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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사상사는 자연현상에 투영된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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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08-15 0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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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사상사의 거두 박성래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

 


과학이라고 하면 딱딱하고 어렵게만 생각하기 쉬운데요. 오늘 시사자키가 만난 사람에서는 우리나라 전통의 과학 사상을 탐구하고, 그 가치를 대중에게 널리 알리고 있는 과학 사학자 외국어 대학교 박성래 명예교수를 모시고 재미있는 과학사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 과학사상사의 거두 박성래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


◎ 사회/김어준>
제가 《한국 과학 사상사》라는 책을 처음 봤을 때는 한국 과학 사상의 역사, 그러니까 과학사상이 어떻게 바뀌어 왔는가 하는...


◑ 박성래 명예교수>
우리나라 과학사 하는 분들이 아직 그 분야까지 깊이 들어가지 못한 상황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가 연구한 것을 정리해서 과학 사상사라고 이름을 붙였는데, 사실은 자연관의 역사죠, 즉 우리나라 사람들이 자연을 어떻게 봤느냐, 하는 역사입니다.


◎ 사회/김어준>
제가 다큐멘터리 채널을 좋아하는데, 그런 채널을 보다 보면 서양의 과학기록들이 역사 문헌에 어떻게 기록돼 있는지에 관한 이야기가 자주 등장하거든요. 그게 과학적이냐, 과학적이지 않느냐를 떠나 오래전부터 자연현상을 기록으로 남겨두고 연구하는 것을 볼 때, 우리나라도 지진에 관한 것이라든지 하는 자연현상이 기록돼 있었을 것 같은데요.


◑ 박성래 명예교수>
사실, 기록에 관한 한 한국 기록이 제일 좋습니다. 물론 고대로 가면 중국기록이 우리보다는 낫죠. 그러나 조금 뒤로 가면 중국보다 우리 기록이 나아요.


◎ 사회/김어준>
어떤 면에서 그런가요?


◑ 박성래 명예교수>
아주 체계적으로 모든 기록을 열심히 남긴 셈이거든요. 자연 현상기록이라는 것이 일식, 월식부터 가뭄, 홍수, 행성이라든가, 별개 다 있죠. 그다음에 세쌍둥이 네쌍둥이 이것도 자연현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삼국사기, 고려시대까지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역사책인데, 조선왕조실록부터는 훨씬 더 상세하거든요. 1392년 이성계가 조선 왕조를 시작하면서부터 왕들이 죽으면 그때그때 실록을 만들었으니까, 그 실록을 만들면서 그 속에 자연현상 기록도 열심히 기록했거든요. 그런데 제가 연구할 때까지는 아무도 그 의미를 생각해 보지 않았죠.


◎ 사회/김어준>
그렇군요. 저는 막연하게 우리나라는 기록 문화에 약하고, 일본은 기록을 잘한다는, 이런 식의 얘기를 오랫동안 들어왔거든요.


◑ 박성래 명예교수>
꼭 그런 것은 아니고, 우리 기록이 조선 시대까지는 제법 좋습니다. 그런데 일본강점기부터 기록이 안 좋아진 이유는 식민 사관의 문제라기보다 식민지 속에서 지식인들이 기록 남기기를 두려워 한 점이 많이 있었겠죠. 그렇기 때문에 일본강점기 동안 기록이 아주 급전직하로 떨어집니다.


그런 상태로 해방된 후 또 6·25를 맞아 한국 전쟁이 있었고, 지식인들이 글을 썼었어야 기록이 남는 건데, 그런 글을 자리 잡고 앉아 남기는 일이 드물었죠. 우리는 그 간에 많은 사정이 있어서 없었고, 또 없어졌고, 그래서 조선시대 기록까지도 숱하게 없어졌죠,


예를 들면 제가 어렸을 때만 하더라도 옛날 책을 다 팔아서 엿 사먹거든요. 그게 지금 생각해 보면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었을 책일 가능성이 크죠. 그래서 다 없어졌다고 보는 것이 옳죠. 사실 기록 문화가 조선시대까지는 훌륭합니다.


◎ 사회/김어준>
그러고 보니 제가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데, 어렸을 때 태권V라는 만화가 인기 있었어요. 그런데 크면서 의아했던 게 태권V를 왜 다시 방송해 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어서 찾아봤더니, 태권V 필름에 은이 도포돼 있는데, 그것을 전부 금은방에 팔아버리거나 해서 다 없어져버렸다고 하더라고요.


