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뿐이리"라는 노래 가사처럼 흔하디 흔한 집 예찬론은 이 영화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고급 아파트에 사는 성공한 사업가 성수(손현주)는 아내 민지(전미선)와의 사이에 아들 딸 두 자녀를 두고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있지만, 어릴 적 트라우마 탓에 지독한 결벽증에 시달린다.
어느 날 아내에게도 숨겨 왔던 하나뿐인 형이 실종됐다는 소식을 접한 성수는 수십 년 만에 형의 허름한 아파트를 찾아가고, 그곳에서 집집마다 새겨진 이상한 암호를 발견한다.
형의 옆집에서 딸과 함께 사는 주희(문정희)를 우연히 알게 된 성수는 그녀에게 형의 소식을 묻지만 "제발 당신 형한테 우리 집 좀 그만 훔쳐보라고 해요"라는 말을 들으며 문전박대 당한다.
자기 집으로 돌아온 성수는 형의 아파트에서 봤던 암호가 초인종 옆에 새겨진 것을 발견하고, 그날 이후 누군가 자기네 가족을 훔쳐보고 있다는 불안감에 시달린다.
어릴 적 숨바꼭질을 할 때 두 눈을 꼭 감은 채 외치던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인다"라는 익숙한 멜로디는 영화 숨바꼭질에서 기괴한 피아노 음으로 둔갑해 오싹한 분위기를 한껏 끌어올리는 데 큰몫을 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이 영화는 가장 안전하고 편안한 곳으로 여겨지는 집이 누군가의 희생 위에 만들어졌다는 점을 부각시킨다.
사라진 형이 나타나 자신의 행복을 깨뜨릴 것이라는 성수의 불안감은 영화 속에서 무척이나 오싹하게, 그것도 여러 차례 그려진다. 성수가 가위에 눌려 형과 대면하는 장면이 대표적인데, 이렇듯 그의 불안한 심리 묘사를 통해 왠만한 호러 장르에서도 맛보기 힘들 만큼의 공포를 안겨 준다.
극 초반부터 긴장감을 극한으로 끌어올리는 연출을 보면서 '어떻게 가져가려고 초반에 이렇게 힘을 빼나' 걱정했지만, 영화는 두 시간 가까운 상영 시간 동안 긴박감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진다.
숨바꼭질로 장편 데뷔식을 치른 허정 감독은 이미 단편 '주희'로 올해 미쟝센 단편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해 연출력을 인정받은 신예다. 그는 "숨바꼭질을 통해 누군가 자기 집에 침입할지 모른다는 사람들의 불안감을 건드리고 싶었다"고 전한다.
허 감독의 연출 의도는 일단 성공한 듯하다. 흔히 볼 수 있는 검은 헬멧을 쓴 채 쇠파이프를 들고 다니는 살인마나, 입에 방부제를 물고 비닐 랩으로 칭칭 감겨 옷장 속에 보관된 시체와 같은 설정은 그가 익숙한 것들을 낯설게 만드는 영화적 공포에 예민한 감독이라는 점을 증명한다.
다만 극중 인물인 성수, 주희가 소유욕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는 것과 달리, 성수의 아내 민지는 다소 평면적으로 그려져 아쉬움을 준다. 민지라는 인물도 분명 어떠한 사연이 있었을 텐데 말이다.
보통 이러한 류의 영화가 마지막에 극적 반전으로 끝을 맺는 것과 달리, 숨바꼭질은 반전이 일어난 뒤 30여 분 동안 새로운 드라마를 풀어나간다.
이를 통해 물질만능주의가 만들어낸 극단의 소유욕이라는 영화적 메시지는 완성된다. 극중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내 거야!" "우리 집이야!"라고 외치며 아귀다툼하는 어른과 아이의 모습은 이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월소득 220만 원 이하 저소득층 가구가 첫 집을 마련하는 데 걸린 시간은 10.5년, 월소득 410만 원이 넘는 고소득층 가구는 6.5년이 걸렸는데, 그 격차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주택 보급률은 2002년 이미 100%를 넘은 이래 매년 1, 2%씩 늘고 있다는데도 말이다. 집이 본래 목적을 잃고 투기의 대상이 된 탓이다. 대다수 서민의 한평생 꿈도 '내집 마련'으로 작아진지 오래다.
결국 영화에서든 현실에서든 쫓고 쫓기는 숨바꼭질의 출발점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누려야 할 의식주 가운데 하나인 집이 욕망의 대상으로 변질된 그 지점인 셈이다.
14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