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는 1920년대 일본의 태평양전쟁 당시 군수회사 미쓰비시에서 비행기(전투기) 설계자로 일한 실존 인물 호리코시 지로의 이야기를 그렸다. 지난 20일 일본 개봉 이후 이 영화가 전쟁에 부역한 이들을 미화했다는 논란이 일었는데, 이런 비판은 오는 9월 한국 개봉 후에도 비슷하게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26일 도쿄 지브리 스튜디오를 찾은 한국 기자들에게 공개된 이 영화는 "아름다운 비행기를 만들고 싶다"는 꿈 하나만을 좇는 주인공의 이야기 속에 전쟁 동원에 대한 고뇌나 죄책감은 별로 담겨져 있지 않아 아쉬움을 남겼다.
미야자키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전쟁에 부역하거나 동원되고 관동대지진 같은 엄청난 재앙을 겪은 아버지 세대를 연민하고 위로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영화의 제목 '바람이 분다'라는 문구는 폴 발레리의 시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라는 구절에서 따온 것이다. 바람이 아무리 세게 불든, 어느 방향으로 불든 '살아야겠다'는 것은 시대와 역사의 뒤틀림 속에서도 생의 의지를 불태우고 꿈을 열망한 이들에게 힘을 북돋워주는 의미로 읽힌다.
감독은 이날 한국 언론과 가진 간담회에서 "호리코시는 군의 요구를 더 많이 받았지만, 나름대로 대항하며 살아온 인물이다. 그 시대를 살았기 때문에 무조건 죄를 같이 업고 가야 한다고 할 수 있을까? 우리 아버지도 전쟁에 가담했지만 좋은 아버지였다고 생각한다. 무조건 그 시대에 살았다고 해서 (비난받기 보다는) 그 시대가 어디로 가는가가 중요한 문제다"라고 말했다.
영화에서 주인공 호리코시는 어릴 때부터 하늘을 나는 꿈을 꾸지만 눈이 나빠 조종사를 포기하고 비행기 설계자가 되기로 결심한다. 이후 그의 꿈은 오직 아름다운 비행기를 만드는 것. 전쟁 중인 나라는 가난하고 필요한 기술도 뒷받침되지 않아 비행기를 만드는 데 수없이 좌절을 맛보지만, 그는 절대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리고 마침내 완성시킨 꿈의 비행기 '제로센'은 결국 전쟁에서 수백 대로 동원돼 한 대도 돌아오지 않는다. 나라의 파멸도, 비행기의 추락도 막지 못했지만, 그는 자신의 가장 푸르렀던 젊은 시절을 돌아보며 말한다. 그래도 꿈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그가 만든 전투기와 폭격기로 인해 희생된 이들을 생각하면, 한국 관객이 보기에는 분명히 답답하고 불편한 대목이다. 감독은 이 인물에게 비판적인 거리를 두려 했다지만, 결국 주인공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미화되고 옹호되는 측면이 있음은 부정할 수 없어 보인다.
하지만, 그런 부분을 제외하면 이 작품은 거장의 뛰어난 솜씨와 오랜 연륜이 묻어나는 완성도 높은 애니메이션이다. 그가 지금까지 만든 어떤 작품들보다 더 심혈을 기울인 흔적이 엿보인다. 실사에 가깝게 섬세한 묘사가 놀라울 정도다. 특히 관동대지진을 그린 시퀀스는 압권이다. 땅이 갈라지고 세상이 뒤흔들리는 순간을 스펙터클한 공포의 이미지로 그려냈다. 한 장면 한 장면의 아름다운 색감과 미묘한 움직임은 눈을 황홀하게 한다.
이번 작품은 미야자키 감독의 이전 작품들과는 달리 어린이 관객은 거의 염두에 두지 않고 철저히 어른 관객을 위해 만들어진 느낌이다. 영화의 다른 한 축인 호리코시와 나오코의 사랑 이야기는 한 편의 가슴 아픈 멜로 드라마다. 두 사람의 안타깝고 애틋한 사랑은 눈시울을 적신다.
이 영화는 오는 8월 28일 개막하는 제70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했다.
한국에서는 오는 9월 초 개봉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