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0일 언론사 논설실장과의 오찬에서 “경제민주화가 거의 끝에 오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경제민주화 입법 7개 중 6개가 됐으니 할 만큼 했고, 이제는 움츠러든 기업들의 기를 살려 투자를 유도할 때라는 뜻으로 읽힌다.
사석에서 만난 공정거래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대통령의 발언을 듣고 “귀를 의심했다”고 말했다. 지난 대선에서 경제민주화는 모든 후보들이 내놓은 공약이었다. 그만큼 경제민주화에 대한 국민적인 여망이 컸다는 얘기다.
그런 경제민주화 이슈를 가장 먼저 선점한 것이 당시 박근혜 후보였다. 경제민주화를 내세워 당선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박 대통령이 스스로 경제민주화 종료 선언을 했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는 것.
하지만 경제민주화 후퇴 조짐은 이미 정치권에서 본격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새누리당에서는 지난달 막 통과시킨 공정거래법상 일감몰아주기 규제 조항을 도로 완화하는 이른바 A/S(애프터서비스) 법안을 내놓겠다며 기업달래기에 나섰다.
◈ 경제민주화 논의 “너무 나갔다”…A/S 필요
실제로 경제민주화 입법이 지나치게 정치적으로 흘러 화풀이 성격이 강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연세대 경제대학원 김정호 교수는 “경제민주화 논의가 강자 대 약자의 구도로 가고 있는데, 실제로 시장은 강자 대 약자의 구도가 아니다”라며 “특정한 틀에 넣으면 그렇게 보이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고용률 70% 달성을 목표로 내놓은 정부는 고용을 늘리기 위해 기업의 투자에 기댈 수밖에 없는데, 이와 동시에 경제민주화 법안을 추진해야 하는 진퇴양난의 상황에 놓여있다”고 진단했다.
현재 정부나 여당은 경제민주화가 기업들을 위축시킨다는 의견에 좀 더 기울어 있지만, 지금 수준의 경제민주화로는 지난 대선에서 표출된 국민의 여망에 부응하기에 아직 멀었다는 시각도 팽팽하다.
실제로 대선 공약 가운데 재벌기업의 신규순환출자금지, 지배주주의 횡령과 배임에 대한 처벌강화, 금산분리 강화를 위한 중간지주회사 설치조항 신설 등 국정과제에 속한 상당수 법안은 아직 입법화가 되지 않았다.
또 공정위 소관이 아닌 금융 부문의 법안이나, 정년 60세 연장 법안 등 타 부처에 속하는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도 줄줄이 대기 중이다.
일각에서는 이미 통과된 경제민주화 관련 법도 이런 분위기 속에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것이라는 부정적 견해도 나온다. 법이 몇 개 통과했다고 경제민주화가 당장 이뤄지지는 않는다는 지적이다.
◈ 법 몇 개 통과됐다고 경제민주화 끝?…“아직 멀었다”
군산대 경제학과 이의영 교수는 “예를 들어 3배 손배소 조항이 통과됐지만, 삼성에 소송을 건 중소기업을 현대나 LG가 거래를 받아주겠느냐”고 반문했다. 이 교수는 “시장에서 완전히 배제될 위험이 크기 때문에 가격 후려치기를 당해도 소송을 하지 않는다”며 “이런 분위기에서 향후 5년 동안 제기되는 3배 손배소송은 손가락이 꼽을 정도로 적을 것”이라고 예견했다.
여기에 법이 통과된 뒤 실행력을 담보하는 것도 문제다. 하도급과 가맹거래, 일감몰아주기 등 각종 법안들이 입법화되면서, 앞으로 공정거래위원회가 처리해야 하는 업무는 훨씬 더 많아졌다. 현재 정원도 못 채우고 있는 조직에 추가 입법으로 과부하가 걸리면, 심한 경우 법만 만들어 놓고 집행은 제대로 못하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그런데도 인력보강과 조직개편 논의는 ‘감감무소식’이다. 공정위 안팎에서는 대기업 전담부서 신설도 힘들 것으로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이의영 교수는 “대선당시 형성됐던 경제민주화에 대한 추동력이 후퇴하고 있다”며 “경제민주화에 대한 국민적인 관심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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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에 씁쓸한 ‘갑-을 논란’을 일으켰던 숱한 사건들을 이제는 더 이상 접하지 않게 됐을까? 여러 논란을 뒤로 하고, 정말 경제민주화가 일단락됐는지 여부는 바로 이 질문에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