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과학기술위원회(이하 국과위) 산하 단일법인 통합''으로 가닥을 잡아가던 정부출연연구기관(이하 출연연) 거버넌스(지배구조) 개편 논의가 지식경제부의 반발로 매듭을 짓지 못한 채 시간만 흘려보내고 있다.
김도연 국과위원장은 27일 최근 상황에 대해 "(지난 16일) 회의에서 결론을 내지 못한 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통과와 지식경제부 장관 교체 등이 겹쳐 논의 일정이 다소 늦춰지는 분위기"라며 "그러나 새 지경부 장관의 업무 파악이 끝나는 대로 논의가 계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지난 회의에서 합의가 이뤄졌다면 국회 일정 등을 고려할 때 더 좋았겠지만, 아직 협의에 필요한 시간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정부와 국과위 관계자들에 따르면 지난 16일 김 위원장과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 등 경제관련부처 장관들은 출연연 개편 방향을 논의했다. 9월 26일, 지난달 말에 이어 출연연 거버넌스가 안건으로 논의된 세 번째 장관급 회의다.
기재부는 그동안의 협의 결과로 이 자리에 처음 정부의 단일 출연연 개편안을 마련해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안에 따르면, 27개 출연연(교과부 산하 13개, 지경부 산하 14개) 가운데 20개는 단일 법인(가칭 국가연구개발원)으로 묶여 국과위가 관할한다. 이는 기본적으로 지난해 출연연발전민간위가 도출한 안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성격상 융합 연구의 여지가 적은 기관들은 부처 직할 형태로 두거나 민영화를 거쳐 독립시키기로 했다. 지경부 산하 생산기술원, 국토부 산하 건설기술연구원, 교과부 산하 수리과학연구소와 천문연구원, 농식품부 산하 식품연구원과 김치연구소 등이 이에 해당한다. 안전성평가연구소의 경우 민영화가 추진된다.
그러나 회의에 참석한 최중경 당시 지경부장관은 이 안에 대해 "산업과 연구개발이 떨어져 있으면 곤란하다"는 논리로 출연연 이전에 강한 반대 입장을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일 오후 장관 임기가 끝나게 돼 있던 최 전 장관은 작심한 듯 "장관으로서 마지막 유언"이라는 말까지 서슴지 않았다는 게 회의 참석자들의 전언이다.
회의 내내 최 전 장관이 뜻을 굽히지 않음에 따라, 무난히 통과될 것으로 예상됐던 기재부의 통합안은 결국 다음 회의로 넘겨졌다.
이처럼 지경부의 반발로 계속 출연연 통합이 늦춰지면서, 정부나 출연연 내부에서는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사실 거슬러 올라가면 출연연 통합 논의에서 비롯된 것이 국과위"라며 "실제로 출범한 국과위가 출연연을 묶어 과학기술정책 ''관제탑''으로서 제 역할을 하겠다면, 국회는 몰라도 정부 안에서라도 하나로 힘을 모아줘야하는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교과부 산하 출연연 관계자는 "결론 없는 개편 논의만 몇 년째 이어져 연구 현장의 분위기가 뒤숭숭한 상태"라며 "연구자들도 대체로 통합에 큰 불만이 없는 분위기인 만큼, 빨리 매듭을 지어 줘야한다"고 주장했다.
국과위 등 정부가 출연연 통합을 서두르는 것은 지금처럼 출연연들이 교과부나 지경부 등 각 부처 소속으로 나눠져 있을 경우 국가적 과제를 효율적으로 배분하거나 기관간 융합 연구의 시너지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국과위 관계자는 "한 해 4조원에 이르는 막대한 예산을 사용하는 출연연들이 지금처럼 각 부처에 속한 채 정보나 인력 교류에 나서지 않으면 심각한 유사·중복 연구 문제를 피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세계적 과학기술 조류인 융합 연구도 불가능하다"고 우려했다.
최근 국과위가 정부 연구기관(출연연·정부내연구조직·정부설립기술원 등)의 유사·중복 연구 사례를 조사한 결과, 지난해 현재 태양광·신약개발·로봇분야의 경우 무려 17~23개 기관이 아무런 체계나 상호 협의 없이 독자적으로 비슷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차세대 디스플레이(19개), 차세대 자동차(16개), 풍력에너지(11개) 분야 등의 겹침 현상도 심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