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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뉴스] "김영환은 왜 정부의 도움을 거절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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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의 속사정이 궁금하다. 뉴스의 행간을 속 시원히 짚어 줍니다. [Why 뉴스]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를 통해 들을 수 있습니다 [편집자 주]

 

1980년대 중반 ''강철서신''의 저자로 잘 알려진 김영환씨가 중국당국에 구금된 지 50여일이 지났다. 그런데 김 씨가 정부의 도움을 거절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외국에서 구금된 사람이 정부의 도움을 거절한다는 건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특히 함께 구금된 3명은 영사접견도 거부한다는 자필 각서까지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오늘 [Why 뉴스]에서는 "김영환은 왜 정부의 도움을 거절했나?"라는 주제로 그 속사정을 알아보고자 한다.

▶ 정부의 도움을 거절했다는 것이 사실인가?

= 정부의 도움을 거절했다기 보다는 정부 차원의 대응이 도움이 안 될 수 있으니 나서지 말아달라는 취지로 받아들이는 것이 옳을 것 같다.

4명이 구금돼 있는데 김영환씨는 영사접견을 요청했지만 나머지 3명은 자필로 영사면접권을 포기한다는 내용의 자필각서까지 제출했다.

김영환씨는 영사 접견에서 자신의 활동내용에 대해 구체적으로 얘기하지 않았고 수사에도 알아서 대응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정부 고위관계자가 언급했다는 얘기가 나돌고 있다.

정부관계자는 "그런 말을 구체적으로 했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면서도 "정부가 적극 대응할 경우 중국의 오해를 살 수도 있는 점을 고려했을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 외교부에 확인해 봤나?

= 외교부 당국자도 공식적으로 사실이다, 아니다, 구체적으로 확인을 하지 않고 있다.

외교부 당국자는 CBS와의 전화통화에서 "김영환은 (영사 면담 때) 굉장히 조심스러워 했던 것 같다"면서 "주로 건강과 안위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영사면담 과정 중) 감시 받는다고 생각하니까, 다만 그 때 상황은 우리 정부에 적극적으로 뭘 요구한 것 같지는 않다"라고 덧붙였다.

이 당국자의 말은 "김영환씨가 적극적으로 뭘 요구하지 않았다"는 것인데 이것을 ''도움이 안 되니 정부가 나서지 말아 달라''고 해석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

그렇지만 김영환 석방대책위원회 최홍재 대변인은 "해외에서 구금된 사람이 정부의 도움이 필요없다고 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그렇다면 왜 영사 접견을 신청했겠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김영환씨 어머니와 석방대책위 관계자들은 17일 김성환 외교부 장관을 만나 김씨의 석방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 줄 것을 요청했다.

이런 상황을 종합해보면 김영환씨가 구체적으로 정부의 도움을 거절한 것은 아니고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설 경우 중국이 오해를 할 수도 있으니 조심해달라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보인다.

▶ 김영환씨에게 왜 ''국가안전위해'' 혐의가 적용된 거냐?

= 김영환씨에게 왜 국가안전위해 혐의가 적용됐는지는 지금으로서는 구체적인 사실을 알 수 없다.

김씨는 북한에 대해서는 3대 세습을 비판하면서 북한의 민주화가 시급하다고 주장하지만 중국에 대해서는 상당히 우호적인 사람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의 개혁개방에 대해서도 상당히 높게 평가하면서 북한도 중국처럼 개혁개방에 나서야 하다는 점을 여러 차례 지적했다. 김문수 경기지사가 랴오닝성장에게 김씨의 영사접견을 허용해 달라며 편지를 보냈는데 그 편지에 "김영환은 제가 다녔던 서울대학교 후배로서 평소 친형제처럼 지내는 사람입니다. 중국에 대한 애정도 깊은 사람입니다. 중국에 대한 오해를 하고 있는 한국 사람들을 계몽하기 위해 많은 글을 쓰기도 했습니다"라는 대목이 나온다.

실제로 지난해 김정일 사후 김영환씨가 쓴 ''포스트 김정일''이라는 책에도 중국의 개혁개방에 대해서는 높게 평가하고 있다.

따라서 중국이 김씨를 한국의 국가보안법과 같은 국가안전위해죄로 처벌할 이유는 없다는 것이 김씨 석방대책위원회나 김씨를 아는 사람들의 분석이다.