◑ 박성래 명예교수>
그런 현상은 일본강점기부터 생긴 나쁜 버릇입니다. 물론 우리가 살아가는데 바빠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책 보관을 잘못하고, 나쁜 현상 중의 하나가 이사를 많이 하죠. 일본 학자들은 젊었을 때 집을 마련하면 늙어 죽을 때까지 같은 집에서 삽니다.


그러다 보니 결국 자료가 안 남습니다. 왜냐하면, 집을 옮길 때마다 버릴 수밖에 없어요. 저 같은 경우도 은퇴를 하면서 학교에 있는 책은 학교에 버리고 왔습니다. 그런 문제가 있습니다.


◎ 사회/김어준>
그런데 이 책은 어떻게 해서 쓰시게 된건가요?


◑ 박성래 명예교수>
제 전공이 물리학인데 어느 면에서는 제 평생의 대표적인 업적이죠. 왜냐하면, 제가 38년 전에 미국에 유학 갔고, 거기서 서양 과학의 역사를 공부하려고 했습니다. 사실 그때만 하도 한국의 세종 대왕보다 뉴턴이니 아인슈타인 이런 사람들이 크게 활동해서 서양 문명을 발전시켰고 그것이 통해 서양이 세계를 지배하게 됐으니까, 그 과정이나 원인을 공부하고자 미국 유학을 갔죠.


그런데 제 지도교수가 ''''네가 서양 것을 해서 서양 학자들하고 경쟁이 되겠느냐, 차라리 너는 일본 것을 해라'''' 했는데...


◎ 사회/김어준>
그때 당시만 하더라도 우리나라는 존재감도 없었으니까...


◑ 박성래 명예교수>
그렇죠. 그리고 자료가 있어야 공부를 하는 건데, 일본 자료는 제가 있던 캔자스 대학에는 좀 있었고, 제 지도 교수가 일본에서 오래 사시던 분이에요, 그러니까, 자기가 지도도 좀 해 줄 수 있을 것 같으니까, 그리고 60년대는 일본이 선두 국가로 들어서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하다보니 역시 자료가 너무 부족했고, 그래서 제가 포기하고 서양과학사를 석사 논문으로 쓰게 된 것이죠.


◎ 사회/김어준>
서양 과학의 역사를 배운다는 것은 학문적으로 어떤 학문인가요?


◑ 박성래 명예교수>
역사라는 게 왜 중요한지 그것은 보기 나름인데, 지금 일본, 중국과의 관계에서 역사가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역사라는 것이 보기에 따라 굉장히 중요한 민족 공동체의 유산이기 때문에 그 유산을 갈고 닦아서 될 수 있으면 빛나는 것처럼이라도 만들려고 하는 것이 어느 공동체든 갖고 있는 욕구겠죠.


◎ 사회/김어준>
그런데 과학의 역사를 따로 가르치는 것은...


◑ 박성래 명예교수>
과학이라는 것이 19C 말부터 세계적으로 중요하게 인지되기 시작하죠. 왜냐하면, 그 전까지는 과학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죠. 서양 사람들이 자본주의와 맞물려서 장사해서 돈 벌어 일어난 측면이 강하잖아요. 그러나 속 내용을 보면 자본주의가 일어난 바탕에는 과학 기술의 발달이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좀 더 깊이 있게 따져보면 과학기술이 발달한 문명이 전 세계를 지배하는 시대가 20C였단 말이에요. 그리고 과학기술이 지배하는 시대가 앞으로의 시대가 될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역사 속에서 과학 기술이 어떤 역할을 하고, 과학 기술이 앞선 나라가 세계를 주도하게 되는 문제가 있기 때문에 과학 기술의 역사를 알지 않고서는, 우선 미래를 볼 수 없죠.


◎ 사회/김어준>
전문 기술로서의 과학이 아니라, 그 과학이 역사 속에서 어떤 도구로 쓰였고, 역사를 어떻게 바꾸었는지에 대해 공부하는 거군요.


