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조의 공사가 ‘3일’이면 박근혜 정부의 공사는 ‘5일’이다. 국민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세금정책을 놓고 불과 5일 만에 수정안을 발표했으니 말이다. 그야말로 '박통공사오일(朴統公事五日)'이다.
당초 8일 세법개정안에서 가장 논란이 된 부분은 근로소득세 세부담 증가 기준선이 연봉 3,450만원이라는 점이었다.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세금’이라고 말해놓고서는 중산층부터 쥐어짜는 세법개정안을 내놓은 정부에 봉급쟁이들은 아연실색할 수밖에.
조세저항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박근혜 대통령이 세법개정안 발표 나흘만에 “원점 재검토”발언을 내놨고, 기획재정부는 기다렸다는 듯이 하루 만에 뚝딱 수정안을 내놨다. 하지만 초안 발표 닷새 만에 나온 수정안은 급조한 티가 풀풀 났다.
'4대 세제'라는 법인세와 재산세, 소비세, 소득세 중 소득세만, 그것도 근로소득세 세부담을 수치만 조금 줄여놓은 안을 들고 나왔기 때문이다. 세부담 기준선을 연봉 5,500만원까지 올리고 중산층의 세부담을 경감시켜주겠다며, 당장 듣기에 달콤한 말로 민심을 달래기에 급급했다.
그러나 중산층 세부담 경감으로 발생하는 연 4,400억원의 세수 결손은 어디서 메꿀지에 대해, 정부는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하지 못한채 얼버무렸다.
더 큰 문제는 40년 가까이 유지해온 소득공제 제도를 세액공제로 전환하면서 누구도 실제 자신의 세부담이 늘어날지 줄어들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연말정산 표를 받아든 봉급쟁이들이 정부가 제시한 수치와 달리 세부담이 늘어난 사실을 알고 반발할 때, 정부는 무어라 말할 것인가.
근본적으로 수정안이 갖고 있는 한계는 조세저항이 왜 발생했는지 제대로 짚지 못하기 때문이다. 수정안에서도 일감몰아주기 과세 완화, 가업상속공제 확대, 증여세 공제한도 확대 등은 굳건히 자리를 지켰다.
대기업과 슈퍼 리치(super rich), 불로소득자에 대한 세부담은 그대로 두거나 오히려 경감시켜주면서, 세금을 원천징수 당해온 직장인들의 세부담만 늘리겠다는 기본 틀은 여전히 유지됐다.
이미 정부는 중장기 조세정책 방향을 ‘소득세와 소비세 비중을 높이고, 법인과 재산과세는 성장친화적으로 조정한다’고 못을 박아놓은 상태다. 조세부담률을 5년 뒤 1%p 더 올리겠다는 계획을 내놓고, 법인세나 재산세는 성장친화적으로 하겠다니 결국 소득세와 소비세에서 더 걷겠다는 말이다.
이번에 세법개정안 사태로 확인된 민심은 정부의 중장기 조세방향과는 전혀 달랐다. 납세자 연맹의 김선택 회장은 “점심을 공짜로 준다고 하더니 봉급쟁이들에게만 청구서를 내미는 꼴”이라고 정부의 세법개정안을 강하게 비판했다.
더 걷으려면 소득세 뿐 아니라 법인세와 재산세도 같이 건드리고, 소득세도 근로소득 뿐 아니라 재산가의 금융소득과 기타소득에서도 더 걷으라는 것이다.
이 모든 사태의 시작은 ‘증세는 없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에서 비롯됐다. 세목 신설이나 세율 인상 없이 세수를 늘리려다 보니 기획재정부 세제실이 짜낸 수가 바로 비과세 감면을 위주로 한 이번 세법개정안이다.
비과세 감면을 줄여나가는 조치는 큰 방향으로 볼 때 맞다. 하지만 기존에 왜곡된 세제를 바로 잡고 가기 위해서는 세목신설이나 세율 조정 등 증세도 불가피하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지금 대한민국에 복지확대가 필요하다는 점은 이미 지난 대선을 통해 시대정신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증세없이 복지확대’라는 공약은 허구라는 점을 이제는 솔직히 인정해야 한다. ‘증세는 없다’는 가이드라인을 철폐하고, 기업과 가계에 골고루 걷는 방식으로 바꾸는게 진정한 수정안이다.
이미 5일 만에 바뀐 세법개정안 때문에 세금정책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무너졌고, 앞으로 세제개편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 뻔해졌다. 대통령이 짐짓 모른척 “원점에서 재검토하라”며 기획재정부에 책임을 떠넘긴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이번 사태에 대해 대통령이 솔직히 사과하고 기본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세금정책 뿐 아니라 정책 전반으로 불신은 확대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고려공사삼일'이라는 속담은 후대에 '박통공사오일'로 ‘재창조’ 될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