따라서 김씨에 대해 국가안전위해죄가 적용된 것은 북한의 요청에 의한 것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김영환 석방대책위원회 최홍재 대변인은 "김씨에게 국가안전위해혐의가 적용됐다는 것이 북한 보위부가 개입했다는 반증"이라며 "김씨가 신의주에 가까운 단둥에 구금돼 있다는 사실도 이를 뒷받침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탈북자 문제에 대해서는 중국공안이 나서는데 이번에는 중국 국가안전부가 나섰다는 것도 북한과의 연계가능성을 높게 하는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 김영환씨가 북한체제전복 운동을 했다는 얘기냐?

= 그렇게 보는 시각이 있다.

단순히 탈북자들을 돕거나 아니면 북한 인권개선을 위해 노력하는 정도는 넘어서 북한의 민주화 운동에 대해 높은 관심을 보여 왔다.

김씨가 쓴 ''포스트 김정일''이라는 책에도 북한의 민주화 필요성에 대해 강조를 하고 있다.

책의 내용 중 일부를 인용하면 "북한의 급변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 만큼 우리는 이에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그리고 그 이전에 근대민주주의 원리에도 맞지 않고 공산주의 원리에도 맞지 않은 세계적으로 창피한 3대 세습에 대해 원칙적이고 준엄한 비판의 목소리를 지속적으로 내야 한다"

"3대 세습과 잔인한 독재와 인권유린을 가차 없이 비판하고 북한 주민에게 북한의 진실과 외부 소식을 알리며 북한 주민의 자발적인 민주화운동을 지원해야 한다. 김정일이 죽었다고 우리의 이러한 임무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몇 배 더 중요한 과제로 우리 앞에 던져져 있는 것이다."

중국의 대북 소식통도 "김영환씨 등이 중국 공안에 구금된 것은 중국에서 대북관련 모종의 공작을 하려다 사전에 들통 난 것"이라며 "김씨 등이 탈북자들을 북한으로 돌려보내 주요 서류를 빼내오거나, 유인물 살포 등의 공작을 벌여왔다"고 전했다.

김씨 등의 활동 목적이 북한체제를 붕괴시켜서 민주화하려는 데 있다는 얘기다.

▶ 김영환씨의 구체적인 활동내용이 알려지지 않은 거냐?

= 김씨가 2천년대 초반부터 중국을 자주 방문했다는 것 그리고 북한과 관련해 탈북자를 돕는 그 이상의 활동을 했다는 사실은 알려져 있지만 구체적인 활동에 대해서는 파악이 되지 않고 있다.

정부관계자도 "김영환씨가 자신의 활동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려주지 않았다"며 "정부로서는 이들의 행적에 대해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특히 김씨와 함께 구금된 3명은 아예 영사 접견권 조차 포기한 상태인데다 변호사 선임도 못하고 있다.

중국 측이 통보한 ''국가안전위해죄''라는 죄명 이외에는 알려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새누리당 당선자인 하태경씨는 밀입북해 김일성과 두 차례나 만난 전력이 있는 경력의 소유자인 김영환씨는 북한의 요주의 대상인 만큼 북한의 요청으로 체포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구체적인 활동내용이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북한의 민주화 필요성에 대한 입장으로 미루어 그와 관련된 일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김씨는 ''포스트 김정일''이라는 책에서 "북한을 민주화시키는 것이 시급한 일이지 통일이 시급한 것은 아니다. 북한 민주화는 빠를수록 좋지만 통일은 좀 더 시간적 여유를 갖고 상황을 면밀히 관찰하면서 천천히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 중국에 구금된 김영환씨 등이 정부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거냐?

= 사실 여러 가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건 사실이다.

김영환씨 등에게 국가안전위해죄가 적용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그런 의혹이나 추측이 강하게 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관련이 없다고 단호하게 부인하고 있다.

17일 김성환 외교부 장관과 김영환 석방대책위 관계자들이 만났는데 그 자리에서도 "구금된 4명이 대북공작원이라거나 국정원 직원이라는 추측성 보도가 나오지만 사실이 아니다" "이런 추측성 보도는 중국은 도와주는 결과를 낳게 된다"는 말이 나왔다.

국가정보원 관계자도 "김영환씨나 나머지 3명은 국가정보원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말했다.

김영환 석방대책위 최홍재 대변인도 "김영환씨가 2000년 초부터 북한의 민주화를 위한 활동을 했다며 당시 분위기로 국정원과 연계될 수 없는 일"이라며 "국정원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걸로 안다"라고 설명했다.

▶ 김영환씨는 한 때 ''주사파''의 대부로 불리지 않았나? 북한민주화 운동에 나서게 된 계기가 뭐냐?

