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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노동자 보살펴온 일본인, "한국 가족 찾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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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09-21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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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나가 지즈꼬, 일제시대 일본으로 건너간 고 홍을용씨 납골당 성묘 해와

1961년 이와나가 가족과 함께 운동회에 참가한 홍을용씨.

 


일제시대 일본으로 건너간 한국인 노동자를 60년 동안 보살펴온 일본인이 한국에 있는 가족을 애타게 찾고 있다.

일본 후쿠오카현 마에바라시(前原市)에 사는 이와나가 지즈꼬 (岩永 千鶴子,73)가 그 주인공.

지즈꼬씨는 1979년부터 26년 동안 해마다 한국인 고 홍을용씨(1905년생)의 납골당을 찾아 정성껏 오이간(성묘)을 해 오고 있다.

지즈꼬씨와 홍씨의 첫 만남은 해방무렵인 1945년.

한국인 노동자 고 홍을용씨를 60년간 보살펴온 일본인, 한국 있는 가족 애타게 찾아

모래를 채취해 생계를 이어온 홍씨는 지즈꼬씨에게 모래를 팔기 시작했고 눈에 띄는 성실함과 정직함은 홍씨의 모래를 사는 일본인들의 마음을 움직일 정도였다.

하지만 1956년부터 일본 정부가 사설 모래 채취를 법으로 금지하자 홍씨는 살 길이 막막해졌고 이를 지켜본 지즈꼬씨는 홍씨에게 자신의 집에서 함께 살자고 제안했다.

1956년은 홍씨가 지즈꼬씨의 집안 일을 돌보기 시작한 해이기도 하지만 지즈꼬씨의 아들 이와나가(岩永)씨가 태어난 해이기도 하다.

이와나가씨(51)는 ''''어릴때 기억이지만 홍씨는 우리 가족은 물론 일꾼들까지 정말 성실하게 돌봤다며 어른이 되기까지 홍씨가 자신의 할아버지인 줄로만 알았다''''고 회고했다.

또 ''''가족들과 함께 여행을 갈 때면 아리랑을 자주 불렀고 한국에서 온 편지를 읽어주면 눈물을 흘리며 한국이 어디쯤 있느냐며 물어보곤 했다"고 말했다.

이와나가씨는 ''''장난감이나 과자를 사고 싶을 때 아버지, 어머니 대신 늘 할아버지(홍씨)에게 어리광을 부렸고 할아버지는 어김없이 내 손을 잡고 상점으로 가 필요한 것을 사 주곤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홍씨는 1968년 무렵 일을 하던 도중 갑자기 쓰러졌고 마에바라시 原田병원에서 뇌출혈 판정을 받은 이후 7년 동안 이와나가씨 가족의 헌신적인 병간호를 받았다.

이와나가씨는 ''''가족들이 할아버지의 머리도 깎아주고 목욕도 시켜주는 모습을 보고 일본인들과 의사들이 ''''한국사람인데 뭘 그러느냐''''는 핀잔을 자주 했지만 ''''할아버지는 한국인일지 몰라도 우리 가족이기 때문에 당연하다''''고 말했다''''고 회고했다.

홍씨가 70세가 되던 무렵 지즈꼬씨와 이와나기씨가 지켜보는 가운데 세상을 떠나자 이와나가씨 가족은 후쿠오카겐 시마마찌 오와자에 있는 납골당에 홍씨의 유해를 안치했고 지금까지 일년에 두 번씩 어김없이 납골당을 찾고 있다.

일본에 홍씨의 유해 안치…계속 돌보기 어려울듯해 한국에 송환하기로 눈물 호소

이같은 사연을 전해들은 한국인 김정수 선교사에게 지즈꼬씨는 ''''내 나이가 벌써 73세를 넘었는데 홍씨에 대한 기억은 아들 이와나가까지만 남았고 손자들이 홍씨의 납골당을 돌보기는 힘들 것 같아서 수년째 한국에 있는 홍씨의 가족을 애타게 찾고 있다''''며 한국에 있는 가족들을 찾아달라고 눈물로 호소했다.

김 선교사를 통해 홍씨와 지즈꼬씨의 애타는 소식을 들은 후쿠오카현 마에바라시(前原市) 카와노 마사오(河野正雄)전 시장(시장 선거 재출마)은 ''''이와나가씨 집을 방문해 홍씨의 얘기 들을 때 모든 사람들이 눈물을 흘렸고 우리 시에 이같이 아름다운 일이 있었다는 사실에 감동했다''''며 ''''자신이 시장에 재선되면 10월 20일 유해를 한국에 송환하기로 확정된 만큼 홍씨 유해와 함께 한국에 올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 평생 고향을 그리워했지만 끝내 현해탄을 건너지 못한 고 홍을용씨의 유해만이라도 고향땅을 밟아볼 수 있게 해달라며 호소하는 일본인 가족들의 소식이 전해지면서 ''''한일 마음으로 연결하는 모임(회장 양희중)''''등 각 단체와 일본 정치인들이 나서 홍씨의 한국 가족 찾기에 나서고 있다.

이들은 또한 고 홍을용씨 유해송환 문제에 대해서도 일본 지자체와 정부의 도움을 약속받은 데 이어 한국정부의 도움을 요청할 계획이다.

홍을용씨 가족을 찾습니다.
CBS 취재결과 홍씨는 1939년 가난에 허덕이다 부인과 4명의 딸,그리고 수 명의 한국인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간 것으로 확인됐다.

일본에서 홍씨는 일거리를 좀처럼 찾지 못하자 법으로 금지된 소 도축을 하며 생계를 이어갔지만 밀도살 혐의로 일본 경찰에 체포돼 구금됐다.

이 과정에서 홍씨의 가족과 한국인 동료들은 한국해방을 전후로 귀국 배에 올랐고 이후 홍씨와의 연락이 끊긴 상태다.

홍씨는 일본인들에게 자신의 고향이 바다가 가까운 남해안이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CBS울산방송 장영 기자 tenten10@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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