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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년 전 6월 민주항쟁에서 부산은 전국에서 가장 마지막까지 독재정권에 항거한 민주주의의 성지다.
하지만 월드컵과 나로호 발사 등의 각종 현안에 묻혀, 6월 항쟁의 정신은 갈수록 퇴색해가고 있다.
''탁하고 치니 억하고 죽었다''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으로 터져나온 군사정권에 대한 항거정신은 6월 항쟁을 들불처럼 번지게 했다.
부산에서도 1987년 6월 10일 국민운동본부가 꾸려진 이후, 광복동과 국제시장, 서면 일대에는 학생과 직장인 넥타이 부대로 가득 찼다.
시민들은 메케한 최루탄가스 속에 ''독재 타도, 호헌 철폐''의 절절한 구호를 매일 외쳤다.
특히 부산은 전국적으로 6월 항쟁이 소강 국면에 접어들었을 때 시민 700여명이 중구 대청동 가톨릭 센터에서 엿새 동안 밤낮으로 평화 투쟁을 벌여 다시 투쟁의 불씨를 살렸다.
민주공원 이광원 관장은 "79년 부마 민주항쟁부터 81년 부림사건, 그리고 87년 6월 민주항쟁까지 부산은 우리 역사의 중요한 길목에서 언제나 민주화의 성지였다"면서 "시민들 하나하나가 민주주의를 향한 갈망이 있었고, 독재정권 앞에 자연스럽게 하나로 힘을 모아 표출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지난 2008년 광우병 정국에서 또 한번 시민들의 촛불이 서면로터리를 가득 채우며, 87년 6월항쟁을 재연했다.
하지만 불과 2년이 지난 오늘 6월 항쟁은 지방선거 이후 어수선한 정국 속에 월드컵과 나로호발사 등 각종 현안에 밀려 시민들의 기억 속에 잊혀지고 있다.
대학생 김수정(24) 씨는 "2년 전에 촛불을 들고 서면 로터리에 나갔던 것 같은데 언제, 무엇때문인지 잊어버렸다"면서 "6월 항쟁을 들어본 것 같긴 한데, 중학교 때 교과서에서 배운 내용 말고는 잘 모른다"고 말했다.
철옹성같은 독재정권 앞에서 시민들이 피와 땀으로 맞서 쟁취한 ''민주주의''와 6월 정신을 우리는 너무 쉽게 잊어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