◑ 박성래 명예교수>
그렇죠. 그냥 역사입니다. 그런데 제가 관심 있는 공부한 것은 과학 기술의 역사라는 것이지, 어떤 사람은 정치사 중심으로 역사를 공부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경제를 중심으로 역사 공부를 하기도 하지 않겠습니까, 또 다른 분야로 가면 방송국 같은 데서 활용되는 것은 음악의 역사라든지, 이런 식으로 얘기가 되기 때문에 오히려 과학도 어느 면에서는 더 중요한 인류 문화의 한 부분이기 때문에 그 역사를 공부하겠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우선은 서양 과학사를 석사로 하고, 박사 공부를 하러 다른 대학으로 갔을 때 제 나름대로 한국사를 공부하기 시작했죠. 그러다가 그때 처음으로 삼국사기, 고려사를 읽게 된 것입니다. 그랬더니 일식, 월식 얘기부터 별 이야기가 다 있더라고요.


◎ 사회/김어준>
그러고 보면 톨스토이는 읽으라고 하면서 삼국사기 이런 것은 읽어보라고 하지는...


◑ 박성래 명예교수>
그것은 잘못된 것이죠. 톨스토이는 19C 말에 세계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지 지금 세계를 이해하는 데는 전혀 도움이 안 됩니다. 물론 그 당시 19C 말의 세계를 이해하는 것에는 도움이 되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보면 인류 문명 발전사를 이해하는데 도움은 되지만, 그것이 지금 우리에게 크게 중요하지는 않거든요.


◎ 사회/김어준>
삼국사기 자료는 미국에서 어떻게 구하셨나요?


◑ 박성래 명예교수>
그 정도의 책은 미국 대학 웬만한 곳은 다 있죠. 제가 박사는 하와이 대학으로 갔어요. 왜냐하면, 하와이 대학이 65년쯤일 텐데 당시 포드재단이라고 하는 큰 재단이 있었는데, 한국학을 진흥시키기 위해 미국 5개 대학에 상당히 많은 지원금을 준 기사가 신문에 났더라고요. 그 중의 하나가 하와이 대학이에요. 그래서 제가 생각하기를 ''''돈을 준다면 거기에 가면 내가 유리하지 않을까?''''생각했죠. 왜냐하면, 고학을 했으니까요. 그래서 지원서를 세 군데에 냈는데, 하와이에서 제일 우호적인 편지가 왔고, 하버드 대학에서는 입학은 시켜주겠는데, 돈은 전혀 가망성이 없다는 바람에 하와이 대학으로 가게 됐죠.


◎ 사회/김어준>
삼국사기를 실제로 보면 자연현상에 대한 이야기가...


◑ 박성래 명예교수>
1000개쯤 있어요. 물론 1000년 동안 1000개니까 1년에 하나밖에 안 되는 것이죠.


◎ 사회/김어준>
주목할 만한 사건들을 기록한 건가요?


◑ 박성래 명예교수>
그렇죠. 그 기록의 신빙성을 따지는 것이 역사가들에게 제일 어려운 문제입니다. 여러 가지 이상한 기록이 많거든요. 예를 들면 사람이 갑자기 여우가 됐다는 얘기도 적혀있거든요. 삼국사기는 김부식이 12C 초에 펴낸 것임에도 그런 이야기가 숱합니다.


◎ 사회/김어준>
당시 사관이 듣기에 이것은 사실로 봐도 좋다고 생각하는 내용을...


◑ 박성래 명예교수>
저는 그렇게 봅니다. 그러니까, 옛날 사람들이니까 당시 자연현상을 지금 우리가 보기에는 상당히 미신적인 입장에서 봤다고 봐야죠. 그러니까 그런 기록이 남는 건데, 그러면 문제가 왜 어떤 기록은 남고, 어떤 기록은 안 남게 되느냐 하는 문제가 있죠. 그래서 그것을 밝혀 보느라 애를 많이 썼어요. 삼국사기는 밝히기가 어려운데, 조선시대 것은 제가 쓴 책에 다 밝혀져 있습니다.


예를 들면 최근 500년 역사를 보면 어떤 중요한 자료가 남아있느냐면 실록 이외에 ''''승정원일기''''라는 것이 있어요. 승정원일기라는 것은 대통령 비서실 일기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왕의 비서실에서 일기를 쓴 거예요. 그것이 실록보다 훨씬 상세하거든요. 그래서 승정원일기에 나온 기록들과 실록의 기록을 대조해 보니까, 실록의 기록이 훨씬 적어요.


