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신들은 이집트 사태의 이면에는 경제 개혁의 지연과 이집트 국민의 빈곤이 자리 잡고 있다고 전하고 있다.
이집트에선 사회주의에 가까운 빵 보조금 제도와 ‘국영 빵집’이 있고 40%를 넘는 빈곤층이 빵 보조금으로 생계를 유지한다.
1977년 안와르 사다트 대통령이 외자를 유치하려고 국제통화기금(IMF)의 주문대로 밀가루 보조금을 없애려다 전역에서 폭동이 일어났다. 분노한 시위대 800여명이 사망했고, 보조금은 유지됐다.
2008년 국제 곡물시세가 사상 최고치로 치솟자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이 1인당 국영 빵집 구매량을 20개로 제한했고, 성난 시민들은 거리로 뛰쳐나왔다.
이집트 시태가 궁극적으로 빵 때문에 터졌다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이집트에서 빵은 식량이기 전에 삶이며 정치다. 속이 텅 빈 중동식 빵 ‘아이쉬(Aysh)’는 실제로 아랍어로 생명 또는 삶이란 뜻을 지닌다.
그래서 “이집트 정부가 통제력을 잃으면 안 되는 것 두 가지가 바로 빵과 연료”라는 말이 설득력이 있게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이런 이집트의 빵 공급에 진작부터 위험 신호가 켜져 있었다.
외환위기 여파로 이집트 파운드화 가치가 급락하면서 지난 3월 이집트의 공공 비축 밀이 6개월 분량에서 101일로 반 토막 났고, 세계 곡물 시장에서 밀을 확보하는 것이 무함마드 무르시 정권의 주요 과제였다.
그러나 지난 3월 말 기준 이집트 외화보유액은 134억 달러로 3개월분의 수입을 결재할 수 있는 수준으로 떨어졌다. 무바라크 전 대통령이 물러나기 전인 2011년 1월 보유고는 360억 달러였다.
외화 입금이 안 돼 장기간 인도되지 않고 항구에 묶인 곡물 화물도 곳곳에 눈에 띄기도 했다.
이집트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48억 달러의 재정지원을 받으려고 협상을 진행하다 잠정 중단했으며 자금 확보는 불투명한 상태였다.
연료 부족도 심각했다.
무르시 축출 전에 주유소 주변에 길게 늘어선 줄은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었다.
중유 부족은 외화 보유액 감소 탓이고 다른 연료 부족은 부패와 태업 탓인데 이같은 빵과 연료의 부족이 무르시에 대한 분노로 이어진 셈이다.
전문가들은 이집트 국민은 경제 회복을 원했으나 무르시의 정책은 이와는 멀었다고 평가한다.
무르시 대통령이 민주 혁명의 목표를 진전시키고 악화하는 경제를 살리는 것보다 본인의 권력을 확대하거나 무슬림형제단의 지배력을 공고히 하는 데 더 집중했다는 얘기다.
이집트에서 통치자는 권력을 갖는 만큼 국민에게 빵만큼은 안정적으로 공급해야 하는 것이 의무이자 일종의 계약으로 통한다. 이 ‘빵의 약속’이 깨지면서 무르시 대통령의 실각으로 이어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