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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이란?…강씨는 간암 투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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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서가 조작됐다''더니…한국판 드레퓌스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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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5월 8일 아침 8시, 서울 마포구 신수동 서강대학교 본관 5층에서 당시 25살이던 김기설씨가 노태우 정권 퇴진을 외친 후 몸에 불을 붙인 뒤 그 자리에서 투신해서 숨진다.

옥상에는 유서 2장이 발견됐다.

검찰은 유서에 주목했다. 그 결과는 고인의 동료이자 당시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총무부장이던 강기훈(48) 씨의 체포로 이어졌다.

검찰은 당시 "반정부 투쟁 분위기를 더욱 확산시킬 목적으로 김기설 명의의 유서 2장을 작성해 분신자살을 방조했다"며 강 씨를 자살 방조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도 추가 기소했다.

여론은 당시 민주화 세력에게 등을 돌렸다. 일각에서는 동료의 죽음마저 정국에 이용하는 파렴치한으로 민주 세력에게 포화를 쏟아부었다.

강씨는 끝까지 유서 대필을 혐의를 부인했지만 검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필적 감정을 결정적 증거로 강 씨를 재판에 넘겼다. 결국 강 씨는 1992년 7월 대법원에서 징역 3년과 자격정지 1년6월이 확정돼 94년에야 만기 출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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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정권에 의해 사건이 조작됐다는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대학가의 반정부 시위 격화로 골머리를 앓던 노태우 정권이 민주화 세력에 타격을 주기 위해 강 씨를 희생양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이런 시각에서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은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으로, 대표적 인권침해 사건으로 불리기도 했다. 강 씨는 "내 동료 김기설의 죽음을 미처 슬퍼할 겨를도 없이 나는 파렴치범이 돼 있었다"고 회고한 바 있다.

강 씨는 노무현 정부가 들어선 이후 명예회복의 전기를 맞았다. 한 TV 방송사가 "유서는 아들의 글씨가 분명하다"는 김기설 씨의 아버지의 증언을 받아내는 등 사건의 재조명 작업이 본궤도에 올랐다.

정부 차원의 과거사 정리 작업도 착수됐다. 2005년 경찰청 과거사위원회가 "유서는 김 씨 친필로 보인다"는 입장으로 선회했고, 1991년 당시 필적감정을 했던 국립과학수사연구소도 "유서는 김 씨 본인이 작성한 것"이라는 재감정 결과를 내놓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같은 조사 결과를 토대로 2007년 11월 13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는 "강 씨가 김 씨의 유서를 대신 쓰지 않았다"는 결론 아래 재심 등 조치를 권고했다.

강 씨는 이에 힘입어 2008년 1월 국가에 재심을 청구했고, 이듬해 9월 서울고법은 "유죄 확정판결을 더이상 유지할 수 없는 고도의 개연성이 인정된다"면서 재심 개시 결정을 내렸다.

이후 검찰이 재항고로 맞서면서 대법원의 최종 결정까지 3년여의 시간이 지났다. 대법원의 판단 역시 ''재심 결정''이었다. 강 씨에게 최종적인 명예회복의 기회가 주어짐에 따라, 한국의 사법 정의에 대한 이정표가 세워질지 주목된다.

이제 다시 법원의 판결을 받게된 당사자인 강 씨는 건강이 악화되어 올 5월 간암 수술을 받고 투병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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