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삶 파괴하는 장시간 노동

한국 노동시간 OECD 2위·산재 사망률 1위 '국민병'… 시간의 민주화 필요

⊙ 과로 사회/김영선/이매진

'월화수목금금금'이라는 말이 있다. 살인적인 노동 시간에 시달리는 우리 사회 노동자들의 현실을 에둘러 표현한 말이리라.

한국의 연평균 노동 시간은 2090시간. OECD 국가 중 둘째로 길다. 산재 사망률의 경우 2위 국가를 크게 앞서는 1위다. 반면 일하는 남성이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은 하루 평균 2.8시간으로 OECD 국가 중 꼴찌다.

사회학자 김영선은 한국 사회가 '성실'과 '장시간 노동'을, '칼퇴근'과 '나태'를 같은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는 식으로 우리 사회를 '과로 사회'로 규정한다. 동명의 책을 통해서다.

'미디어에서는 성공한 최고 경영자를 미화할 때마다, 나는 월화수목금금금 일을 했다는 이야기를 강조한다. 월화수목금금금 일한 끝에 세계적인 성공을 거둔 신화는 미디어를 타고 반복 재생산된다. 어떤 경우 장시간 노동은 능력, 지위, 자긍심, 우월감, 유능함, 안정감, 아버지다움, 남편다움의 상징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이런 현실은 성공 신화와 장시간 노동으로 대표되는 남성주의적 노동 규범이 매우 강력하게 결합돼 있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180, 181쪽)'

김영선은 장시간 노동을 일종의 '국민병'이라고 부른다. 개인 시간, 가족 시간, 지역 활동, 육아 참여 시간, 사랑할 시간, 연대할 시간, 상상할 시간을 희생시키는 까닭이다.


이렇듯 장시간 노동을 질병으로 인식할 때 이를 치료하기 위한 집단의 냉철한 인식이 생겨나고, 과로 사회를 해체하는 첫걸음을 뗄 수 있다는 것이 김영선의 주장이다.

'최근 휴가의 종류가 많아진 것처럼 보이지만, 휴가도 경쟁력 있게 사용해야 한다는 규칙이 따라붙으면서 우리는 휴가 기간에도 경쟁의 무기를 갖추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한다. 그냥 놀면 죄악이다. 휴가의 종류가 어느 때보다 많아 보이지만, 실상을 뜯어보면 어느 때보다 초라해진 게 경제 위기 이후의 휴가다. 휴가는 업무의 연장이며 경쟁력을 제고해야 하는 생산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자유 시간의 영역까지 파고든 경쟁력 담론은 경제 위기 이후 우리의 삶과 세계관을 옭아맨 신자유주의의 최대 걸작이라고 말할 수 있다. (70쪽)'

김영선은 우리의 삶 전체를 예속하는 복잡한 원인들이 얽히고설킨 통치의 산물이 장시간 노동이라고 말한다. 제도나 정책만으로 바로 잡을 수 있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밤에 활동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호모 나이트쿠스'가 그 단적인 예다.

'호모 나이트쿠스는 24시간 활동이 사회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일반적인 양상이 됐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중략) 24시간 잠들지 않는 도시에 부합하는 새로운 인간형이 등장한 것이다. 심야 버스, 편의 서비스, 미디어, 전자 정부 사례가 제도나 체계의 변화를 가리킨다면 호모 나이트쿠스는 인간형의 변화를 의미한다. (115, 116쪽)'

김영선은 과로 사회를 넘어서려면 '시간의 민주화'가 요구된다고 강조한다.

'정책 개선이나 권리 담론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정치 투쟁이나 경제 투쟁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진보 정치는 시간의 분배, 시간 권리의 보장, 자유 시간이 지니는 가치의 인정, 대항 프레임의 구축, 남성주의적 노동규범의 해체 등 전방위적인 대안을 마련해 시간을 민주화해야 한다. (18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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