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인. 외모는 영락없는 한국인이지만 나고 자란 곳이 러시아를 비롯한 우크라이나, 우즈베키스탄 등 독립국가연합(구소련)인 사람들을 우리는 흔히 이렇게 부른다.
국적이라고도 말할 수 없는 ''고려인''이라는 말을 숙명처럼 떠안은 우즈베키스탄의 고려인 1세대 할머니, 할아버지 백여 명이 반쪽의 고향 한국을 생애 처음으로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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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은 한국인, 반은 우즈베키스탄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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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세르게이 할아버지(74세)가 사는 곳은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쉬켄트. 서울에서 타쉬켄트까지 비행기로 불과 예닐곱 시간간밖에 걸리지 않는 거리지만 그가 서울에 발을 디딜 수 있기까지 걸린 시간은 무려 70여 년이다.
16일 서울 여의도 63빌딩 수족관에서 만난 김 할아버지의 발걸음은 적잖이 무거워 보였다.
일흔을 넘긴 나이 탓일까. 아니면 태어난지 6개월만인 1937년 9월 스탈린의 강제 이주 정책으로 부모님과 연해주에서 우즈베키스탄까지 넘어온 뒤 억척스레 콜호스(집단농장) 일을 하고 26년간의 군인 생활을 한 삶의 무게 탓일까.
그러나 양 손에 하나씩 두 개의 지팡이를 짚지 않고서는 한 걸음 떼기도 쉽지 않은 김 할아버지의 얼굴에는 시종일관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김 할아버지는 "우리 부모님이 한국에 꼭 와보고 싶다고 하셨는데 와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셨다"며 "나라도 이렇게 한국에 올 수 있어서 정말 기쁘다"고 서투른 한국말로 말했다.
콜호스에 딸린 고려인 학교에서 한국말을 배웠다는 그는 "한국은 어디를 가나 깨끗하고 도로도 넓다"며 "한국 사람들이 대단하다"고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지난 주말 경복궁과 민속촌 등을 둘러본 데 이어 이날 오전 서울 강남 투어까지 마치고 온 김 할아버지는 63빌딩 수족관에 들어서자 그곳을 찾은 유치원 아이들마냥 신기하다는 눈으로 물고기를 관찰했다. "우즈베키스탄에는 바다가 인접해있지 않아 물고기 구경하기가 쉽지 않다"고 한 인솔자가 귀띔했다.
63빌딩 전망대로 향하는 엘리베이터 안에서는 "우즈베키스탄에는 이렇게 높은 빌딩이 없다"며 "한국의 발전상을 TV로만 봤는데 정말 대단하다"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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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명의 고려인 할머니, 할아버지 가운데 국내에 꽤 이름이 알려진 박 베라(74세) 할머니도 눈에 띠었다. 박 할머니의 한국 방문은 이번이 벌써 다섯 번째다.
그는 학교 선생님에서 고아원 원장을 거쳐 우즈베키스탄 히바시의 상원의원을 지냈다. 때문에 우즈베키스탄 고려인 가운데 가장 성공한 인물로 손꼽히고 있다.
박 할머니는 "그동안 세미나, 컨퍼런스 때문에 한국에 오긴 했었지만 이렇게 서울을 관광한 것은 처음"이라며 들뜬 모습이었다.
특히 "한국의 놀라운 경제성장과 문화유산은 물론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꽃들과 깨끗한 거리에 감동받았다"며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모습"이라고 강조했다.
박 할머니는 "나는 반은 한국인, 반은 우즈베키스탄인"이라며 "한국을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줘서 고맙다"고 연신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이런 가운데 일부 할머니, 할아버지는 링거를 맞거나 휠체어에 몸은 의지하면서까지 고국의 모습을 단 한 장면도 놓치지 않고자 애를 쓰는 모습을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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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즈벡 진출 한국기업 후원으로 초청 성사이번 우즈베키스탄 고려인 1세대 초청 행사는 주우즈벡대사관 주관으로 이뤄졌다. 정부가 나서서 우즈베키스탄 고려인 1세대의 한국 방문을 지원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특히 우즈베키스탄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의 후원에 힘입은 바 크다.
실제 박 베라 할머니는 "스탈린이 죽고 나서야 고려인들은 여권을 만들어 밖에 나갈 수 있게 됐지만, 여권이 있어도 한국에 한 번 오기 위해서는 너무나 많은 돈이 들어 엄두를 내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우즈베키스탄의 1인당 GDP는 2천 달러 미만이다.
현재 우즈베키스탄에 거주하는 17만 명 가량. 정부는 이 가운데 1937년 이전 태생의 고려인을 중심으로 이번 행사를 기획해 121명만이 꿈에 그리던 고국을 찾을 수 있었다.
박 할머니는 "초청 프로그램이 확대돼 다른 고려인 친구들도 한국에 올 수 있으면 좋겠다"며 "한국과 우즈베키스탄이 더욱 긴밀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