ㄹㄹ
테마가 있는 고품격 뉴스, 세상을 더 크고 여유로운 시선으로 들여다보는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기자수첩 시즌2''에서는 정의롭지 못한 것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담았다. [편집자 주]김현정의>우리 조선업계의 구조조정엔 ''정리해고''라는 방식도 있지만 노사 마찰을 원천적으로 피해 ''직접고용 아닌 간접고용''으로 바꾸는 방식도 있다. 그것이 조선업계의 ''사내 하청 노동자'' 문제이다. 사내 하청 노동자는 8개 대형조선소만 따져 690개 업체 6만8천명에 이른다. 조선업계 상위 10대 기업의 사내 하청 노동자 비율은 2000년 33.2%에서 2009년 55.2%로 늘어났다. 2006년부터 일터에서 사내 하청직원이 본 원청업체 직원보다 많아졌다.
◇ 잘리고 깎이는 건 하청 노동자의 일상한국은행 ''''2009 산업별 취업계수 지표''''를 살펴보자. 매출액 10억 원 당 일자리를 몇 개나 만드는가 수치로 보여주는 계수이다. 조선산업 고용계수는 평균이 2.4이다. 그러나 상위 6대 조선소는 고용계수가 0.5~1.1 이다. 중공업체들이 돈 많이 벌수록 사람을 안 쓰고 사내 하청을 통해 일을 혹독하게 시키고 있다는 계산이다. 잠시 중국이 뒤쫓기는 했지만 10년간 신규 선박 수주량은 2배로 늘었고 세계 조선소 1~6위까지가 한국 조선소들이다. 결론은 노동자의 피와 땀으로 세계 막강의 조선업을 일구었다는 것이다.
경기가 나빠지고 불황이 다가오면 언제나 하청업체 노동자부터 정리해고 당한다. 한진중공업 정규직 정리해고 이전에 4년 간 영도, 울산, 다대포 조선소에서 3천 명에 이르는 사내 하청 노동자들이 정리해고를 당했다. 간신히 살아남은 사람은 곧바로 시급이나 일당이 10~20% 깎였다. 조선업계 하청노동자는 통상임금에서 정규직의 60~70% 정도를 받는다. 상여금은 정규직의 30~60% 정도이다. 여기에 성과급 차이, 일시금 차이, 각종 기업복지 차별을 합치면 정규직과 하청노동자의 격차는 더욱 벌어진다. (조선하청노동자연대 자료 참고)
2009년 불황 때 조선소 원청기업들은 도급비를 최대 30% 까지 깎아내렸다. 한진중공업은 아예 최저낙찰제를 도입한 것으로 유명하다. 도급계약 해지라는 간단한 조치만으로 하청업체와의 관계를 끊어버릴 수 있는 원청업체에게 항의는 꿈도 못 꾼다. 소형 조선소에서 임금 체불은 일상 있는 일이다. 지난 7월 말 공정거래위원회는 STX 조선에게 부당하게 깎아내린 하도급 대금 2억6천만 원을 하청업체에게 지급하라고 명령하고 과징금 5천만원을 부과했다. 불공정으로 폐업한 다른 하청업체는 공정거래위원회에 부당하게 깎인 하도급대금 지급을 제소해 놓고 있다.
◇ 물량팀 - 이른바 일당제 하청하청은 그냥 하청만 있는 게 아니다. 하청에 하청으로 몇 단계를 거치기도 한다. 하청 업체에는 ''''물량팀''''이 있다. 특정한 일감을 주고 일 시킨 뒤 일감을 끝내면 그 즉시 해고되는 비정규직 그룹이다. 이것이 고용노동부에 어떤 통계로 잡히는 건지는 모르지만 기간을 정해 일하는 아르바이트만도 못한 고용형태이다. 보름 한 달 일하다 해고되고 두어 달 쉬다 다시 한 달 일하고.
이것을 뭐라 부를 용어가 없으니 물량팀이라 한다. 팀으로 움직이니 결국 하청에 하청, 다단계 하도급 형태이다. 하청이 일당제 하청으로 바뀐 셈이다. 이 물량팀은 소형 조선소에서는 오래전부터 있어 왔다. 원청기업 물량 받아 겨우 꾸려가는 입장이니 그랬던 것. 그러나 2009년 조선업계가 불황이 시작되면서 물량팀은 대형 조선소로 번져 있는 상태다.
ㄹㄹ
◇ 하청은 생계와 동시에 목숨도 위협원청 조선사가 작업을 무리하게 요구해도 거부할 수 없고 노동시간이 곧 돈이니 힘들고 위험해도 일을 강행하다보면 산업재해가 늘어나는 건 당연하다. 하청 주면서 도급금액 깎고, 그 하청은 다단계로 내려가 몫은 자꾸 줄어들고, 안전보건조치 이행 무시하고, 수주증가로 공기는 단축돼 서둘러야 하고, 노동 강도는 세지니 산재 증가는 당연하다.
필리핀 한진 수빅조선소에서 4년간 하청 노동자 32명이 사망해 나라 망신 시켰다고 했지만 국내에서도 사망사고가 빈발하고 있다. 대우조선의 경우 올해 7명 사망, STX조선은 지난 1년 동안 6명 사망으로 나타나고 있다. 조선업 산재율이 타 산업에 비해 2배가 높다.
물론 구조조정은 경영진 머릿속에서 시작되지 않고 시장에서 시작된다. 다만 그럴 때를 대비해 기업경영자 그룹이 걱정을 하고 정부 관련당국에 건의를 하면 정부가 나서 지원 대책을 마련해 노사가 함께 살아갈 방책을 마련해야 한다. 제대로 된 상생 관계라면 원청업체의 노사는 어쩔 수 없는 구조조정에 나서더라도 구조조정의 속도와 강도를 조절해 하청업체와 하청업체 노동자를 최소한이나마 배려하고 보호해야 한다.
약한 사람이 먹이 사슬의 맨 아래에서 불공정하게 불이익을 당하는 사회라면, 그리고 고치지도 않는다면 자유도 민주도 그 이름에 가져다 붙일 수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