 지난 1일로 177일을 맞았다. 밀양송전탑 건설 문제와 관련해서도 지난달 말 공사재개 움직임이 일자 천주교정의평화위원회 명의로 공사강행 중단을 촉구하는 성명을 내기도 했다.
하지만 청와대와 천주교 양측 모두 박 대통령 일정 때문에 빚어진 일이라며 정치적 해석이나 확대해석을 경계하고 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원래는 주교님들이 주교회의때 올라오셔서 주교 회의기간에 잡으려고 했는데 대통령 일정이 안돼서 미뤄졌다. 대통령께서는 이럴 때 일수록 각계의 의견을 들으시려고 한다"고 말했다. 주교회의 고위관계자도 "소설을 쓸 수는 있겠지만 청와대 사정에 의해 연기된 것을 확대해석하는 것은 좀 그렇다"고 신중한 입장을 취했다.
18일로 예정됐던 오찬간담회가 연기됨에 따라 일정이 조정되려면 다소간의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당초 청와대는 주교회의 기간에 맞춰서 간담회를 준비했는데 다음 주요회의는 상반기에나 열리지만 주교회의 상임위는 두 달에 한번씩 열리기 때문에 이 기간에 잡힐 가능성이 있다.
천주교에서는 오찬감담회 연기의 불가피성을 받아들이면서도 매우 아쉬워하는 분위기다. 많은 사회적 이슈에 대해 천주교에서 중재노력을 해왔는데 오찬간담회를 통해 문제 해결의 물꼬가 트이기를 바랬지만 그 계기가 미뤄졌기 때문이다.
천주교 주교회의 고위관계자는 "주제에 제한 없이 1시간 30분 정도 얘기를 나눌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밥만 먹는 것은 의미가 없고 전반적으로 필요한 얘기를 하는 것으로 의견이 모아진 상태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