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틀거리는 감사원, 역사는 NO!를 외쳐야 발전한다

[변상욱의 기자수첩]

테마가 있는 고품격 뉴스, 세상을 더 크고 여유로운 시선으로 들여다보는 CBS <김현정의 뉴스쇼> '기자수첩 시즌2'에서는 정의롭지 못한 것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담았다. [편집자 주]

국정원 문제를 마무리 짓기도 전에 감사원장이 자진사퇴하며 감사원 개혁 문제가 터져 나왔다.


김영삼 정부(1993년)부터 박근혜 정부(2013년)까지 20년간 감사원장직을 거쳐간 사람은 모두 7명이다. 이전 정권 때 임명되고 정권이 바뀌었는데도 감사원장직을 계속 맡은 인물은 2명뿐(그 2 명 중 4년 임기를 모두 채운 감사원장은 1명뿐)이다.

7명 감사원장 중 3명은 정권 교체와 함께 중도하차 했다. 나머지 2명은 마침 정권교체 시기가 임기만료 시점하고 맞아 떨어져 자연스레 나갔다. 우리 감사원장의 임기는 4년이다. 미국은 15년, 독일은 12년, 영국은 10년인데도 이런 문제가 없는 것과 비교하면 심각한 수준이 아닐 수 없다.

감사원장만 바뀐 게 아니라 감사제도도 정권만 잡으면 자꾸 뜯어 고치는 게 관례이다. 김영삼 정부 21번, 김대중 정부 24번, 노무현 정부 29번, 이명박 정부는 61번에 걸쳐 공공감사제도를 개정했다. 이런 상황에서 감사원이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적인 지위를 갖고 비리를 감찰하고 정책을 바로 잡아갈 수 있었을까?

◈감사원을 어디에 두는 게 좋을까?

감사원은 국가의 세입·세출을 결산하고 국가 및 법률이 정한 단체의 회계검사와 행정기관 및 공무원의 직무에 관한 감찰을 위하여 헌법에 의해 설치된 정부기관이다. 대통령 직속기관이고 직무에 관해서 만큼은 독립된 지위를 갖고 있다. 헌법이 감사원을 대통령 직속으로 둔 취지는 대통령의 지지를 배경으로 다른 기관 눈치를 보지 말고 소신껏 정부 조직과 공무원의 비리, 예산 낭비를 감시하라는 것이고 감사원장의 임기 4년을 보장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과거 한국 감사제도의 기능은 주로 회계감사 위주였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직무감찰이 강화되었다. 사후 감사 뿐 아니라 사전에 예방하는 쪽으로 무게를 실으려 한 것이다. 이 점이 한국 감사제도에서 특이한 사항이다. 회계감사와 직무감찰을 하나의 기관이 담당하는 나라는 대만과 한국뿐이다.

감사원을 대통령 직속이 아니라 의회에 소속케 한 나라들이 있으니 우리도 그렇게 하자는 주장도 늘 등장한다.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은 행정부 소속이었던 감사원이 행정부에서 분리 독립했다. 이 나라들의 감사원은 회계 감사원이다.

미국, 영국, 캐나다는 감사원이 의회에 소속돼 있다. 미국 감사원 역시 회계감사가 주임무이다. 감사원이 예산회계법(Budget and Accounting Act)에 의해 생겨 행정부에 있다가 의회로 넘어 가 하원회계위원회가 관장한다. 역시 재무감사, 정책성과와 효율성 감사가 임무이다.

돌연 사퇴의사를 밝힌 양건 감사원장이 26일 오전 서울 종로 감사원에서 열린 감사원장 이임식에 참석해 이임사를 하고 있다. (송은석 기자)
그런 점에서 대통령 직속은 독립이 어려우니 국회로 가져 오자고 한다면 헌법개정 등 오랜 논의가 필요하다. 영미식과 유럽식을 두고 어느 쪽이 더 적합하냐는 토론도 필요하다. 감사원을 국회로 집어넣는 과정도 쉽지 않고 집어넣어도 문제는 생긴다.

1. 감사원이 의회에 소속된 다른 나라와 달리 공직사회의 비위감찰, 공무원의 근무평정, 행정관리에 대한 감찰 등이 의회로 들어가는 문제는 정리할 필요가 있다.

2. 국정원 대선 개입 비리의혹을 다룬 국정조사에서 보듯 여야가 죄다 동원된 국정조사와 청문회도 그렇게 부실하고 자기들끼리 싸우다 끝나는데 감사원 기능을 흡수해 훌륭하게 해낼까의 의구심.

3. 감사원이 대통령 직속이면 국회가 대통령을 제대로 감시하고 견제하면 감사원 독립성은 확보된다. 그런데 감사원이 국회로 들어가 여야가 된다 안 된다 싸우기만 하거나 여야가 아예 담합해 버릴 때 누가 이를 감시하고 견제할 수 있는가의 문제.

4. 싱가포르의 감사원은 의회로부터도 독립돼 수사권, 체포권, 은행장부 열람권까지 갖고 있다. 우리 감사원도 행정부 소속 기관 공직자 뿐 아니라 국회의원 비리까지 뒤져 낼 국민의 감사원으로 만들 수 있을까? 물론 국회의감독절차는 마련해야 한다. 감사원 당국자, 감사대상기관 당국자, 학계, 법조계, 시민단체 등으로 구성한 특별위원회 등의 대안도 제시된 바 있다.

◈ 역사는 NO를 외치는 사람에 의해 발전한다

"헌법을 고쳐 감사원을 국회 소속으로 두어야 대통령 눈치를 보지 않는다"고 주장한 대표적인 정치인은 과거 한나라당의 이정현 의원이다. 한나라당 홈페이지 '발언대' 코너에 "감사원의 국회 이관은 헌법 개정 때 최우선적으로 포함해야 한다. 감사원이 대통령 직속으로 있는 한 국민 혈세는 대통령과 행정부의 '주머니 속 동전'"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서 청와대 정무수석을 거쳐 홍보수석을 맡고 있는 박근혜 정부 최고의 실세이다. 감사원을 대통령에게서 떼어내지 않는 한 국민혈세가 대통령과 행정부의 주머니 속 동전이라 했는데 지금 그 주머니를 자신이 차고 있는 셈이 되어 버렸다. 과연 그 때의 그 소신은 변함이 없을까? 청와대에서 시작될 감사원 개편 논의가 기대된다.

감사원을 떠나며 양건 전 원장은 이임사에서 "재임동안 안팎의 역류와 외풍을 막고 직무의 독립성을 한 단계나마 끌어올리려 안간힘 썼지만 물러서는 마당에 돌아보니 역부족을 절감한다. 소임을 다하지 못한 채 여러분께 맡기고 떠나게 돼 마음이 무겁다"고 소회를 밝혔다. 무엇이 힘들게 했는지 구체적인 내용들을 적시하지는 않았지만 ‘아무리 해보려 해도 이건 아니다’라는 이야기이다.

이제 과제는 우리 모두에게로 넘겨졌다. 국회와 정부를 떠밀어 국정원, 감사원 등 핵심 권력기관이 국민을 위한 기관이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문제는 구습과 기득권, 각자의 이득에 대해 ‘NO'를 외치는 것이다. 이것 없이는 권력기구의 개편은 나아가지 못한다.

"역사는 '아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에 의해 발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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