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독서나 음악 감상을 하고 난 직후에 틀어진 목화솜처럼 감수성이 하얗게 부풀어 올라 있을 때는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고 말들을 참 쉽게 합니다.
그러나 현실로 돌아와 일상생활에서 보면 어떤가요. 자신이 보거나 듣거나 만져보지 못한 것에 대해 가차 없이 ''그건 말도 안 돼'' 또는 ''믿을 수 없다''고 잘라 버리곤 합니다.
저는 어려서는 말할 것도 없고 어른이 되고 나서도 꼭 한 번쯤 ''이상한 것''을 만나보고 싶었습니다.
고공에서 흔들리거나 떨어지는 놀이기구를 못 탈 만큼 심약한 편인데도, 세트장처럼 만들어진 흉가 체험 코스 같은 것 말고 진짜 귀신을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지금도 과학이나 논리로 설명되지 않는 세계 곳곳 각종 기이한 현상들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러나 36년을 살아오는 동안 그런 비일상적인 일은 매체에서 다루어지는 가십 기사일 뿐, 저에게는 한 번도 일어나 주지 않았지요. 그러다 문득 생각했어요, 왜 나는 그것을 눈으로 보고 즉물적이며 감각적인 방법으로 인식하고 싶어 하는 걸까?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분명 우리 곁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이미 공기나 먼지로 잘 알고 있는데 어째서 ''나와 다른 존재''에 대해서만은 실제로 보고 만져야만 알겠다는 걸까? 그러다가 이런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세상에 있을 수 없는 일이란 없다고요. 비록 저 자신에게는 뜻밖의 낯선 일이 일어난 적 없지만, 분명 제가 모르는 어딘가에서는 일상적인 일일지도 모르며, 그 낯섦을 대하는 사람들의 시선은 한없이 깊고 따뜻할지 모른다고 말입니다.
구병모 올림
구병모
1976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편집자로 활동하였다.
현재는 집필 활동에 몰두하고 있다.
데뷔작이자 제2회 창비청소년문학상을 수상한 『위저드 베이커리』는 ''청소년 소설=성장소설''이라는 도식을 흔들며, 빼어난 서사적 역량과 독특한 상상력으로 미스터리와 호러, 판타지적 요소를 두루 갖추었다는 평을 받았다.
※원문은 한국도서관협회 문학나눔의 행복한 문학편지 (http://letter.for-munhak.or.kr)에서 볼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