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더 가난해지는 동네

[홀대받는 서울 서남권] ② 임대주택 밀집 자치구 재정 압박 심화

서울 영등포, 강서, 구로, 금천 등 서남권이 ‘낙후지역’의 불명예를 벗지 못하고 있다. 지난 70~80년대 강남 개발에 치이고 2000년대 이후 강북의 ‘뉴타운’에까지 밀리는 등 서남권은 계속 소외됐다. 밀집돼 있는 공장단지와 열악한 주거 환경은 21세기 서울의 경쟁력과는 거리가 멀다. 뒤늦게 서남권에 대한 투자와 개발 약속이 잇따르고 있지만 각종 규제와 경기 침체 여파로 미래를 낙관할 수만은 없다. CBS노컷뉴스는 낙후된 서울 서남권을 4차례에 걸쳐 조명한다 [편집자 주]

[싣는 순서]
① 지금도 ‘공중변소’ 쓰는 21세기 서울시민
②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더 가난해지는 동네
③ “최악의 출근길, 언제나 풀리려나“
④ “공원, 병원, 어린이집…제대로 된 게 없다”

강서구 가양동 임대아파트 입구 모습 (전솜이 기자)


서울에서 가장 부자 동네는 역시 강남, 그렇다면 가난한 사람이 가장 많은 곳은 어디일까?

저소득층을 위한 영구임대주택을 기준으로 한다면 답은 강서구이다.

지난 1992년 가양동과 등촌동 일대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시작으로 강서구에는 지금까지 모두 1만5275 가구의 영구임대 아파트가 들어섰다.

서울의 영구임대 아파트 1/3이 이곳에 집중적으로 몰려있다.

영구 임대가 많은 만큼 이 곳에 입주한 기초생활수급자는 지난해 말 현재 1만8441명에 이른다. 강남, 서초, 송파 등 강남 3구의 기초생활수급자 1만9015명과 맞먹는다.

영구임대 이외에 공공임대도 많아 강서구 전체 주택의 12%, 다시 말해 10집 건너 1집 이상은 임대 주택이다.


심지어 주민의 절반 이상이 임대주택에 사는 이른바 ‘임대동’도 5곳이나 된다.

기자가 가양동에서 만난 임대 아파트 단지 주민들은 “전에 살던 것 보다 훨씬 편하다”며 “없는 사람들끼리 서로 의지가 되고 좋다”고 했다.

하지만 임대 아파트 단지 전체가 마치 도심 속 외딴 섬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인근의 민영 아파트에 사는 한 주부는 “장애인들도 많고 이따금 술먹고 소란 피우는 분들도 있어 불편한 건 사실”이라면서 “무엇보다 집 값 때문에 속 상하는 건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임대 아파트에서 초등학생을 키우는 한 주부는 “어떤 유치원은 이쪽(임대) 아이들을 받지 않는다. 문화센터에 가더라도 ‘무슨 단지 사느냐’부터 물어본다. 여긴 끼리끼리(임대는 임대끼리, 민영은 민영끼리)만 어울린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규모 임대 아파트 단지가 있어도 이 지역 임대주택 공급은 여전히 증가세다. 이번에는 다가구 매입 임대 주택 때문이다.

다가구 매입 임대는 중앙 정부나 서울시가 기존의 다가구 주택을 사들여 개보수 한 뒤 취약계층에게 싸게 임대해주는 방식.

강서구 임대주택 단지 놀이터에 독거노인들 모여 여담을 나누고 있다. (전솜이 기자)
부족한 부지 문제를 해결하고 저소득층을 분산, 재정착시킴으로써 다양한 소득과 연령층의 혼합인 소셜믹스도 가능한 효과적인 정책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제한된 예산으로 목표량을 맞추다보니 결국 집 값이 싼 강서구로 또 다시 집중 현상이 나타났다.

지난해 말까지 서울시에 공급된 다가구 임대주택 1만4006 가구 가운데 13.4%인 1723 가구가 강서구에 공급됐고 그중 상당수는 화곡본동에 집중돼있다.

주택가 사이 사이에 자리를 잡고 있지만 그래도 ‘임대’라는 낙인 효과는 어쩔 수 없었다.

화곡동에 사는 S씨는 “처음 이사해서는 참 살만했는데 이 집이 임대주택이라고 알려지니까 사람들의 반응이 조금씩 달라지더라”면서 “가난하다는 낙인이 찍힌 느낌”이라고 털어놨다.

S씨는 또 “벽쪽으로 물이 스며들어 벽지가 다 난리가 났는데도 도무지 고쳐주러 오지 않는다”며 “집이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으니까 이웃들이 더 싫어하는 것 아니겠냐”고도 했다.

당초 취지와는 달리 오히려 주민간 계층 분리와 위화감이 커지는 모습이다.

또 다른 문제는 자칫 자치구 전체가 더 낙후될 수 있다는 점이다.

자치단체는 기초생활수급자 등 형편이 어려운 주민들에게 생계비를 포함한 각종 사회 복지 비용을 대주고 있다.

흔히 사회복지비는 중앙정부와 서울시가 일정한 재원을 지원하고 나머지는 자치구가 책임지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따라서 가뜩이나 복지 비용 때문에 아우성인 요즘 가난한 자치구의 허리는 휠대로 휘고 있다.

강서구의회 장상기 의원은 “임대 주택이 늘어나면 재산세 등을 부과 못해 세수는 줄어든다”며 “그러나 사회복지 비용으로 지출되는 금액은 증가해 재정에 부담이 크다”고 설명했다.

장 의원은 또 "전체 예산 가운데 사회복지비가 차지하는 비율이 다른 구 보다 10%포인트 정도 높은 55%"라며 "다른 지역 사업은 아예 꿈도 못 꾼다”고 덧붙였다.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바람에 자칫 지역 전체가 더 가난해질 수 있는 만큼 사회복지비용 분담 체계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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