= 김영환씨가 유명하게 된 것은 ''강철서신''이라는 책을 통해 운동권내에 ''품성론''을 확산시킨 것이다.

시대정신 발행인인 한기홍씨는 1999년 ''김영환을 위한 변명''이라는 특별기고문에서 "(노동운동에 헌신하던) 어느 날 우연히 손에 쥐게 된 ''''간첩 박헌영으로부터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라는 제하의 비밀 팸플릿은 그 제목의 섬뜩함과는 다르게 운동가는 이론능력보다 품성 등 인간 됨됨이가 더욱 중요하다는 주장을 담고 있었고, 그 문투도 마르크스나 레닌 등 서구 혁명운동가들의 글투에 나오는 비아냥거림이나 서툰 외국어 번역으로 인한 난삽함과는 거리가 있는 어른스러운 것이었다. 아마 이것이 얼마 뒤 운동권의 다수를 이른바 주사파로 바꾼 요인 중의 하나였을 것이다. 김영환씨가 작성한 ''''강철서신'''' 시리즈는 이렇게 시작되었고 이후에도 몇 차례에 걸쳐 운동권에 널리 배포되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김영환씨는 김영환씨는 1999년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 사건으로 국가정보원과 검찰의 수사를 받던 중 사상전향서 성격의 반성문을 썼다.

김씨는 이 반성문에서 "1980년대 중반부터 주체사상을 공부하기 시작했고 ''강철서신'' 등의 글을 통해 주체사상 전파에 노력하였다"며 "학생운동으로 2년여간 복역한 뒤 89년 2월 주사파 조직인 ''반제청년동맹''에 가입했고 89년 7월 남파 공작원에게 포섭돼 활동했고 91년 밀입북해서 김일성과 두 차례 만나고 돌아와 북과 연계를 가지고 활동했다"고 밝혔다.

김씨는 "밀입북했을 때 북한의 경제실상이 예상보가 훨씬 열악했고 김일성의 사고가 30~40년 전의 상태에서 박제화되어 조금도 변화발전하지 않은 듯 해 자신을 실망시켰으며, 92년 넘어온 강철환, 안혁 등 탈북자들의 증언이 북한 사회의 비참한 실상을 깨우쳐주었다"며 "탈북자들의 처절한 증언으로 94~95년경에는 북한 사회체제에 대한 비판적인 인식을 굳히게 되었고 96년 이한영의 증언이 나오면서 북한 김일성 김정일 정권이 부도덕한 정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는 것이다.

김씨는 그래서 황장엽 비서의 망명 이후 "북한 김정일 정권은 남북한 민중 모두에게 적이며 우리 민족 제1의 과제가 북한 김정일 정권을 타도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이에 동참할 것을 호소하면서 민혁당 해산 결정을 했다"면서 "앞으로 기회가 주어진다면 북한의 비참한 인권 실상을 국내외에 널리 알려, 김정일 체제를 무너뜨리고 북한을 민주화시키기위해 모든 힘을 바치고 싶다"고 밝히고 있다.

김씨를 아는 사람들도 "김영환씨가 밀입북해 북한 실상을 본 뒤부터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고 말하고 있다.

▶ 김씨는 어떻게 되는 거냐? 조만간 석방이 가능하냐?

= 외교부는 김씨 등 4명의 탈북 인권운동가 석방에 외교력을 모으고 있다고 밝혔다.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조속한 석방을 위해서 최선을 현재 다하고 있고, 또 중국 측과도 계속 해서 협의를 진행 중에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석방이 쉽게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국가안전위해죄의 최고 형량이 사형 또는 징역 10년 이상의 징역인 중형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이 김씨 일행을 국가안전위해죄로 체포한 이상, 이들의 신병 처리 문제는 장기화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외교·정보 당국은 보고 있다.

중국 형법상 피의자의 경우 2개월을 구금할 수 있지만 사안이 위중하다고 판단될 경우, 구금기간을 3개월 더 연장할 수 있고, 또 정식 재판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큰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탈북자들의 탈북을 돕는 한국인에 대해서는 ''타인 밀출입국 방조죄''라는 비교적 가벼운 죄목을 적용해 추방하는 것이 관례였지만 이번에는 무거운 ''국가안전위해죄''가 적용된 만큼 쉽게 석방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러나 올해로 20주년을 맞는 한·중 관계를 고려할 경우 ''유죄 선고 후 추방''의 형식으로 김씨 등을 돌려보낼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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