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천명’이라는 드라마가 방영됐다. 왕위를 둘러싼 음모에 휘말린 최원이라는 의관이 누명을 뒤집어 쓴 채 도망을 다니다, 누명을 벗고 새 삶을 찾게 됐다는 것이 대강의 줄거리다.
여기에 자신의 아들을 왕에 앉히려는 왕후와 외척, 계모의 계락으로 죽을 고비를 수차례 넘기는 세자, 그리고 엉뚱하게도 세자를 보호하는 도적떼 무리 (여기에는 심지어 임꺽정도 등장한다), 세자와 경원대군을 둘러싸고 둘로 갈라진 유림들...
이렇게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면서, 드라마의 재미를 더했다. 물론 사실(史實)과는 전혀 다른 내용이 많이 들어갔지만, 이 드라마에서 등장하는 세자가 바로 재위 8개월만에 청연루에서 쓸쓸히 숨을 거둔 인종이다.
그리고 조선 6백년사에서 가장 악명높은 여인이 등장하는데 바로 문정왕후다. 드라마에서 등장하듯 중종의 비였던 문정왕후는 자신의 아들 경원대군을 왕으로 옹립하기 위해, 의붓 아들인 세자를 없애려 갖은 악행을 저지른다.
6살에 세자에 책봉된 인종은 즉위까지 무려 25년동안 세자로 지내왔다. 그 긴 시간동안 인종은 왕통을 이어받은 세자라는 직분 때문에 수차례 죽을 고비를 넘기는 파란만장한 생을 살아왔다.
김안로의 아들 김희가 꾸민 이른 바 ‘작서의 난’으로 배다른 형제 복성군과 어미 경빈이 사사되는 사건이 있었다.
‘작서의 난’은 세자의 생일에 쥐를 잡아, 꼬리를 자르고 입과 귀를 불로 지져 세자를 저주한 사건이다. 이런 끔찍한 사건 이후에도 경원대군을 왕으로 옹립하려는 문정왕후의 핍박은 오히려 거세진다.
중종 38년 동궁에서 갑작스레 화재가 발생했다. 쥐꼬리에 솜방망이 불을 붙여 동궁에 들여보낸 명백한 방화였다.
문정왕후의 소행임을 직감한 세자는 계모일지라도 어미의 뜻을 어기는 것도 불효라고 생각해 그 자리에서 꼼짝않고 목숨을 버리려 했다.
그러나 아들의 이름을 간절히 부르는 중종의 목소리를 듣고서야, 세자는 불구덩이에서 뛰쳐나왔다.
숱한 죽을 고비를 넘기며 무려 25년간 세자 자리를 지켜온 인종은 아버지 중종이 재위 39년만에 승하하면서 왕위를 물려받았다.
효성 지극한 인종은 5개월동안의 장례기간중 음식을 가리며 육식을 멀리하는등 선대 왕의 장례를 위해 몸을 사리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병약한 임금은 장례를 마치고 몇 개월도 되지 않아 시름 시름 앓기 시작했고, 이제는 대비가 된 문정왕후 일파로부터 임금을 보호하기 위해 중전 인정왕후는 자경전의 누각 청연루로 남편을 옮겨 간호했다.
청연루는 원래 대비전으로 사용되던 자경전의 동편에 붙어있는 작은 누각이다. 임금이 누워 병구완을 하기에는 누추한 곳이다.
그러나 시어머니에게 모진 핍박을 받아온 남편을 지키기 위한 중전의 애틋한 마음이 묻어나는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아무런 힘이 없는 중전으로서 할 수 있는 마지막 저항이기도 했다.
인종은 이곳에서 재위 8개월만인 1545년 7월 1일 쓸쓸히 숨을 거둔다. 온갖 핍박과 살해위협을 넘기며 25년을 버텨온 각고의 세월을 돌이켜보면, 너무도 허망한 죽음이다.
야사에 따르면 인종이 앓은 병은 이질이었는데, 문정대비가 이질과는 상극인 닭죽을 먹여 임금의 병을 악화시켰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어쨌든 문정왕후가 원하는대로 어린 경원대군(명종)이 왕위에 올랐고, 수렴청정이 시작됐다. 국정은 혼란에 빠졌다.
문정왕후는 을사년에 사화를 일으켜 자신의 정적인 사림파를 제거했고, 외척과 탐관오리들이 판을 치며 민생은 피폐해졌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임꺽정은 바로 이때의 인물이다.
인종은 아버지인 중종을 왕위에 올려놓고 국정을 농단하던 훈구파를 경계하기 위해, 사림파를 등용하는등 나름대로 노력을 기울였다. 인종이 요절하지 않았다면 사대부와 왕권의 세력균형은 좀 더 달라졌을 지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