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하르방
바람도, 여자도 많은 제주에는 돌도 참 많다. 이 때문일까? 돌하르방도 어느덧 제주의 명물이 됐다.
그러나 투박한 돌을 가다듬는 손길이 없었다면 돌하르방이 언강생심 명물이 될 수 있었을까? 그저 그런 돌에 머물며 제주를 삼다도라 불리는 것에만 만족했을 것이다.
제주시 한림읍 금능리에 있는 금능석물원. 55년을 돌하르방과 함께 한 석공예 명인 장공익(82) 옹의 일터다.
"고마워 이렇게 직접 찾아와서 이런 얘기 할 수 있게 해 줘서..."
왜소한 체격의 장 옹이 꺼낸 첫 마디다. 외롭고 고된 석공예 작업을 함축한 말로 들렸다.
깊게 패인 주름과 환하게 웃는 그의 얼굴에선 돌하르방의 역사가 보였다. ''제주의 1세기''라는 표현이 더 적절할 듯 싶다.
"13살 때 학교 옆에 무신 돌이 막 모여이신거라. 어느 날은 심심해부난 그 돌 주웡 놀아신디, 너무 잘 깨졍 신기할 정도연. 나중엔 칼 가져당 쓱 하니 썰어보난 썰리기까지 해서 그걸로 갖고 놀았주게"
돌에 관심을 갖게 된 13살 때 이야기로, 당시 돌이 너무 잘 깨져서 신기했고 칼로도 절단해 봤다는 말이다.
제주어를 그대로 간직한 그의 말이 정겹다. 석공예를 위한 숙명은 이때부터 시작됐으리라.
그러나 성인으로서의 출발은 순탄치 않았다.
스무 살에 입대해 5년의 해병대 생활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남은 건 어머니의 죽음과 빚뿐이었다.
먹고 살기 위해 돌로 해녀상과 재떨이 등을 만들어 팔았다. 하지만 다른 지방의 모방품이 그의 덜미를 잡았다.
모방이 불가능한 것을 찾다가 우연히 속돌로 돌하르방을 만들었는데 요즘 말로 대박을 쳤다. 5~60여 명의 제자가 그를 찾아오기도 했다.
"속돌도 조금 지나니까, 다른 사람들이 모방을 하더라고. 그래서 현무암으로 돌하르방을 만들기 시작했지. 어느 나라에서도 현무암으로 조각을 만들진 않으니까..."
단단한 현무암은 속돌로 만드는 돌하르방보다 시간이 더 소요됐고 그만큼 공도 더 들여야했다.
"현무암은 질긴 돌이지. 때문에 더 오래 매달려서 만들어야 돼. 그런다고 더 잘 만들 수는 없는 거지. 많이 만들 수도 없고. 그게 제주의 돌하르방이야. 사람들은 그 노력을 잘 몰라"
27살부터 장공익 옹은 이처럼 돌의 차가움을 보듬어 내며 돌하르방에 생명을 불어 넣고 있다.
돌하르방 2
돌하르방과 함께 한 55년. 그의 작품들은 독창성을 인정받아 세계 곳곳에 널리 퍼져 있다.
"지금 책자를 하나 만들고 있거든. 거기에 내가 만든 돌하르방이 어디로 갔는지 다 적혀 있어. 60개 나라 이상의 귀빈들한테 선물로 전해졌더라고. 캐나다에도 있고 미국에도 있고 중국에도 있고 일본에도 있고...."
돌하르방에 대한 그의 사랑은 끝없는 고민으로 이어진다.
"옛날엔 돌하르방의 인기가 좋아서 잘 팔렸는데 이제는 찾는 사람이 별로 없어. 예술성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거든. 고운 것만 찾고. 그래서 돌하르방을 변화시켰지. 예술성과 현대성을 감안해 만들고 있어. 그 중간으로 말이지"
장 옹에게는 특별히 기억에 남는 돌하르방은 없다. 모든 돌하르방에 애정을 쏟기 때문이란다.
금능석물원에는 그의 작품 1,000여 개가 있다. 같은 모양은 없다. 모두가 각각 다른 개성을 뽐내고 있다.
지금은 두 아들이 그의 후계자 수업을 받고 있다.
"두 아들 모두 돌에 매달리니 걱정이 되지. 수요도 적어지는데 어떻게 살아갈지... 나는 오로지 현무암으로만 만들어. 내가 제주돌을 버리면 제자들도 따라 할까봐 그런 생각은 안가져"
''제주의 돌을 지킨다''는 그의 말, ''제주의 혼을 돌에 담아낸다''는 뜻이리라.
앞으로의 계획도 제주의 문화를 돌로 재현하는 것이다.
"사람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이제는 제주 문화를 돌로 재현하려고해. 돌하르방은 두 아들놈이 잘 만드니까...허허..1970년대 새마을 운동이 일어나면서 육지와 제주도의 생활권이 많이 비슷해졌지. 내가 어렸을 때 보던 생활용구나 농기구, 토기류 같은 것이 다 없어졌거든"
돌옆에 앉으면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해진다는 82세의 장공익 옹.
우리가 그냥 보고 지나치는 돌들이 그의 손을 거치면 제주의 명물인 돌하르방이 된다. 그에겐 모든 것이 될 수 밖에 없는 돌하르방에서 그의 사랑과 열정을 엿본다.
마지막 헤어지기 전 잡은 그의 작은 손에서 검은돌의 파편이 부스럭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