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떠냐구요? 앞이 깜깜합니다. 벼랑 끝에 매달려 있는 심정입니다"내년 전망을 묻는 질문에 A중견건설사 간부는 땅이 꺼져라 한숨만 내쉬었다.
10대 건설사 등 대형건설업체라고 해도 예외는 아니다.
B건설사 간부는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지만 국내사업은 회복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면서 "IMF 외환위기 당시보다 체감되는 어려움은 올해가 더 심하다"고 토로했다.
◈ "IMF 때보다 체감은 더 어렵다" 대한건설협회에 따르면 올해 국내 건설수주액은 지난해와 비슷한 103조 원 수준으로 예상됐다. 2007년보다 19.3%나 감소했다.
건설업 성장률은 올해 3분기까지 전년동기대비 6.9%가 감소해 유일하게 뒷걸음질쳤고 국가경제성장 기여도도 유일하게 마이너스로 성장을 저해하는 분야로 전락했다.
적자업체 비율도 올 상반기에 26%로 1년 만에 9.3%p나 급증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최근 유럽 재정위기 등에 따른 부동산시장의 장기 침체가 이어지고 2009년 4대강 사업 등 재정 조기집행 이후 SOC투자 축소로 공공 발주 물량이 크게 감소한 것이 원인이다.
여기에 부동산 호황시절 급증했던 부동산 PF(프로젝트 파이낸싱)대출 문제가 터지며 저축은행 부도사태가 닥치면서 지급보증을 섰던 건설사들의 목줄을 죄었다.
◈ 100대 업체 4곳 중 1곳 무너져이에 따라 최근 대림산업이 모기업인 고려개발을 비롯해 시공능력 3, 40위권 상위업체들은 줄줄이 쓰러졌다.
올해만 12개 업체가 워크아웃이나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100대 업체 중 4분의 1인 총 25개 업체가 무너졌고 건설업계 연쇄도산의 위기감은 더욱 확산되고 있다.
또한, 건설업계 경영상황의 선행지표 격인 설계 및 엔지니어링 업체들도 경영난을 견디다 못해 인원감축 등 본격적인 구조조정에 들어가면서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대한건설협회 박흥순 SOC주택실장은 "건설업계가 전방위적 압박에 직면해 있다"면서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업체들이 어려움에 봉착할지 예측할 수 없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 출혈경쟁 심화…''울며 겨자먹기'' 저가수주정부의 정책도 한몫했다. 대표적인 것이 최저가낙찰제다.
정부는 지난 2006년 예산절감을 이유로 최저가낙찰제를 기존 1천억 원 이상에서 300억 원 이상 공공공사로 확대했다. 내년부터는 100억 원 이상으로 확대하려다 건설업계의 거센 반발로 2년간 시행을 유보한 상태다.
가장 낮은 가격으로 입찰한 업체에게 공사를 주는 이 제도는 업계의 출혈경쟁을 가져왔다.
공공 발주물량이 줄어 일감을 찾기 어렵게 되자 업체들은 회사를 돌리기 위해 손해를 감수하고라도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저가 수주에 나설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대한건설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최저가낙찰제 대상 공공공사의 평균 낙찰률(예정 가격 대비 낙찰 가격)은 71.78%였다. 예정가격이 100억 원인 공사가 72억 원에 낙찰됐다는 말이다.
조달청 조사 결과 실제 공사비는 평균 73%, 모두 밑지는 장사를 한 셈이다.
하도급업체로 내려가면 상황은 더욱 심각해진다. 저가에 수주한 원청업체 역시 저가에 일감을 주면서 낙찰률은 5, 60%대로 떨어지기 때문이다.
철근콘크리트 골조공사를 하는 C전문건설사 간부는 "100원짜리 공사를 5, 60원에 따는 셈인데 직원들 임금 주고 나면 공사를 해도 남는 게 없다"면서 "회사 문 안 닫으려면 어쩔 수 없고 그나마도 일감이 없어 전문건설업체 태반이 놀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토목공사 전문인 D건설사 관계자도 "간신히 회사운영비를 맞추고 있는데 터널 등에 대한 수년간의 하자보수비를 감안하면 사실상 마이너스"라면서 "게다가 상위 원청업체들도 어렵다보니 현금이 아닌 대신 6개월 이상 되는 어음을 받게 되는데 그나마도 제때 지급받기 어렵다"고 말했다.
◈ 현실 도외시 정책…업체들 범법자 전락 예산절감이란 정부의 지상목표 아래 업체들은 입찰가를 낮추기 위해 시공실적증명서 등을 허위로 제출하면서 최근 조달청으로부터 10대 건설사를 포함한 68개 업체가 입찰제한 징계처분을 받았다.
D대형건설사 간부는 "최저가낙찰제 확대 이후 낙찰가를 낮추기 위해 관행적으로 묵인해오다 올해 6월 제출 의무가 없어진 서류를 놓고 뒤늦게 제재를 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며 불만을 표시했다.
법원은 지난 12일 건설사들의 제재처분 집행정지 신청을 받아들여 입찰제한 조치에 제동을 걸었다.
하도급업체들의 원성은 더 크다. 올들어 정부의 외국인 고용 단속이 강화됐기 때문이다.
정부는 내국인 일자리 확보를 위해 지난 2009년 건설업 취업등록제를 도입해 취업인정 증명서를 받은 외국인만 건설업체가 고용할 수 있도록 했다. 또 등록인원도 7만5천명에서 올해는 5만5천명으로 줄였다.
이에 따라 법무부의 불법체류자 단속과 함께 고용노동부의 불법취업자 단속도 실시되고 있다.
문제는 낮은 임금의 일반 노무직에 쓸 내국인을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E전문건설사 간부는 "임금이 적고 일이 힘들어서 일하려는 사람이 없는데 공사는 해야겠고 어떡하란 말이냐"며 "정부가 업체들을 범법자로 만들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한마디로 정부가 현실과 동떨어진 정책으로 건설업계를 더욱 궁지로 몰아넣고 있다는 지적이다.
F중견건설사 간부는 "이대로라면 그나마 지탱하고 있던 디딤돌도 없어질 것"이라며 "남은 건 추락하는 일 뿐"이라고 암담한 표정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