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북측은 금강산 관광 재개와 이번 행사를 연계시키려던 애초 의도가 관철되지 않은 데 대해 강수로 맞선 것으로 보인다. 우리 정부는 두 사안의 분리 대응을 원칙으로 상봉행사가 끝난 뒤인 다음 달 2일 금강산 관광 회담을 제안한 상태였다.
이에 북측은 상봉단 등이 묵을 숙소를 문제 삼는 방식으로 금강산 관광 재개를 압박했지만, 우리 정부는 관광 재개의 선결조건 등을 언급하면서 부정적 뉘앙스를 감추지 않아왔다.
여기에 북측은 전날 상봉행사 실무 협의차 남측과 접촉한 자리에서, 우리 정부가 상봉행사에 대한 일종의 대가 차원으로라도 금강산 관광을 내줄 가능성이 없다고 확신한 것으로 보인다.
남북관계 전문가인 홍익표 민주당 의원은 "실무접촉에서 금강산 관광 재개에 대한 메시지라도 줘야 했는데 그렇지 못한데 대한 북측의 불만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 북핵 6자회담 재개에 대해 우리 정부가 의지를 보이지 않는 것도 북한의 이번 파행 조치의 배경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앞서 중국 베이징에서는 지난 18일 6자회담 당사국들이 모인 1.5트랙(반관반민) 회의가 열렸는데, 우리 정부는 미국과 함께 6자회담 수석대표를 참석시키지 않았다. '대화를 위한 대화는 하지 않겠다'는 원칙 하에서 일부러 '관'의 참여를 대폭 줄인 것이다.
이 회의에 참석했던 유호열 고려대 교수(북한학)는 "중국과 러시아가 수석대표를 참석시킨 데 반해 한미일은 관료를 옵저버 자격으로 참석시키는 등 회의의 격을 낮췄다"며 "북측은 여러 경로를 통해 6자회담을 통한 북미 관계 복원이 당장은 어렵다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산가족 상봉행사가 금강산 관광 재개에 도움이 안되고, 6자회담 재개에도 좋은 신호로 작용하지 못한다면, 북한 입장에서는 굳이 진행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나흘 전 행사 연기라는 강수를 통해 이산상봉 행사를 차라리 압박 카드로 돌리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북한의 3차 핵실험 등으로 소원해졌던 북중관계가 상당 부분 회복됐다는 것이 북한의 돌발행동에 영향을 줬을 것이란 분석도 있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19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존 케리 미국 국무부 장관을 만나 6자회담 재개를 촉구하기도 했다.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은 "북한 입장에서는 미중의 입장을 봐가면서 남북관계를 조절할 필요가 있다"며 "21일에 왕이 외교부장과 케리 국무부장의 회담이 끝나니, 그 전에 일종의 속도조절에 나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