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어느 역에서 내릴지, 안내 방송과 안내문을 잘 숙지하기만 하면 두세 정거장쯤은 문제없다.
물론 이렇게 되기까지 2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지하철 계단 내려가기에서부터 표 끊기까지 모든 과정을 어머니 최경혜(52) 씨와 숱하게 연습해야 했다.
“아직도 버스만큼은 혼자 못 태워요. 지하철처럼 달리는 속도나 문 열리는 간격이 일정하지 않고 손님들에 밀려 안내 방송 못 들으면 내릴 곳을 지나칠 수도 있거든요”.
일상생활에 큰 지장은 없지만 그렇다고 대중교통을 무리 없이 타고 다닐 정도는 아닌 규리 씨. 부모가 항상 함께 다닐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최 씨는 딸을 보면 걱정이 앞선다.
◈가깝고도 먼 ‘장콜’
교통약자인 장애인을 위한 특별교통수단인 장애인 콜택시, 일명 ‘장콜’이라 불린다. 고마운 존재이긴 하지만, 발달장애나 지적장애를 가진 이들에게 가까우면서도 먼 존재이기도 하다.
서울시 장애인 콜택시 이용 기준에 따르면 서울시 거주 등록 장애인 가운데 지체나 뇌병변 장애 등을 지닌 신체장애인과 달리, 정신지체(지적장애)나 자폐성장애(발달장애)의 경우 보호자가 동승할 때만 콜택시 이용이 가능해 조건이 까다롭다.
장애인 콜택시의 도입이 휠체어를 타는 신체장애인을 염두에 두고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문제는 지적장애나 발달장애를 가진 이들에게도 장애인 특별교통수단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데 있다.
일반 중학교 2학년에 다니는 김모(14) 양의 어머니 최모(57) 씨는 “딸이 통학하거나 복지관에 갈 때마다 장콜을 많이 이용하는데 콜센터에서 자폐 2급이라고 하면 보호자 동승 여부 먼저 묻는다”며 “현실적으로 참 답답한 기준”이라고 털어놨다.
딸을 늘 따라다닐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게 여의치 않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게다가 김 양은 평소에 부모님이나 선생님이 가르쳐 주면 길도 곧잘 찾는 등 주변에서 조금만 도와주면 충분히 일상생활을 할 수 있다.
사춘기를 맞이한 김 양이 “스스로 학교에 가고 싶다”거나 “친구를 만나러 가고 싶다”고 하면 사회성 훈련 차원에서라도 콜택시에 태워 혼자 보내고 싶은 게 엄마의 심정이다.
그렇지만 기사에게 “복지관까지만 가면 선생님이 나와 있을 것이고 아이도 어디로 가는지 잘 알고 있으니 태워다 주시기만 하면 된다”고 말해도 딱 잘라 거절당하기 일쑤다.
규리 씨의 어머니 최 씨는 “콜택시에서 누군가 딸에게 내릴 때만 일러준다면 충분히 혼자 탈 수 있다”며 “특별교통수단인데도 전문 보조인 하나 없고 운전기사뿐인데다, 기사는 아이에게 말을 걸어주지도 않는다”고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장애인 콜택시의 공급이 여전히 부족하다보니 기다리는 데만 기본 한두 시간인 데다가, 그마저도 예약한 시간에 맞춰 타기 어려운 것 또한 문제다.
지난해 겨울만 해도, 김 양은 다리를 다쳐 휠체어를 타야 했다. 노원구의 집에서 강남구 복지관으로 합창단 연습을 갔던 어느 날. 연습이 끝나는 오후 8시에 예약해둔 콜택시가 밤 10시가 되도록 깜깜무소식이었다.
결국 강남 부근을 돌며 일반 택시를 잡아봤지만 휠체어 때문에 아무도 태워주지 않았다.
마지막에 겨우 잡아탄 택시 트렁크에 휠체어를 우겨넣고 끈으로 묶은 채 집에 돌아왔다. 최 씨는 그 날을 떠올리면 아직도 눈앞이 깜깜하다.
◈“걸을 수 있다고 전부 아냐”...지적·발달장애인 이동권 확보 시급
“없는 형편에 자가용 마련하고 운전부터 배우는 게 지적·발달장애아 엄마들의 첫 코스다”.
발달장애나 정신지체장애인을 가족으로 둔 이들은 하나 같이 이렇게 말한다. 그만큼 이들의 이동권에 대한 사회적 배려가 부족하다는 얘기다.
장애인 전문가들은 “걷는 데 지장이 없을 뿐, 발달장애인이나 지적장애인도 휠체어를 타는 지체장애인과 마찬가지로 일반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지난 2011년 보건복지부가 장애인들에게 '집 밖 활동시 불편한 이유'를 물어보니 지적장애인의 66.6%, 자폐성장애인의 52.9%가 "외출 시 동반자가 없어서"라고 답했다.
또 신체장애를 가진 지체장애인은 18.9%, 뇌병변장애인은 39.3%가 이처럼 답했다.
신체장애인에게 보호자의 동승을 요구하지 않는 것처럼, 발달장애인과 지적장애인에게도 현실 사정에 맞게 특별교통수단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해줘야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장애물 없는 생활환경 시민연대 관계자는 “특히 지하철이나 저상버스가 없는 곳에서는 특별교통수단이 대중교통을 대체하는 셈인데, 스스로 이용하지 못하게 하면 이들의 자기결정권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장애인권익문제연구소 관계자도 “장애인 개인의 능력이나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등급이나 유형에 따라 일괄적으로 지원 기준을 정하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같은 발달장애 1급이라 해도 집 밖으로 나오기 힘든 사람이 있는가 하면 보호자 없이도 외부에서 일상생활이 가능한 사람도 있는 만큼, 똑같이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과도하다는 것이다.
캐나다의 경우 특별교통수단을 이용할 장애인들의 상태를 개별적으로 사전 평가한 뒤, 어떤 지원이 필요한지 미리 검토한다.
우리나라 역시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에 따른 이동지원센터가 설치돼 장애인 상태를 사전 평가해 특별교통수단과 연계시키는 역할을 하려 했지만, '장애인 등급제' 때문에 유야무야 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얘기다.
서울시에서 운행되고 있는 장애인 콜택시는 현재 360대. 만성 공급 부족도 해결 과제이지만, 그나마 마련된 혜택이 잘 ‘배분’되는 것도 중요한 문제다.
최 씨는 “장콜은 있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존재”라면서도 “걸을 수는 있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하기엔 무리가 있는 교통약자들도 함께 배려해달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