◎ 사회/김어준>
사관이 기록했다는 것은 기록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니까, 기록한 것이겠죠?


◑ 박성래 명예교수>
그렇습니다. 사관, 즉 역사 하는 사람은 자기 생각에 가치가 있는 얘기를 적지, 가치없는 얘기는 뺍니다. 그러니까 당연히 두부값이 얼마인지는 역사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안 적습니다. 그러다 보면 사실 뒷날 보면 엉뚱하게 지금 생각해보면 옛날 그 시대의 두부값을 알아보고 싶은데, 엉뚱한 얘기를 적어놨단 말이에요. 이런 문제가 있긴 합니다.


그래서 역사가의 가장 큰 고민 중의 하나는 옛날 기록의 신빙성을 검사하는 문제입니다. 그래서 제가 신빙도 검사를 엄격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밝히기 위해 제가 컴퓨터를 공부했어요. 그래서 삼보 이용태 선생이 하와이에 온 적이 있는데, 그때 저도 컴퓨터를 배웠어요. 왜 배웠느냐면 이 많은 자료를 처리하는 데는 컴퓨터를 쓰지 않고서는 처리가 안 될 것이 명확했기 때문입니다.


◎ 사회/김어준>
천공카드 같은...


◑ 박성래 명예교수>
맞습니다. 그것을 제가 1천 장 이상을 찍었죠. 하나 자료를 입력할 때 신라는 01이라는 두 자리 부호를 주고 10칸 내에 한 데이터를 찍어 내려고 제가 혼자서 찍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컴퓨터 센터에 가지고 가서 밤새워 입력을 하면 결과가 찍혀 나오죠.


저는 처음에는 그것을 통계로 내 보면 뭔가 경천동지(驚天動地)할 자료가 나올 줄 알고 했는데, 아무것도 안 나왔죠. 왜냐하면, 삼국사기에 1000개의 현상이 기록돼 있으니까, 언뜻 생각하기에는 이것 같고 뭔가 통계가 나올 것 같은데, 나중에 아무 의미도 없는 자료를 만들어 놓고 보니까, 1000개가 1년에 1개밖에 안 되는 것이고, 그것을 100개로 나눠놨으니 통계적 의미가 전혀 없죠. 기록을 정리하는 효과만 있었습니다. 제 책이 시리즈인데, 만약 계속 나오게 된다면 정리한 기록을 책으로 낼 가치는 있죠.


그런데 문제는 그러다 보니 재미있는 현상이 더러 보이기는 했죠. 그래서 그 얘기를 집중적으로 다룬 것이 ''''1530년까지의 암탉이 수탉 된 기록''''으로 말도 안 되는 기록이지만 그것을 조사해 봤더니 9번 있더라고요, 그 9번 중 4번이 중종 때입니다. 그것도 1514~1515년 2년 동안 4번이나 있어요, 뭔가 이해하잖아요.


그래서 뭔가 좀 의미가 있기 않겠느냐 하는 생각에서 그때 역사를 뒤집어 봤더니 결론으로 얻은 게 ''''아하! 경빈 박씨가 너무 설쳐서 이런 비판적 태도가 당시 지식인들 사이에 퍼졌고, 그래서 그 지식인들이 암탉이 너무 설친다는 비판을 하는 시절이었기 때문에 그래서 그런 태도가 암탉이 수탉 된 기록이 나오면 바로 받아들여져서 그것이 역사기록으로 남게 됐다.''''라는 해석을 제가 하게 된 것입니다.


◎ 사회/김어준>
그러니까, 암탉이 수탉 된다는 현상을 이용해서 그런 말을 하고 싶었던 거군요.


◑ 박성래 명예교수>
그렇죠. 더 재미있는 얘기는 세종이 왕이 된 것이 1418년 8월입니다. 그러니까 1419년부터 세종의 본격적인 연보가 시작되는데, 바로 첫 회 1년에 햇무리가 많습니다. 그것은 대낮에 해가 희뿌옇게 밝지 않은 현상을 햇무리라고 하거든요. 그런 현상이 세종 첫 회인 봄~여름 사이에 50회가 넘는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왜 그러냐, 그것을 전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햇무리가 졌다고 사람들이 느끼는 것은 그 당시 역사를 기록한 사람들, 즉 당대에 사관으로 있었던 사람들은 고위층에 있던 관리들입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들이 역사의 자료(사초)를 남겨서 나중에 그 왕이 죽으면 의무적으로 제출하게 돼 있어요.


