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박 속 드러난 北 초조함, "미국이 또 우리 밀지 못하게 해달라"

기자들의 질문에 대답하고 있는 최명남
"당신들이 미국으로 하여금 우리를 또 밀지 못하게 해야돼요"

최명남 북한 국제기구국 부국장은 2일 자신을 둘러싼 수십 명의 기자들에게 미국이 대북 적대정책을 폐기하도록 힘을 써 달라며 이같이 말했다. '대화를 위한 대화는 없다'는 한미일과 과거 '혈맹국' 답지 않은 태도를 취하는 중국 사이에서 전진도 후퇴도 하지 못하는 북한의 초조함을 나타내는 듯한 발언이었다.

북한은 2일 북핵 6자회담 당사국들이 모두 모이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을 자신들의 입장을 강변하는 무대로 삼았다. 최 국제기구국 부국장은 ARF 외교장관 회의가 마무리된 뒤 "여러분들 수고하길래 한 말씀 드리자고 찾아왔다"며 회담장 로비에 있던 기자들 앞에 섰다. 최 부국장은 기자들이 몰려오면서 안전사고가 우려되자 자리를 잠깐 피했다가 취재진이 정비되자 다시 나타났다. '한 마디를 하려고' 준비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기자들의 질문에 나름대로 자리를 지키며 대답을 이어가는 등 보통 북한 인사들과는 달리 '협조적'인 모습이었지만, 밝힌 내용은 그간 입장과 다르지 않았다.

그는 박의춘 외무상이 회의에서 한 말이라며 "조미(북미) 사이에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우리에 대한 각종 제재와 군사적 도발을 끝장내는 것"에서부터 한반도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미일이 대화 재개의 조건으로 내건 9.19 성명 이행에 대해서는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라고 일축하면서 미국이 북한의 대화 제의에 조건 없이 응해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최 부국장은 취재진의 어떤 질문에도, 미국과의 평화협정 체결 필요성이라는 '정해진 답'으로 돌아갔다.

이처럼 북한은 최근 대화공세와 함께 국제무대에서 같은 입장을 수차례 강조하고 있다. 앞서 신석호 북한 유엔 대사는 지난 6월 유엔 본부에서 2010년 천안함 사태 이후 3년 만에 기자회견을 갖고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 폐기를 요구했었다. 외교부 당국자는 "비핵화 관련 대북 압박공조가 강화되고 있다는 것을 북한이 의식한다고 판단된다"고 했다.

한편 ARF에서도 북한 문제는 핵심 이슈 중 하나였다. 각료회의에 참석한 대부분 장관들은 북한 비핵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고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전했다.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은 기자회견에서 "북한의 미래에는 반드시 비핵화가 포함돼야 한다는 것이 우리 4개국 (한미일중)의 완전히 일치되고 확고한 주장"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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