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행정법원이 군부독재 시절 삼청교육대에 끌려가 저항한 행위도 민주화운동으로 봐야 한다고 판결했다. 이 소송의 원고인 74살 이 모 씨는 강화도에서 농사를 짓고 살던 1980년 8월 이웃과 다툰 게 빌미가 돼 삼청교육대에 끌려갔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이게 무슨 짓이냐. 죄 없는 사람들을 근거도 없이 데려다가 때리는 법이 어디 있냐”고 저항하다 특수교육대에 편입돼 더욱 심한 고초를 겪었다. 이 씨는 10개월을 그리 핍박당하다 다리에 장애를 얻어 퇴소했고, 삼청교육대 진상규명과 피해보상 활동을 벌여 왔다.
삼청교육 사건은 신군부의 계엄포고 13호에 따라 1980년 8월1일부터 이듬해 1월25일까지 6만755명이 영장 없이 검거됐고, 이 가운데 3만9천742명이 삼청교육대에 끌려가 고초를 겪은 사건이다. 구타와 가혹행위 등으로 숨진 사람만 54명에 이른다.
◇ 삼청교육 수칙 1조, 도망치면 사살한다
끌려간 사람들은 식사시간이 ‘1초’인 경우도 허다했고, 훈련과 노동을 시키면서 물을 주지 않아 웅덩이에 고인 흙탕물도 마셔야했다. 삼청교육을 실행한 각 부대의 상황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모질었던 그 시간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예는 삼청교육대 생활수칙 제1조다.
‘선동 및 도망치는 자는 사살한다.’
전두환 신군부가 삼청교육대를 시행할 때 내세운 것은 사회악을 뿌리 뽑기 위해 문제 있는 불량배(?)들을 데려다 강제로라도 순화(?)시키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공포 분위기’를 조성해 정권장악에 대한 반발과 비판 여론을 잠재우려는 것이 본래의 목적이었고 불량배 소탕은 적당히 끼워 넣은 면피용.
대표적인 예가 노동운동 탄압이다. 1970년대 말에 파업을 이끌었던 원풍모방, 반도상사, 대한전선, 콘트롤데이타, 청계피복 노조지도자 등 노동운동 관련자 191명이 잡혀가 수용됐다. 이 가운데 70여 명은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에 끌려가 고문당했다.
삼청교육대에는 승려들도 많았다. 당시 조계종은 체제정비를 마치고 새로운 도약을 하려던 시점이었다. 그래서 신군부가 들어섰을 때 ‘정교분리’ 원칙을 고수하며 전두환 신군부 정권에 대한 지지성명을 끝내 내놓지 않았다. 이것이 화근이 돼 10.27 법난이라는 참극을 겪는다. 2008년 2월 국회에서 ‘10.27법난 피해자 명예회복 등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될 정도였으니 참극이라 부르는 배경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기독교는 교회협의회와 진보적 교단을 중심으로 한 민주화운동의 흐름도 있었지만 대형교회 목사들을 주축으로 해 다수가 굴종의 모습을 보였다.
대표적인 사건이 1980년 8월 6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열린 ‘전두환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상임위원장을 위한 조찬기도회’이다. 대통령도 아닌 군 장성을 위해 교회가 대거 동원되고 KBS와 MBC가 전국에 생방송으로 이 기도회를 중계했다.
참석자들은 “이 어려운 시기에 막중한 직책을 맡아서 ‘사회 구석구석에 악을 제거하고 정화’할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했다. 한국 기독교 역사에서 지우고 싶으나 지울 수 없는 씁쓸하고도 수치스런 장면이다. 이 기도회의 기도 덕에 전두환 씨는 지금도 골프도 치고 퍼내어도 줄지 않는 29만원 통장으로 여생을 풍족히 보내고 있는 걸까?
기도회의 두어 달 뒤인 10월 27일 불교계는 참극을 당했다. 다시 보름 뒤인 11월 14일 CBS는 뉴스 기능을 빼앗기고 상업광고를 압수당했고 언론계 역시 구조조정과 통폐합을 거쳐 관변언론체제로 탈바꿈해 ‘땡전 뉴스’를 시작하게 된다.
삼청계획 5호는 삼청교육을 받을 대상을 ‘전과자나 개전의 정 없이 주민의 지탄을 받는 자’라고 애매하게 규정하고 경찰서별 강제할당량까지 지정했기 때문에 ‘미안하지만 네가 새마을 교육 좀 다녀와라’는 식으로 떠밀려 들어간 사람들도 많았다.
또 삼청교육이 끝난 뒤에도 ‘사회보호법’에 의해 군 감호소나 청송 감호소로 옮겨져 죄수 생활을 해야 했다. 주민등록 등초본 상단에는 ‘삼청교육 순화교육 이수자’라고 낙인이 찍혀 있어 취업할 때 이사를 갈 때 대출을 받을 때 등 수시로 불이익을 당해야 했다.
◇ 지금 우리는 안전한가?
삼청교육대 사건은 국가 공권력의 폭력 구조를 극명하게 드러내 보여준다. 국가 공권력이 집권세력의 통제무기가 돼 국민을 상대로 폭력을 행사하는 과정이다.
먼저 집권세력은 외부의 위협 아니면 내부의 질서교란자를 날조하거나 과장되게 확대시킨다. 5.16 쿠데타 세력은 부랑인들을 질서교란자로 지목해 국토재건대에 편입시켰고, 삼청교육대는 불량배를 내세워 폭압의 근거와 정치적 탄압의 교두보를 마련했다. 이런 조작된 위험과 위협을 사회에 퍼뜨리기 위해 언론이 동원되고, 이것을 밀어붙이는 지배 권력의 정당성을 강화하기 위해 종교가 동원된다.
그리고 누구에게 어떻게 폭력을 휘두를 것인지에 대한 판단도 권력이 독점한다. 엄연히 사법부의 몫이지만 긴급조치, 계엄령, 포고문 등 방법은 많다. 그래도 사법부와 법이 거슬린다면 무기력한 국회를 동원해 적당한 법을 만들면 그 뿐이다.
결국 국회에서 여야가 국가 권력의 남용을 견제하거나 감시하지 않고 언론이 비판 기능을 상실하고 종교가 민중보다 권력을 위해 기도하기 시작한다면 그것은 거대한 국가폭력의 전조가 되는 것이다. 국가 권력 속에서 배양되는 폭력은 거대한 참화로 돌변한다. 이를 경계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