그 사초를 바탕으로 해서 실록청(實錄廳)이라는 기구를 만들어 정식 역사를 서술한 기록을 만든 것이 오늘날 세종실록을 남아있게 된 것인데, 그 세종실록 자료를 보니까, 세종 초년에 햇무리가 여기저기 많이 기록돼 있거든요. 그러니까, 이 사람들이 판단하기를 ''''아하~이때 햇무리가 있을 만도 하지'''' 그래서 이 기록을 남겼을 것이라고 저는 판단하죠.


그래서 세종실록을 편찬한 사람들이 ''''아하! 그때 정말 그랬지''''할 때 ''''그랬지''''하는 게 뭐였겠느냐, 하는 것을 찾아낸 것이죠. 그것은 세종을 왕위에 오르게 한 것은 자기 아버지인 태종입니다.


우리 역사에 유일하게 자진해서 그만뒀다고 돼 있는데, 왕권을 자진해서 반납한 것은 아닙니다. 왕권은 지가 누리고, 왕 자리만 아들한테 남긴 거거든요. 그런데 세종 첫 년에 무슨 짓을 하느냐 세종을 위해 모든 장애물을 제거합니다. 그래서 태종은 어떻게 보면 잔인하고 약은 사람입니다.


그럼 누구를 죽였느냐, 바로 세종의 장인을 그해 11월에 죽여 버립니다. 그때는 이미 세종의 처남 세 명을 다 죽인 상태였고요. 그래서 세종이 굉장히 편하게 정치를 합니다.


◎ 사회/김어준>
그러니까 세종이 그렇게 업적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 박성래 명예교수>
자기 아버지 덕입니다. 그러니까, 모든 더러운 일, 즉 피 묻히는 일은 다 해놨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해서 장인을 죽이고, 세종의 어머니는 노비로 종으로 만들어버리고, 왕후만 그대로 놔둡니다.


◎ 사회/김어준>
신하들은 입도 뻥긋할 수 없었지만 기억만은...


◑ 박성래 명예교수>
임금이 임금답지 못했죠. 즉 임금은 태양인데, 태양에 태양 빛을 제대로 발휘 못 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의식이 신하들 사이에 쫙 퍼졌으니까, 해가 좀 시원찮으면 오늘도 햇무리 졌군, 이렇게 기록했겠지 않습니까, 그러다 보니 그것이 사료가 돼서 제출되고, 그 당시 사람들로서는 성실하게 적은 거라고 봅니다.


그리고 판단도 역사가들로서 정상적으로 했으리라고 보고, 그러나 지금 그것을 읽는 사람들은 그것을 분석해 보지 않으면 왜 그때만 햇무리가 많을까, 엄밀히 과학적으로 따지면 이것은 말이 안 되는 얘깁니다.


◎ 사회/김어준>
사실은 과학사라는 것이 당시 역사를 떼 놓고는 생각할 수 없는 거군요.


◑ 박성래 명예교수>
제가 하는 과학사는 그렇습니다.


◎ 사회/김어준>
사람들의 불안한 마음이 자연현상으로 투영돼 기록된 거군요.


◑ 박성래 명예교수>
그렇죠.


◎ 사회/김어준>
대부분이 그런가요?


◑ 박성래 명예교수>
최근 삼국 시대의 정치 사상적 의미는 8~9장에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조선 시대 초에 그런 제의(자연현상에 이상한 현상)의 의미가 정치사상적으로 어떤 역할을 하느냐, 저는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보거든요.


◎ 사회/김어준>
이 책의 제목은 한국 과학 사상사지만 실제로는 한국에서 일어났던 여러 가지 자연 현상의 기록들을 통해 그 시대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하는 이런 이야기군요.


◑ 박성래 명예교수>
그렇습니다.


◎ 사회/김어준>
이런 책을 처음 쓰신 건가요?


◑ 박성래 명예교수>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일본, 중국을 보더라도 자연현상의 의미를 밝히는 책은 이게 처음입니다. 물론 중국과 일본의 자료는 충분히 있습니다.


▶진행:김어준
▶CBS 시사자키 오늘과 내일(98.1MHz 월~토 오후 7시~9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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