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 원장이 사의를 표명한 이유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감사원 관계자는 CBS와의 전화통화에서 "무슨 이유로 사의를 표시했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면서 "내부에서도 사의 이유를 파악하고 있는 중"이라고 밝혔다.
청와대와 감사원 주변에서는 양 원장의 거취표명이 '4대강 감사' 마무리에 따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4대강 감사가 마무리 된 만큼, 전 정권에서 임명된 자신이 박근혜정부에 짐이 되지 않도록 자리를 비켜주겠다는 결심을 굳히지 않았겠다는 것이다.
양건 감사원장은 국민권익위원장을 거쳐 2011년 3월 제 22대 감사원장에 취임했다. 감사원장의 임기 4년은 헌법에 의해 보장돼 있지만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게 현실이다. 특히 정권이 교체되면 전정권에서 임명된 감사원장도 함께 물러나 새정권이 새로운 사람을 임명할 수 있도록 하는 게 관행이었다.
양건 원장의 경우도 새정부 초기인 지난 3월 중순쯤에 교체설이 나돌았고,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물러난 김기용 전 경찰청장의 사례와 맞물리면서 임기를 보장하겠다고 약속한 박 대통령의 발언이 공염불에 그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양 원장은 박 대통령으로부터 신임을 받아 2대 정권에 봉사하는 감사원장으로 기록되는가 싶었다. 4월8일 기자간담회 때는 "박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유임 전화를 받았다"고 공개했다가 여야 의원들로부터 "부적절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자신이 책임지고 했던 4대강 감사 결과가 매번 바뀌면서 정권의 입맛에 맞는 '자판기 감사' 논란이 제기됐고 이게 학자 출신인 양 원장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10일 '이명박 정부가 대운하 추진을 염두에 두고 4대강 사업을 설계했다'는 3차 감사결과가 발표되면서 이재오 의원이 양 원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등 '4대강 사업'과 그에 대한 들쭉날쭉한 감사결과는 올해 정기국회와 국정감사의 최대 이슈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을 것이 분명한 시점에서 스스로 직에서 물러남으로써 감사원 조직이 정쟁의 대상이 되는 것을 막으려고 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한편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 6개월을 맞아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도록 양 원장 스스로 거취를 결정했거나, 정권 차원의 압력이 작용했을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특히 취임 보름여만에 청와대를 장악하는 데 성공한 김기춘 비서실장의 첫 작품이라는 소문도 나돌고 있다.
청와대는 박근혜정부 6개월의 대표적인 업적으로 '비정상의 정상화'를 꼽고 있는데, 앞으로도 정부 각 부처와 사회 곳곳의 비정상적인 부분을 들춰내고 바로잡는데 있어서 감사원의 역할은 필수적이다.
그런데 비정상을 정상화시키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감사원의 수장이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공유하는 인사가 아님으로써 박 대통령의 의중을 읽고 속도감있게 감사를 진행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 있다.
특히 전 정권에서 임명됐다는 꼬리표 때문에 어떤 감사 결과를 내 놔도 '정치감사'라는 비판을 벗어나기 힘든 현실도 양 원장의 중도 퇴진을 압박하는 요인이 됐다는 관측도 있다.
양 원장의 사의 표명으로 박 대통령의 인사가 좋은 의미에서건 나쁜 의미에서건 다시 한번 도마에 오르게 됐다.
또 후임 감사원장이 누가 될 지에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데 지난 대선에서 박 대통령의 당선을 도왔던 안대희 전 대법관 등의 이름이 벌써부터 오르내리고 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평소 인사스타일로 볼 때 박 대통령의 의중이 실린 것 같지는 않다는 게 중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