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진환 기자중동 전쟁이 걸프협력회의(GCC·Gulf Cooperation Council) 산유국으로 확산하면서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이 흔들리고 있다. 국내 국책연구기관들은 호르무즈 해협 봉쇄와 핵심 에너지 시설 공격 여파로 유가 상승과 원자재 공급 차질이 현실화될 경우 한국 경제에 직·간접적인 충격이 불가피하다고 경고했다.
KIEP, 중동 전선 확대…에너지 공급 차질, 한국 경제에 영향"
14일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이 최근 발표한 'GCC 산유국으로의 중동 전선 확대에 따른 영향 및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중동 전쟁이 GCC 지역으로 확산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대이란 공습에 대한 대응으로 이란이 GCC 산유국 내 미군 기지뿐 아니라 에너지·항만·관광 인프라에도 타격을 가하면서 GCC 전역에 극심한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이란은 사우디아라비아의 라스 타누라 정유시설, 아랍에미리트(UAE)의 루와이스 정유시설, 카타르의 라스라판 가스 처리시설 등 GCC 내 핵심 에너지 시설을 공격했다. 또 호르무즈 해협 통항까지 제한하면서 역내 에너지 수출 경로에도 직접적인 타격을 주고 있다.
카타르 국영 석유회사인 카타르 에너지는 자국 시설에 대한 이란의 드론 공격 이후 액화천연가스(LNG) 생산을 전면 중단했다. 사우디아라비아도 하루 50만 배럴 이상 처리 가능한 라스 타누라 정유시설 가동을 멈췄다.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원유 통과량은 평상시 하루 약 1500만 배럴 수준이다. 하지만 사우디아라비아 동서 파이프라인과 UAE 아부다비 파이프라인을 통한 우회 수송 능력은 하루 약 470만 배럴 정도에 불과해 수급 불안이 현실화되고 있다.
KIEP에 따르면 한국은 GCC 산유국으로부터 원유 수입의 58.7%, LNG 수입의 17.7%를 의존하고 있다. 에너지 공급 차질이 국내 산업과 소비자물가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또 GCC 의존도가 높은 석고(74.1%), 헬륨(68.2%), 트리에탄올아민(58.1%), 납사(48.4%), 백색 시멘트(41.0%) 등 품목의 수입이 차질을 빚을 경우 관련 산업 생산에도 영향이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를 작성한 KIEP 유광호 아프리카중동중남미팀 전문연구원은 "전쟁 향방의 불확실성이 큰 만큼 경제적 피해에 대한 대책과 함께 한국과 GCC 협력 환경 변화 가능성, 방산 등 현지 수요 확대 분야에 대한 진출 기회, 향후 이란 시장 개방 국면에 대한 대응 전략 등을 다층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KDI "유가 상승, 국내 소비자물가·기업 생산비 부담"
호르무즈 해협 통과하는 유조선. 연합뉴스한국개발연구원(KDI)도 중동 전쟁에 따른 유가 상승이 국내 소비자물가와 기업 생산비 부담, 건설 비용 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경기 하방 압력이 커질 수 있다는 경고다.
KDI '경제동향 3월호'에 따르면 두바이유 가격은 올해 1월 평균 배럴당 62.0달러에서 2월 68.4달러로 오른 데 이어 3월 초에는 95달러 수준까지 급등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11일(현지시간) 중동 전쟁으로 인한 국제 에너지 위기를 완화하기 위해 4년 만에 전략 비축유 4억 배럴을 긴급 방출했다. IEA 역사상 최대 규모 방출이지만 국제 유가는 하루 만에 배럴당 100달러를 넘나드는 상승세를 보이며 시장 우려를 키웠다.
KDI는 국제유가 상승이 국내 물가 상승 압력으로 이어져 소비를 위축시키는 요인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유가 상승으로 운송비와 제조 원가가 오르면 공산품과 서비스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고, 결국 소비 여력을 축소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KDI는 또 기업 투자에도 부정적인 영향이 미칠 것으로 예상했다. KDI는 "중동 전쟁에 따른 대외 불확실성 확대가 설비투자에 부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중동 전쟁 여파는 건설투자 분야에도 부담으로 작용한다. KDI는 "중동 전쟁에 따른 공급 차질로 건설 비용이 상승하면 착공 지연이나 공사 기간 연장 등 현장의 부정적 영향이 확대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KIEP 역시 GCC 지역의 건설 경기 악화로 신규 건설 수주가 감소할 수 있다며 중동 전쟁의 직접적인 영향을 우려했다. KIEP에 따르면 GCC 지역은 전체 해외 건설 수주의 17.4%를 차지한다. 하지만 현지 자재와 노동력 수급 불안에 따라 우리 기업이 추진 중인 건설 프로젝트에 차질이 발생할 수 있고, GCC 건설 경기가 악화될 경우 신규 건설 수주도 줄어들 수 있다.
수출 산업에도 타격이 불가피하다. KDI는 "전쟁 발발 등의 여파로 대외 통상 불확실성이 점차 확대되는 모습"이라며 글로벌 교역 위축 가능성을 지적했다. KIEP도 GCC로 수출하는 승용차, 석유제품, 자동차 부품 등 산업이 위축될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