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교권과 학생인권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하루가 멀다하고 듣는 시대다. '학생 잘못이다' '교사 탓이다'라는 식의 책임공방이 벌어지고는 있지만, 누구나 대한민국의 교육이 올바른 길로 가고 있지 않다는 것만은 분명히 인지할 수 있으리라.
교육과학기술부에 따르면 2011년 3월1일부터 이듬해 2월29일까지 해외유학과 이민을 제외하고 학업을 중단한 학생이 5만 9165명이다. 이는 초·중·고교 전체 재학생 1000명 중 9명 꼴이다. 학업 중단자는 고교생이 3만 3057명(1.7%)으로 가장 많고, 중학생 1만 5337명(0.8%), 초등학생 1만 771명(0.34%) 순이다.
학교를 떠난 이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최근 경기도 용인에서 발생한, 평소 알고 지내던 여성을 성폭행한 뒤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한 사건의 범인인 열아홉 살 심모 군도 학교를 그만둔 학생 가운데 하나였다. 그는 "학교가 필요없다는 판단에 고등학교를 자퇴했다"고 말했다.
대한민국 교육, 무엇이 문제일까. 신간 '김용택의 참교육 이야기'는 철학의 부재를 꼽는다.
'학생들로 하여금 어떻게 사는 게 행복하게 사는 길인지, 어떻게 사는 게 아름답게 사는 것인지, 어떻게 살면 훌륭한 삶을 살 수 있는지를 가르치지 않고, 경쟁에서 살아남는 길, 이겨야 산다는 생존의 법칙, 힘의 논리만을 가르치는 교사가 과연 교사로서의 직무를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고 믿어도 좋은 걸까? (108, 109쪽)'
1969년 초등학교에서 시작해 40년 가까이 교직에 몸담았던 지은이는 2007년 정년퇴임 당시 정부가 33년 이상 근무한 퇴임 교사에게 주는 옥조근정훈장을 거부했다. 무너진 학교의 현실을 그대로 두고 정년퇴직하는 것도 아쉬운데, 개근상처럼 훈장을 받아들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해방 후 지금까지 수십만 명이 훈장을 받았는데 왜 교육은 이 모양인가?' 하는 항의의 표시이기도 했다.
'주권이 없는 백성은 노예다. 침묵이 미덕이라는 이데올로기를 벗어던지지 못하는 교사는 지식전달자일 뿐 삶을 안내하는 참스승일 수는 없다. 시행착오는 과거로 충분하다. 교육의 중립성이라는 이름으로 혹은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이라는 이름으로 교사의 입에 재갈을 물리는 억압을 두고 교육의 중립성을 기대할 수 없다. 불의를 보고 분노할 줄 모르는 교사가 어떻게 존경받기를 기대할 것인가? (164쪽)'
그는 교육이 무너진 것은 시대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교육 정책과 입시위주의 교육, 일류대학이라는 학벌이 만들어낸 결과라고 꼬집는다. 개인은 물론 학급, 학교, 지역 사회까지 서열화하는 성적지상주의 교육이 교실을 황폐화시켰다는 것이다.
'권력이나 돈이나 신의 이름으로 약자의 눈을 감기고 짓밟는 세상은 진위가 뒤집힌 더러운 세상이다. 그런 사회는 아무리 국민소득이 높아지고 학력이 높아진들 삶의 질이 나아지길 바라는 건 그림의 떡이다. 부끄러워해야 할 사람이 떳떳하게 사는 세상에서 진실을 말하는 이와 함께 저항하지 못하는 사회가 부끄럽고 또 부끄러울 뿐이다. (191쪽)'
아무리 지식이 많더라도 판단 기준 없는 지식은 악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이 제시하는 해법은 그 판단 기준을 세울 수 있도록 돕는 것, 다시 말해 철학을 심어 주자는 것이다.
'아무리 많은 지식이라도 담을 그릇이 없으면 쓸모가 없다. 물은 어떤 그릇에 담느냐에 따라 그 형태가 달라진다. 역사도 그렇고 행복도 사랑도 그렇다. 그릇이 없는 사람은 생각이 없는 사람이다. 철학이 없는 사람은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떠하리, 또는 좋은 것이 좋다는 사고방식의 소유자다. (244쪽)'
철학은 세상에서 자신이 가장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을 알고,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구분하고, 서로 도우며 의지하고 사는 평범한 지혜를 깨우쳐가는 과정이다. 고의든 아니든, 나로 말미암아 다른 사람이 피해를 입어서는 안 된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더불어 사는 법을 깨닫는 순간 우리 교육도 희망의 빛을 볼 수 있을 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